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를 수평저울에 비유해보면 지난 일년 반동안 노사정의 상호작용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정부가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 잡으려고 노동자쪽에 16개의 추를 올렸다가 기업쪽 반발에 직면했다. 그때 정부는 노동자쪽에 올린 16개의 추 가운데 8개를 덜어내 기업쪽으로 옮겼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나아진 것이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왜 처음부터 노동자쪽에 올린 추가 16개였을까.

눈 밝은 독자들은 눈치챘겠지만, 이 비유는 정부가 근로시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지적한 것이다. 최근 근로시간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탄력근로제 확대를 둘러싸고 민주노총은 21일 총파업에 돌입했고, 한국노총도 17일 집회를 열고 총력 투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을 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탄력근로제란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늘리고 줄이는 제도다. 근로시간을 특정 기간에 늘리고 줄이되, 총합의 평균을 주52시간 이내로 하자는 게 이 제도의 골자다. 현재 탄력근로제를 적용하는 기간을 현 법안에서 규정한 3개월에서 6개월(정부·여당안) 혹은 1년(자유한국당안)으로 늘리자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이 논의를 복잡하게 만든 것은 근로시간 보단 임금삭감이다. 기존 근로기준법에선 휴일·연장근로의 수당을 기존 통상임금보다 많이 줘야 했지만, 탄력근로제가 시행되면 할증 적용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시간이 일정하다면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자료를 내놓고 있지만, 이는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반영하지 않은 단견이다. 탄력근로제가 적용되면 기업은 근로시간이 늘어난 기간에 업무를 집중 배분해 할증 수당을 줄이려 할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과 타임오프제도, 기간제법 등 숱한 노동법 제개정의 상황에서 간과한 것이 노사간 힘의 불균형이었다.

▲ 한겨레신문 22일자 3면
▲ 한겨레신문 22일자 3면

탄력근로제 논란의 해법을 찾으려면 논의의 출발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계절적·경기순환적 수요변동에 따른 유연한 노무관리가 본래 취지였으나, 국내에서는 근로시간을 한 주에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개혁의 보완책으로 등장했다. 그렇다면 왜 근로시간을 주 최대 52시간으로 줄였을까. 나름 역사적 맥락이 있다. 당초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규정했지만, 이 법을 정부가 기형적으로 해석했다. 이른바 ‘1주일을 5일로 규정’하는 행정지침이다. 정부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1주일에 포함되지 않아 각각 8시간씩 추가 근로가 가능하다고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구속력을 부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이 행정지침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고, 대선 이후 정부는 행정지침을 바로 폐기하기 보단 국회에서 여당 주도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주52시간 근로제를 명시했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은 잘못된 행정지침을 폐기할 생각만 했지, 한 주의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단번에 52시간으로 줄여도 괜찮은지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줄어든 16시간은 당초 근로시간 상한인 68시간의 23.5%를 차지한다. 현실에선 급격한 변화인 셈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들거라 기대했다가 실질임금이 줄어드는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최저임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에서는 왜 1만원인지, 왜 2020년인지가 나오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집권 첫 해에 최저임금위원회는 인상률을 16.4%로 정했다. 하지만 고용지표가 나빠지자 정부와 여당은 경영계가 요구하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받아들였다. 결국 1만원에 도달해도 최저임금이 이전의 최저임금과 달라져 논의가 희석된 셈이다. 정부가 처음부터 근로시간을 얼마나 줄일지, 최저임금을 얼마나 올릴지를 깊이 고민하지 않으니, 일단 저지르고 나서 급조된 보완책이 나오는 양상이 반복된다.

이제는 정책 실행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다. 선의가 선한 결과를 담보하지 못할 뿐더러 선명한 정책이 확실한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는다. 주 52시간 근로, 최저임금 1만원과 같은 선명한 정책을 내고서 실질적으로 후퇴하는 보완책을 덧붙이기보단, 약간이라도 현실을 바꾼 정책이 각 경제 주체들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살펴본 뒤에 개혁의 속도를 높일지 혹은 낮출지를 정할 필요가 있다. 지역 단위로 정책 실험을 해보고서 대상의 확대 혹은 축소를 검토하는 것도 방법이다. 빅데이터 시대에 전국민에 영향을 주는 정책의 결과를 운에 맡기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을까.

탄력근로제 논란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노동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어떨까. 노동자들이 근로시간을 주 최대 52시간으로 줄이는 대신에 탄력근로제 시행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에서 68시간 사이에서 타협할지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후자에선 최소한 임금삭감의 우려는 없다. 물론 이 선택지를 제시하기 이전에 정부가 약속을 있는 그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진정한 반성이 나아감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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