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이 찬바람을 맞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을 탄생시킨 보수 정권이 든든한 뒷배였지만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최순실 게이트 특종’으로 지지층이던 강성 보수마저 외면하는 이 방송사는 어쩌면 생존을 걱정해야 할 만큼 위태롭다.

그럼에도 TV조선은 지상파 출신 PD들을 대거 영입하며 출범 초기와 달리 드라마·예능에 사활을 걸고 있다. 출범 초 각종 시사 토크쇼와 보도 프로그램 편성으로 ‘종합 편성’이 아닌 ‘보도 채널’ 인상을 줬다면 드라마·예능 확대로 스테이션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공표한 2017년도 방송 사업자 재산 상황을 보면 지난해 TV조선 매출액은 1418억원으로 종편 4개사 가운데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3111억원을 기록한 JTBC 절반에 못 미친다. JTBC 영업이익은 99억원이었지만 전보다 제작비를 크게 올린 TV조선은 3억원의 적자를 봤다.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TV조선 월별 시청률(유료방송가입가구 기준)은 올해 1월 1.07%에서 11월 현재 1.2%로 JTBC와 MBN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평균 월별 시청률은 1.17%로 채널A(1.04%)를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만족스러운 성과는 아니다. 프로그램 투자가 성과를 보기까지는 시일이 필요하다.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해도 문재인 정부와 대척에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부담이다. 조선일보와의 관계 등으로 보도 부문에서 유연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약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조선일보는 TV조선 지분 20.3%를 갖고 있다.

TV조선 시사 프로그램 ‘김광일의 신통방통’은 지난달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를 받았다. 지난 6월 강진에서 일어난 여고생 살인 사건을 선정적으로 다뤄 문제가 됐다.

지난해 방통위는 ‘오보·막말·편파 방송(객관성·공정성·품위유지·토론프로그램)과 관련해 매년 4건 이하로 감소시킬 것’이라는 조건으로 TV조선을 재승인했다. 법정제재 2건을 더 받으면 재승인 조건 위반이다.

▲ TV조선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 TV조선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TV조선이 가장 불편해하는 단체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다. 종편을 실시간 감시하는 민언련은 앞으로도 방통심의위를 통한 TV조선 제재에 주력할 것으로 보여 추가 법정제재 가능성이 높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방통심의위 제재 기준이 오락가락이다. 이를 테면 TV조선의 고(故) 노회찬 의원 시신 이송 생중계 보도에 방통심의위는 ‘의견 제시’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상식적으로 판단했다면 이미 TV조선 법정제재는 10건을 가뿐히 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아웃’이란 이야기다. 

TV조선 내부에선 방통심의위가 과도하게 ‘TV조선 손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TV조선 한 기자는 “방통심의위 입장에서 앞으로 추가 법정제재 조치는 ‘업적 쌓기’ 아니겠느냐”고 했다. 방통심의위 입장에서 TV조선 법정제재만큼 ‘쉬운 성과내기’는 없다는 취지다. TV조선 재승인 문제는 이미 방통위 손을 떠나 정권 차원의 결단만 남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TV조선 내부에서 나온다.

TV조선 내부는 최근 ‘인력 유출’로도 어수선했다. TV조선에서 주력 기자로 평가받는 한 기자가 최근 지상파 경력기자로 이직했다. 이 기자는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 주도 하에 2016년 박근혜 비선실세 최순실 게이트 특종을 쏟아냈던 실력파였다. “젊은 기자들이 아무래도 동요하는 분위기”라는 말이 나온 까닭이다. 지난 여름에도 TV조선의 한 기자가 지상파로 이직했다.

지상파에 비해 한정된 인력도 보도 콘텐츠 역량을 올리기 힘든 요인이다. 한 TV조선 보도본부 관계자는 “사람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난해에 비하면 시청률 상승이나 분위기 측면에서 안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TV조선 보도본부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점은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방정오 TV조선 대표이사 전무 아래서 조직은 출범 초보다 젊어졌다. 방 전무 진두지휘 아래 지상파 출신 예능 PD들을 대거 영입했다. 특히 SBS 출신 서혜진 PD가 연출하는 ‘아내의 맛’, ‘연애의 맛’은 이미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드라마·예능은 방 전무가 방점을 찍고 진두지휘하는 부문이지만 보도본부는 조선일보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평이다. SBS 기자 출신 신동욱 TV조선 ‘뉴스9’ 앵커가 뉴스룸에 방송 전문성을 입히고 있지만 조선미디어그룹 중심은 조선일보 본사 ‘6층’이라는 것.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중심으로 김대중 고문, 양상훈 주필 등 이른바 ‘본사 6층’ 핵심의 TV조선 장악력은 확고하다는게 내부 평가다. 올 연말 혹은 내년 인사를 앞두고 있는 신문 출신 주용중 TV조선 보도본부장도 1990년 2월 조선일보에 입사해 정치부, 워싱턴특파원, 기동팀장, 청와대 출입기자, 논설위원 등을 지낸 ‘조선일보맨’이다. 새 보도본부장 역시 조선일보 사람이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본사 6층’도 과거와 비교하면 다소 변화가 있다. 이를 테면 “방송이 신문 논조를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거듭된 방침이었다.

TV조선 한 관계자는 “예전보다 중도 보수를 지향한다”며 “JTBC와 같은 진보 성향을 표방할 순 없지만 합리적·중도 보수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TV조선’이라는 채널명 교체도 여전히 검토 중이다. 그러나 채널명에서 ‘조선’을 떼어내는 데에는 조선미디어그룹 리더들의 결단이 필요하다. 

오너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방 전무는 조직에 젊은 피를 수혈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업적과 무관하게 이른바 ‘장자연 사건’이 거론될 때마다 언급되고 있다. 그는 장자연 사건을 보도한 MBC를 상대로 억대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운전기사 갑질 논란도 불거졌다. TV조선 콘텐츠와 무관한 오너의 사생활 리스크는 TV조선 이미지 반등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때 채널을 열성적 지지했던 ‘아스팔트 우파’는 유튜브 채널로 플랫폼을 갈아탔다. 출범 초기 선정성으로 성장한 TV조선은 말초적 보수 유튜브 콘텐츠와의 경쟁에서 힘이 달리는 모습이다. 중도 보수로 확장하려 하지만 이미 중도 쪽에는 MBN·JTBC 등이 자리를 잡았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중간광고’를 획득하며 호흡기를 달고 재정비 중이다. 제로섬 광고 시장에서 종편 입지는 지금보다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TV조선 관계자는 “서혜진 PD의 ‘아내의 맛’, ‘연애의 맛’ 모두 성공했다. 내년에는 드라마를 최소 3편 이상 할 것이다. 실력 있는 MBC 출신 PD 2명도 최근 영입했다. JTBC와 격차를 좁힌 종편 2등으로 도약할 것이다. 2019년은 본격 방송사로 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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