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불은 3층 고시원의 유일한 피난로였던 계단 출입구 앞 301호에서 처음 시작됐다. 불길과 연기로 대피로는 순식간에 막혔고 26개에 이르는 방의 거주자들은 화재경보음조차 들을 수 없었다.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하지 않은 탓이다. 소방 조사결과 고시원에 설치돼 있던 화재감지시설은 화재 당시 경보음 자체가 꺼져 있었다.
지난 1982년 12월13일 건축허가를 받은 이 건물은 1983년 8월30일 최종 사용승인을 받았다. 지상 3층 지하 1층의 전체면적 614.31㎡ 규모로 지하 1층에는 다방이, 1층에는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2층과 3층의 고시원에는 53개(2층 24개, 3층 29개)에 이르는 좁은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현재의 소방법상 이런 고시원에는 스프링클러 설비나 복도의 폭, 감지기 등 강화된 안전 규제를 적용받지만 이 고시원은 대부분의 법을 적용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고시원은 스프링클러 설비가 없었고 복도 폭도 현행 규정(120cm)보다 42cm나 좁았다. 건물 자체는 정기 소방시설 점검과 관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갖가지 규제 시행 이전 지어진 건물이라는 게 그 이유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관련 규제만 제대로 적용됐더라도 피해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각종 사고에서 얻은 교훈으로 제2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법규를 손질했지만 정작 노후화로 위험에 놓인 과거 시설물은 적용되지 않았다는 게 근본적 문제로 꼽힌다.
이번 사고에선 이미 갖춰진 소방시설의 허점도 여럿 드러났다. 비상시 탈출을 위해 벽면에 뚫어 놓은 비상구에는 완강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정작 이를 활용한 사람은 없었다. 3층 비상구에서는 2층에 설치된 비상구용 난간으로 완강기 사용 없이 4명이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다. 비상구 반대쪽 창문으로도 4명이 탈출했다.
이는 현재 피난시설의 실효성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낸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에서 양방향 피난을 위해 설치하는 ‘옥외 피난계단’을 주목한다. 우리나라는 안전보단 미관이나 경제성, 건축 용이성만을 먼저 따지기에 이러한 옥외 피난계단은 회피 대상이 되고 있다. 하루빨리 사고의 전환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평균 4만4103건의 화재가 발생해 2181명(사망 325명, 부상, 1856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하루 평균 120건의 화재로 5.9명이 죽거나 다친 셈이다.
반복되는 화재 피해는 줄이려면 강화되는 안전시설을 기존 시설까지 적용할 방안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 의지가 관건이다. 소급 적용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지원 정책과 유도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