방송통신위원회가 독립제작사(외주제작사) 보호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다. 독립제작사 권리 확대 정책을 선보인 점은 의미 있지만 주요 내용의 적절성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방통위는 지난 7일 세미나를 열고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간 ‘공정거래’에 초점을 맞춘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EBS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박환성·감광일 PD가 목숨을 잃고 독립제작의 열악한 환경이 알려지자 정부는 범정부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거래환경 개선에 착수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세 개다. 첫째 저작권이 독립제작사 중심으로 바뀐다. 가이드라인은 “저작재산권은 프로그램 창작에 기여한 자에게 발생한다”고 명시했다. 프로그램 제작의뢰, 기획회의 참여, 장비·설비지원 등 ‘재정적 기여’는 창작 기여로 보지 않는다. 방송사가 투자하고, 제작비나 장소를 대여하고, 공동기획한 작품이더라도 독립제작사가 저작권을 갖는다는 의미다.

▲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제작 가이드라인은 외주계약 절차의 투명성 확보, 방송사의 횡포 방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절차와 내용의 적절성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 iStock. 그래픽=이우림 기자.
▲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제작 가이드라인은 외주계약 절차의 투명성 확보, 방송사의 횡포 방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절차와 내용의 적절성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 iStock. 그래픽=이우림 기자.

둘째 가격 기준이 만들어진다. 방송사와 제작사 간 협의로 합리적 표준가격표를 만들어 공표하게 된다. 가격은 제작비를 비롯해 기대수익 등을 고려해 산정하며 유형에 따라 최저가격과 최고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논의 과정에서 독립제작사 대표 단체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면 정부가 재협의를 권고한다.

셋째 거래 절차가 투명해진다. 방송사는 기획안 제출, 조건 협의, 가격표 제안, 계약서 작성, 제작 개시 등 전반적 거래절차를 공표해야 한다. 제작 과정에 방송사 CP가 일방으로 편성을 취소하거나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가이드라인 제정에 독립제작사는 환영하는 반면 지상파와 종편 사업자는 반발하고 있다. 실제 이날 세미나에 지상파와 종편 패널이 참석하지 않았다.

지상파와 종편은 ‘저작권 규정’에 반발하고 있다. 방송프로그램의 VOD, 해외수출 등 판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콘텐츠 지적재산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방송사들 반발은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가이드라인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도 있다. 

▲ 지상파 3사 사옥.
▲ 지상파 3사 사옥.

지상파 관계자는 “독립제작사와 방송사의 저작권 문제는 개별 상황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는데 방통위가 일방의 입장만 강조했다”고 밝혔다. 종편 관계자는 “예능, 교양 프로그램은 방송사가 공동기획하고 제작비를 일체 제공하고, 시설도 댄다. 방송사가 이렇게 하는데도 저작권을 인정 못 받는다는 건 문제가 크다”고 했다.

논란이 불거진 데는 저작권법이 영상물 저작자 개념을 분명히 명시하지 않고 개별 계약 형태가 다양해 일관된 기준을 갖기 어려워서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상파의 독립제작 드라마 저작권 독점이 공정거래법 위반인지 조사한 결과 △기획·극본·연출을 방송사와 제작사가 다양하게 분담하고 있어 저작권 귀속 주체가 불분명하고 △구체적 거래조건이 매우 다양해 판단 기준이 될 만한 통상적 거래 관행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무혐의 결론을 냈다. 2015년 곽진희 방통위 편성평가정책과장은 “현재 외주인정기준에 저작권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은 어렵다. 저작권법 개정이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상황에서 방통위가 법 개정을 우회하는 가이드라인을 택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특히 이번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에 CJENM이 빠진 점은 실효성에 의문이 들게 한다. 방통위는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를 방송사 재승인, 재허가 때 반영하겠다는 계획인데 등록만 하면 방송 할 수 있는 CJENM은 적용되지 않는다. 지상파 관계자는 “다른 곳도 아니고 가장 논란이 많이 되는 CJENM이 제외된 가이드라인은 차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배대식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사무국장도 지난 7일 세미나에서 “등록제로 운영되는 CJENM 등에 별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이드라인이 다양한 방송 주체를 고려하지 못해 뒤늦게 드러난 문제도 있다. 7일 세미나 질의응답에서 연기자와 작가단체가 문제를 제기했다. 제작사와 방송사 뿐 아니라 출연자나 작가도 저작권의 주체 가운데 하나인데 이들을 배제한 가이드라인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가이드라인을 만든 황유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IDI) 연구원은 “창작자에게 우려가 있다면 (가이드라인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방통위가 12월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해 속도를 내면서 꼼꼼히 만들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지상파와 종편 관계자에 따르면 방통위는 11월말 가이드라인 초안을 방송사들에 보내고 일주일도 채 안 돼 회신을 요청했다. 방통위는 7일 발표한 내용은 초안으로 추후 다양한 논의를 거쳐 보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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