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발생한 유성기업 사건에 대부분의 언론이 ‘폭력’에만 집중하고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지 원인은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는 29일자 아침신문 지면에 유성기업 기사를 실으면서 노동조합을 맹비난하는데만 집중했다. 국민일보는 이런 사태를 공권력이 방관했다는 관점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이 폭력사태를 보도하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노동조합 측의 설명을 듣고, 2011년부터 진행된 유성기업과 노동조합의 갈등과 한광호씨 등 노동자 2명이 목숨을 끊은 일을 언급한 것은 한겨레 지면 외에는 찾기 힘들었다.

다음은 29일 아침에 발행하는 주요 지면 신문에서 유성기업에 대한 보도와 사설 제목을 모은 것이다.

‘정책 발목 잡고 임원 폭행 민노총과 선긋기 나선 여권’ (세계, 1면)
‘무기력한 공권력, 의심받는 법치’ (국민, 1면)
‘임원 폭행한 유성기업 노조, 서울 사무실 45일째 불법 점거’ (조선, 3면)
“이해찬, ‘민노총 폭력행위 저지 못한 경찰도 큰 책임’”(조선, 3면)
“유성기업 노조, ‘몸싸움 1분 불과’, 회사 ‘경찰 온 뒤에도 구타’”(한겨레, 13면)
‘유성기업 사태, 폭력의 악순환 끊어야 한다’(한겨레, 23면)
“野 ‘민노총 권력에 취해’, 이해찬 ‘공동체 파괴 행위‘” (동아, 14면)
‘막가파 노조에 정치권도 시민도 등돌렸다’ (매경, 28면)
‘폭행 사과 없는 민노총의 적반하장 시위, 경찰 방관이 무법 키웠다’(한경, 29면)
‘사과없는 폭력 민노총, 무법천지 노조 공화국 만들 작정인가’(중앙, 34면)
‘촛불갑옷 두르고 무법 자행하는 민노총, 촛불민심 왜곡 말라’(동아, 35면)
▲ 조선일보 27일자 12면
▲ 조선일보 27일자 12면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유성기업 사태를 ‘민노총’으로 대명사화해 민주노총 때리기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전날인 28일에도 지면 1면에 유성기업 대표의 말 “야만적이고 잔혹하게 임원구타 이렇게까지 하는 게 노조입니까”를 제목으로 유성기업 사태를 다뤘다. 29일 지면에서도 3면에서 노조원들이 45일째 ‘불법 점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3면에 다뤘다. 그리고 3면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폭력사태를 저지하지 못한 경찰도 큰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 조선일보 28일 1면.
▲ 조선일보 28일 1면.
세계일보도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두고 ‘정책 발목잡고 임원 폭행 민노총과 선긋기 나선 여권’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이해찬 대표의 발언대로 해당 사건을 저지하지 못한 경찰이 잘못이라며 ‘무기력한 공권력, 의심받는 법치’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27일 발생한 대법원장 차량 근처에 화염병이 떨어진 사건도 공권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례로 꼽았다.

동아일보는 사설에 ‘촛불 갑옷’이라는 말까지 등장시켰다. 12월1일 정부규탄 민중대회를 여는 민주노총을 두고, 유성기업 사태를 언급하면서 나온 말이다. 동아일보는 “이들은 걸핏하면 ‘촛불 청구서’를 내밀며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불법 시위나 파업을 일삼는 것은 법질서를 지키며 평화적 시위를 벌인 촛불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썼다.

경제지들은 ‘막가파 노조’(매일경제), ‘폭행 사과 없는 민노총’(한국경제)이라며 폭행사태와 함께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파업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경제는 유성기업 사태로 여론이 좋지못한데 민주노총이 사과없이 오히려 집회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28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이승렬 부위원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지난 8년간 우리는 사측의 폭력을 경험했지만 폭력에는 반대한다. 옹호할 생각은 없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사과 발언을 했다.

▲ 29일 한국경제 지면.
▲ 29일 한국경제 지면.

유성기업 사태에서 2011년부터 지속돼온 사측과의 갈등을 언급한 것은 한겨레 지면이었다. 경향신문은 29일 지면에서 유성기업과 관련된 기사를 싣지 않았다.

한겨레는 13면에서 22일 폭행사태에서 폭행을 당한 김 아무개 상무 측과 노조원들의 진술이 엇갈렸다고 보도했다. 회사 노무팀장은 노조원들이 김 상무를 감금하고 폭행했다고 말했고 노조원들은 “폭행사태는 1분 정도였고 사측과 노조원들이 뒤엉킨 상태였으며 누가 누구한테 맞아 코피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29일 한겨레 지면.
▲ 29일 한겨레 지면.
이 기사 말미에 한겨레는 “유성기업 노사갈등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며 사태의 발단을 설명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2월 대법원은 유시형 유성기업 회장에게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오랜 갈등 과정에서 2016년 3월 한광호 조합원이 회사 징계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4일에는 해고자 11명이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복직됐지만, 회사와 유성지회의 단체교섭은 성사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겨레는 사설에서도 “잘 알려져 있듯이, 유성기업은 지난 8년 동안 부당노동행위로 이름을 떨친 기업”이라며 2011년 노조가 주간 연속 2교대와 월급제 합의 시행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회사는 2시간 만에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이례적으로 당일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조를 비난했다고 전했다. 

그 뒤 노조 파괴 공작과 현대자동차 개입 의혹 등이 불거졌고,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노동자 11명의 재해고로 이어지며 한광호씨 등 노동자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겨레는 “최근의 폭력 사태를 유성기업 노사 간 오랜 대립과 갈등, 특히 사쪽의 강경한 반노조 행태라는 뿌리 깊은 원인을 살피며 바라볼 필요가 있는 건 이런 과정 때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노조의 폭력 사용도 잘못됐다고 말하는 동시에 “뚜렷한 증거 없이 이번 사건이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시에 의해 벌어진 일인 양 맹비난하는 일부 보수 야당·언론의 정치 공세는 옳지 않다”며 “그런 의도적인 ‘때리기’로는 폭력의 악순환을 풀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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