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스태프들이 MBC 드라마 제작 현장의 불공정한 계약 관행 개선을 요구하며 최승호 사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던 스태프들은 MBC 사옥 입구에서 가로막혀 40분가량 대치한 끝에 사장 비서실 측에 입장을 전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지부장 김두영)는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MBC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팀장급 스태프들에 대한 ‘턴키’ 계약 관행이 유지되고 있지만 MBC가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두영 방송스태프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방송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공청회나 여러 회견을 통해 대화를 요구했으나 방송사들은 우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대화하는 척하며 시간을 벌고 있다”고 주장했다.

▲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MBC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MBC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MBC 드라마에는 노동자가 없다'는 글자가 적힌 상자를 부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MBC 드라마에는 노동자가 없다'는 글자가 적힌 상자를 부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방송스태프지부는 이날 종영 예정인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 제작 현장에서 촬영 첫날부터 하루 18시간 이상, 11월 초부터는 하루 16시간 이상 주당 5~6일(주당 100시간 내외)의 장시간 촬영이 진행돼왔다고 지적했다. 스태프 노동자들의 개별근로계약 요구를 무시한 채 계약서 작성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비판했다.

최오수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배드파파) 제작사와 노조는 협의를 통해 출퇴근 시간을 포함 14시간 이상 노동을 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막바지에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지키지 않았다”며 “‘밥 좀 먹자’는 스태프들 이야기에 ‘초코바로 대신하자’는 이야기들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배드파파 제작현장 문제를 호소하는 스태프 목소리가 담긴 ‘방송신문고’ 대화방 일부를 공개했다.

MBC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턴키’(turn-key)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턴키’ 계약은 조명·동시녹음·그립(특수장비) 분야의 경우 팀단위로 용역 계약을 맺어 팀장급 스태프가 인건비 등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스태프들은 이러한 계약 관행이 개별 근로계약 책임을 회피하는 불공정 하도급 구조라고 비판하고 있다.

▲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MBC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은 김두영 방송스태프지부장.사진=노지민 기자
▲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MBC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은 김두영 방송스태프지부장.사진=노지민 기자

김수영 방송계갑질119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지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에서 드라마 제작현장의 종사자 대부분이 노동자라는 게 확인됐다”며 “스태프들이 노동자라는 것을 명확히 인정해야 하고, 한류 열풍으로 한국 드라마가 각광받는 현실에서 후진적 턴키계약이 유지돼야겠느냐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앞서 MBC에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요구와 최 사장 면담 요청을 거듭했으나 답변을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20일 MBC 및 배드파파 제작사와 면담에서 요구사항을 전한 뒤, 10월15일 MBC에 공문을 보낸 데 이어 지난 9일 ‘상생 방송제작을 위한 독립창작자 인권선언문 선포식’에서 최 사장을 직접 만나 사장 면담을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라는 것이다.

방송스태프지부는 공영방송 가운데 유독 MBC만 모든 드라마에서 스태프들의 개별 근로계약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것이 MBC 측의 방침인지 제작사의 책임인지 확실히 가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진규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은 “MBC가 시대적 요구인 제작환경 개선 요구를 무시하고 외면한다면 드라마 제작환경이 바뀔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최 사장이 면담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MBC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과 최승호 사장 면담 요구를 전하려다 가로막혀 40분 동안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사진=노지민 기자
▲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MBC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과 최승호 사장 면담 요구를 전하려다 가로막혀 40분 동안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사진=노지민 기자

그러나 이날 최 사장에게 전달하려던 항의서한은 직접 전달되지 못했다. 항의서한을 들고 MBC로 향하던 방송스태프지부는 MBC 입구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 사장이 자리에 없다는 MBC 관계자 말에 방송스태프지부 측이 ‘다른 책임자라도 메시지를 갖고 내려와라’, ‘청와대를 찾아가도 이렇게 막지는 않는다’며 항의했지만, MBC 측은 보안 업무 담당자에게 항의서한을 전하고 돌아가라는 입장을 반복했다. 대치 상황이 끝난 직후 일부 취재진의 MBC 사옥 출입이 한동안 제한되기도 했다.

방송스태프지부 출입이 막히고 약 40분 뒤, 최 사장 비서실 관계자가 내려오면서 대치 상황은 해소됐다. 이 관계자는 그간 방송스태프지부 측에서 공문을 보낸 사실과 내용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며, 김두영 지부장 등 노조 일부 관계자들과 MBC 사옥 안에서 면담을 진행했다. 최근 조직개편으로 인수인계가 진행 중이라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하지 못했으며, 향후 사장 면담 일정을 논의하겠다는 것이 MBC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공영방송으로서 MBC와 그 구성원들 책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모든 사회 부문에서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정작 이를 언론에 보도하고 선도하는 공영방송마저 자기 앞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고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성주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과거 MBC 앞에서 ‘힘내라 마봉춘’ 피켓을 들고 MBC를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꽤 길다. 오랜 시간 MBC 노동자들과 정상화를 위해 힘을 보탰던 자리에서 착잡한 심정”이라며 “MBC가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해 달라는 게 아니다. 해결점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 27일 서울 상암동 MBC 본사에서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오른쪽)이 최승호 사장 비서실에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요구사항을 전하고 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제공
▲ 27일 서울 상암동 MBC 본사에서 김두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오른쪽)이 최승호 사장 비서실에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요구사항을 전하고 있다. 사진=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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