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제조업종 가운데 가장 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봉제업에 노조가 다시 들어선다. 이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개선과 공정임금·공정단가를 통한 저임금 문제 해결을 주 목표로 삼는다. 노조 창립 총회는 오는 27일 열린다. 1970년 11월27일 전태일 열사 분신 직후 결성된 청계피복노조 이후 정확히 48년만이다. 

‘서울봉제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위한 1차 회의가 지난 15일 저녁 7시30분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전태일재단에서 열렸다. 창립준비위원인 봉제노동자 13인을 포함해 노조 설립을 지원하는 전태일재단·서울노동권익센터·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노조 등 관계자 6명이 함께 했다.

노조 창립준비위엔 지금까지 봉제노동자 60여명이 모였다. 서울시 전역 9만여명에 비해 많진 않지만 준비위는 “봉제인들이 이렇게 모인 적이 없다. 모여서 한목소리를 내야 하나라도 바꾸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 서울 동대문구 '전태일 재단' 인근에 있는 의복제조업체.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 동대문구 '전태일 재단' 인근에 있는 의복제조업체.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봉제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위한 1차 회의가 지난 15일 저녁 7시30분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전태일재단에서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봉제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위한 1차 회의가 지난 15일 저녁 7시30분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전태일재단에서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32년차 미싱사 이정기씨(50)는 “봉제노동자를 대표하는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은 숨겨진 사람들이었다”며 노조 설립을 적극 주장했다. 이씨는 봉제노동이 서울시를 떠받치는 제조업이라 했다. 의복업 종사자는 서울시 제조업 종사자 중 32.2%를 차지한다. 2017년 한국의류산업협회 조사를 보면 업체수만 1만5200여개, 종사자수는 9만3600여명에 달한다. 3년간 2000여명이 늘었고, 적게는 900여명에서 많게는 1만1900여명까지 24개 자치구에 모두 분포됐다.

노조준비위는 ‘노·사·정 교섭기구’ 설립 시도를 준비 중이다. 업체 별 노사교섭이 의미없다는 생각에서다. 서울 봉제노동자의 90% 가량이 10인 미만 업체에 종사한다. 사업주가 재단사·미상사로 직접 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1~2인 사업장도 적지 않다. 봉제노동도 대표적 저임금 일자리지만 노사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례가 많다.

준비위는 ‘10인 미만 영세사업장 중 직접 노동하는 사업주’를 노조 가입 자격으로 올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봉제산업 활성화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서울시-사업주-노동자 3자협약 및 상설 3자 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하고 있다.

▲ 서울 동대문구 '전태일 재단' 인근에 있는 의복제조업체. 사진=손가영 기자
▲ 서울 동대문구 '전태일 재단' 인근에 있는 의복제조업체. 사진=손가영 기자

이씨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공정임금·공정단가), 일감 확보(물량 안정화) 등이 시급한 개선과제라고 밝혔다. 통상 주 6일, 하루 12시간 가량 일해 쥐는 돈은 200만원 안팎이다. 물량이 많을 땐 300만원까지 오르나 이씨는 “하루 15~16시간 일하기도 하는데 정말 고되다”고 말했다. 4대보험 사각지대도 심각하다. 서울노동권익센터 2015년 발표를 보면 4대 보험 미가입률이 △고용보험 82.6% △국민연금 67.3% △건강보험 35% △산재보험 83.3% 등이었다.

이씨는 청계피복노조 조합원 출신이다. 이씨는 중학교만 마치고 18살부터 봉제일을 시작해 지금까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이씨는 “32년차 50줄인 내가 여기선 아이돌급이다. 어마어마하신 고령 숙련공분들이 대부분이고 예전 청계피복노조에 계셨던 분들도 준비위에 많이 있다”고 했다. 청계피복노조는 1970년 11월13일 전태일열사 분신을 계기로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만든 서울시 내 최초의 봉제노조다.

창립총회는 오는 27일 저녁 6시30분 종로 파고다타워에서 열린다. 봉제노조준비위의 ‘노·사·정 3자 협의기구’ 실험은 유사 업종 노동자들 관심을 받고 있다. 수제화·주얼리·기계금속·인쇄노동자 등 영세사업주가 대다수인 제조업 종사자를 비롯해 업무공간이 파편화된 대리기사·콜택시기사 등 이동노동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봉제업 노조는 전태일 열사 분신 직후인 1970년 11월27일 청계피복노조가 결성돼 80년대 험난한 노조 합법화 싸움을 거친 뒤 1988년 5월 신고필증을 받았다. 청계피복노조는 IMF 직후인 1998년 4월 서울지역의류제조업노조(서의노)로 확대 재편돼 활동하다가 2010년 이후 활동이 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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