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쯤 서울 한 지역 마을공동체가 운영하는 카페에 등기서류가 도착했다. 몇 년 동안 끌어오던 재개발이 시행되니 12월 말까지 상가를 비우고 재개발 조합에 확인받으라는 내용, 그리고 확인 후 지급할 보상금 액수가 적힌 한 장의 공문이었다. 그날 이후 골목 상인들의 인사말은 달라졌다. 언제 어디로 이사를 갈 것인지 서로 물었지만, 누구도 자신 있게 답을 하지 못했다. 통보된 보상금 ‘협의’를 하러 조합 사무실에 다녀온 상인들로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입소문이 퍼졌다.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정보가 골목을 떠돌았다. 결국 30여명의 상인들이 모여 재개발 조합 담당자와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그 동안 쌓였던 불만과 항의가 터져 나왔다. 보상금 액수에 항의도 있었지만, 다수의 질문은 이전을 하지 않을 경우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재개발 시행의 향후 계획이 무엇인지, 상가를 비운 후 보상금 수령 절차와 기한이 어떻게 되는지 였다. 조합 담당자의 설명은 답답하기만 했다. 보상액수의 평가는 별도의 기관에서 수행했으니 알 수 없다, 기한 이후의 절차는 ‘법’을 따르게 된다, 보상금의 지급 기한은 보증해 줄 수 없다는 답이 전부였다.

이 지역만의 문제였을까. 재개발이 본격화되면 지역의 집주인과 건물주가 ‘자발적’으로 만든 조합에서는 재산권을 가진 이들만을 챙길 뿐 세입자나 상인들은 늘 후순위로 밀려왔다. 은행권에서 대출받을 수천 억 원의 사업자금과 개발업자들이 장담하는 몇 년 후의 수익 계산 중 그 어디에도 세입자와 상인들의 몫은 없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주변 월세와 권리금은 모자란 보상금을 또 다른 대출로 메우게 했다. 대출 자격조차 되지 못하는 이들은 1톤 트럭에 짐을 싣고 어디론가 떠났다. 재개발로 들어서는 아파트에 입주하는 이들도 다르지 않다. 많은 입주자들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아파트 가격 인상만을 믿고 십수년 동안 원리금에 묶여 살아야 하는 부채의 노예가 된다.

서울 변두리의 재개발은 늘 이런 식이었다. 그나마 싼 월세와 보증금으로 머물던 이들은 감당할 수 없는 돈의 액수만큼 멀리 떠나고, 새로 오는 이들은 미래 노동을 담보로 잡힌 부채에 밀려가는 도시 유목민이 되고 만다. 재개발 지역 상인들이 조합에 요구한 것은 더 많은 보상금이 아니었다. 이자와 수익률만으로 계산되는 돈의 시간이 아니라, 이사를 결정하고 상가를 알아보며 새로운 자리를 준비할 삶과 노동의 시간이었다. 상인들에게 기대에 못 미친 보상금 액수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알 수 없는 절차와 계획,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 약속이다. 하루하루 매상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철거 용역과 포크레인 탓이 아니다. 당연히 알아야 할 절차와 정보를 박탈당한 채 일방의 통보로 빼앗긴, 수많은 언론인이 입에 달고 사는 ‘알 권리’ 때문이다.

오늘 밤에도 재개발 지역 상가 선반 위 텔레비전에는 뉴스가 나올 것이다. ‘공익’을 위해 재벌의 갑질을 폭로하고 부동산 투기를 파헤치는 뉴스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역 소식을 전한다는 지역 언론은 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을까. 무수한 ‘단독’과 ‘특종’의 홍수 속에서 이들이 바라는 특종은 어디에 있을까. 이른바 ‘알 권리’란 불거진 사건과 사태에 대한 보도만을 말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언론인이 사건과 사태에 접근할 권리일 뿐이다. 사건과 사태를 낳은 과정에 대한 시민의 알 권리보다 언론인의 접근권이 더 중요할까? 행여 재개발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 누군가 망루에 올라가고 무차별한 철거 용역의 폭력이 보도된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알 권리이며 누구를 위한 단독보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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