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 대학 기숙사 점거시위로 시작된 ‘68혁명’ 내내 프랑스 주류 좌파언론 리베라시옹과 류마니떼는 침묵했다. 4·19 혁명 내내 관영방송 KBS가 보였던 태도처럼 공산당 기관지로 출발했던 류마니떼는 68혁명 내내 시위대에 소극적이었다.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 프랑스 노란조끼(gilets jaunes) 시위를 바라보는 프랑스 진보 좌파들 시각도 마찬가지다. 최대 노총인 세제떼(CGT)는 일부 지역단위만 참가하고 있다. 중도좌파인 세제떼에 반발해 더 원칙적 싸움을 이끌어온 수드(SUD)나 사회주의 좌파에서 출발해 전투적 노조운동을 해온 CFDT도 시위대를 찍은 방송화면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

2016년 태어난 신생 좌파정당인 장 뤽 멜랑숑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FI)’만이 용맹을 떨치고 있다. 멜랑숑은 유류세 인상을 취소하겠다는 마크롱에게 “끝난 것 같다. 사임하라”고 연일 강공을 퍼붓고 있다. 멜랑숑은 부유층 누진세 재도입과 기업의 세액공제를 생태전환 예산으로 돌리라고 요구한다.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wikimedia commons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 wikimedia commons

프랑스 전통 좌파는 큰 혼동에 빠졌다. 마치 2008년 광우병 촛불 때 한국의 전통 좌파가 보여줬던 머뭇거림과 비슷하다.

소비자운동으로 출발한 광우병 이슈가 정국을 주도할까. 고등학생 시위에 모든 세대가 분노할까. 2008년 6월 초 민주노총은 광우병 시위가 열리는 광화문 근처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2시간 넘게 난상토론했다. “임기 6개월도 안된 대통령 퇴진 요구는 무리다”, “그렇다고 대통령 사과는 너무 약하지 않느냐”고 구호의 수위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그 사이 어둠이 깔리고 10~20대 젊은 촛불시위대는 ‘MB OUT’라고 쓴 A4용지 한 장을 들고 나왔다. ‘OUT’ 퇴진과 사과를 모두 뛰어넘는 단순함의 극치였다.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프랑스 전통좌파도 노란조끼를 보면서 같은 심정일 거다. 노란조끼는 단순하지 않다. 멜랑숑 같은 신생좌파도 있지만 백인중산층 중도우파도 한몫 하고 있다. 애국주의를 강변하던 공화국 삼색기가 펄럭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떨결에 중심 의제가 된 유류세도 에너지 위기를 생각하면 마냥 인상에 반대만 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전통 좌파가 주춤거리는 사이 노란조끼 시위는 점차 1968년 5월을 닮아가고 있다.

연일 방화와 약탈, 최루탄과 지랄탄이 난무하는 요란한 프랑스와 달리 독일 공영방송 ZDF가 만든 지극히 독일스러운 짧은 인터뷰 영상뉴스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1분4초에 불과한 이 짧은 영상은 앙겔라 메르켈의 퇴장을 다뤘다.

메르켈을 다룬 영상이지만 메르켈은 조연이었다. 기민당은 물론 사민당 정치인까지 등장해 “그는 거친 시기에 진정한 중심이었다”, “그가 2015년 난민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그의 사임을 못내 아쉬워했다. 탈핵정책도 그렇지만 스웨덴 좌파 사민당도 여론의 후폭풍이 두려워 못한 일인데 그는 200만명이 넘는 난민 수용을 결정했다. 그 힘겨운 결정처럼 영상은 화면 중앙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오른쪽으로 걸어서 퇴장하는 메르켈로 끝난다.

결국 난민 수용 때문에 권력을 넘겼지만 그는 보수정치에 새 지평을 열었다. 한국 보수정치가 배워야 모범은 태극기가 아니라 메르켈이어야 한다. 그가 18년간 당수직을 유지했던 기민당의 새 당수도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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