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약품과 병명 사이 인과관계가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가능성이 높은데. 대상이 전보다 폭넓어진 건 좋지만 적은 보상액이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백혈병 등 질환 발병에 대한 지원보상 합의 이행을 협약했다.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지 11년, 중재가 시작된 지 4년 만이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이날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협약식을 열고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의 중재안을 따르겠다는 협약서에 서명했다.

이들은 지원보상 업무를 법무법인 지평에 맡기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원보상위원회 위원장은 김지형 조정위원장(현 법무법인 지평 소속·전 대법관)으로 정했다. 삼성전자는 한국산업안전공단에 재발방지와 사회공헌의 뜻에서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기탁하기로 했다. 조정위원회의 중재안에 따라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지원보상 기관과 위원장, 발전기금을 기탁할 기관을 결정한 결과다.

▲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왼쪽부터), 김지형 조정위원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한 뒤 협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왼쪽부터), 김지형 조정위원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한 뒤 협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23일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 김지형 조정위원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협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23일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 김지형 조정위원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협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반올림 대표이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23일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황씨는 “이런 일이 계속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는 원청 사업주 책임을 엄격히 묻는 법제도를 만들고 대기업은 안전보건을 책임질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반올림 대표이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23일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황씨는 “이런 일이 계속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는 원청 사업주 책임을 엄격히 묻는 법제도를 만들고 대기업은 안전보건을 책임질 계획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날 반올림 대표이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는 인사말에서 “보상 대상을 기존 삼성전자의 기준보다 대폭 넓히고 반올림이 아는 피해자만이 아니라 미처 알리지 못한 분도 포괄하게 돼 다행이다. 다만 협력업체 소속이라서 혹은 보상 대상 질환이 아니라서 포함되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황씨는 삼성이 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사업장의 직업병도 폭넓게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씨는 “직업병 피해는 삼성전자 반도체 LCD 부분에서만 있지 않다. 삼성 디스플레이·전기·SDS·SDI 등 다른 계열사에서 유해물질을 사용하다 병든 노동자들이 있다”며 “모든 직업병 노동자들을 위한 폭넓은 보상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했다.

정부에도 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산재 보상받을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산재보험 제도와 근로복지공단을 개혁해 산재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 또 노동자가 무슨 화학물질을 쓰는지 알 수 있게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현장은 협약 순간을 포착하려는 취재진 인파로 북적였다.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와 황상기씨가 악수하거나 나란히 서는 장면마다 플래시가 터졌다. 기념촬영 중 기자가 요청해 김기남 대표이사와 투병 중인 한혜경씨가 악수하기도 했다.

▲ 23일 삼성전자-반올림 합의이행 협약식엔 취재인파가 몰렸다. 기자들이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투명 중인 황혜경씨와 악수하는 모습을 찍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23일 삼성전자-반올림 합의이행 협약식엔 취재인파가 몰렸다. 기자들이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투명 중인 한혜경씨와 악수하는 모습을 찍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23일 삼성전자-반올림 합의이행 협약식엔 취재인파가 몰렸다. 기념촬영 중 기자가 요청해 김기남 대표이사와 투병 중인 황혜경씨가 악수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23일 삼성전자-반올림 합의이행 협약식엔 취재인파가 몰렸다. 기념촬영 중 기자가 요청해 김기남 대표이사와 투병 중인 한혜경씨가 악수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기흥공장에서 일한 뒤 유방암에 걸린 박민숙 씨는 협약식이 끝나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는 “그동안 변화할 수 있는 계기는 많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 계속 해보자’며 싸워 왔는데, 정말 11년 만에 됐다”고 말했다. “폭넓게 인정된 건 다행이지만, 지금도 노동자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일하고 있으니까요. 유해가스는 계속 나오고, 여기 저기서 (사건이) 터지잖아요.” 박씨는 지난 2015년 삼성전자가 첫 중재위 권고안을 거부한 뒤 자체 산정한 보상 대상에선 제외됐다.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이날 협약식에서 중재안 권고에 따라 공식 사과문을 낭독했다. 삼성전자는 또다른 중재안 내용인 사과문 웹페이지 게시는 반올림과 일정에 합의한 뒤 다음주 쯤 노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황상기씨는 “오늘 사과는 솔직히 직업병 피해가족들에게 충분하진 않다. 그러나 앞으로 삼성전자의 다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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