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황교안 국무총리 대행 시절 ‘풍자’ ‘패러디’ 요소가 강한 인터넷 게시글도 ‘가짜뉴스’라며 삭제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심의를 하지 않은 채 ‘해당없음’ 처리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가짜뉴스’ 관련 방송통신심의 현황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이 지난해 삭제 요구한 ‘가짜뉴스’ 가운데는 풍자 목적으로 보이는 게시글과 패러디라고 밝힌 글도 포함됐다.

2017년 3월 경찰청은 ‘가짜뉴스’를 모니터링한 결과 19건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 또는 차단 요구하고 5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경찰청은 △미국 CNN 방송 화면을 배경으로 한 뒤 한글로 ‘북한군이 청와대로 진격한다’ 등의 문구를 써넣은 글 △‘유력 대선후보 테마주’를 빙자해 언론 기사 형식으로 주식이 오를 것처럼 작성한 내용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각하 요구 여론이 80%’라는 허위사실을 쓴 게시물 등이 대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경찰이 삭제 요청한 ‘가짜뉴스’ 현황을 분석한 결과 모호한 사례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해외 석학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우려한다’고 소개한 기사 형식의 글이다. 글에 따르면 미국 스탠포드대 국제정치학 겸임교수인 시몬 리트나 소장은 “(한국) 대통령 탄핵의 흐름은 매우 괴이하고 음험한 바탕을 깔고 있다”고 주장했고 프랑스 제논대 정치외교학 박사인 장 자크 비랄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시몬 리트나와 장 자크 비랄은 일본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등장인물이다.

▲ 2017년 경찰이 삭제요청한 가짜뉴스 게시글.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을 석학처럼 묘사한 내용이다.
▲ 2017년 경찰이 삭제요청한 가짜뉴스 게시글.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을 석학처럼 묘사한 내용이다.
▲ 2017년 경찰이 삭제요청한 가짜뉴스 게시글. 포르노 배우 이름을 석학처럼 묘사했다.
▲ 2017년 경찰이 삭제요청한 가짜뉴스 게시글. 포르노 배우 이름을 석학처럼 묘사했다.

유사한 사례로 경찰은 “일본의 북한학자 레이우지 우츠호(霊烏路空, 여, 30세)교수가 박 대통령의 탄핵 인용 소식에 분노를 표했다”는 글의 삭제를 요청했는데 이 인물도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이다.

경찰은 “베트남계 미국인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앤서니 브리튼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규탄하였다”는 내용의 게시글도 삭제 요청했다. 앤서니 브리튼은 포르노 배우인데 ‘지질학자’라는 직업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 표현에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

해당 게시글은 ‘박사모’ 등 친박성향 카페에 게재됐는데 당시 누리꾼들이 게임,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을 해외 석학처럼 꾸며 친박 커뮤니티에 올려 속이고 그 결과를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일간베스트 게시글인 “[긴급!!!] JTBC방송 극우사이트 일베정게회원들 고소”는 ‘패러디’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JTBC가 일베 회원들을 고소했다는 내용을 비롯해 손석희 앵커가 “오늘 브리핑에서는 저희 JTBC가 존경하고 언제나 본 받아 싶어하는 인물 괴벨스를 소개합니다” “저도 이 괴벨스를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해서 손괴벨스라는 별명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손석희 앵커가 이런 표현을 쓸 가능성이 없는 데다 작성자는 “JTBC 뉴스 패러디 반응 좋아서 다시 한번 써본다. ㅋㅋㅋ”라고 밝혔다. 댓글에서도 풍자로 받아들이는 누리꾼이 많았다.

▲ 2017년 경찰이 삭제요청한 일간베스트 게시글. 배경에 봉하마을을 넣는 등 패러디 요소가 있다.
▲ 2017년 경찰이 삭제요청한 일간베스트 게시글. 배경에 봉하마을을 넣는 등 패러디 요소가 있다.
이 외에도 뉴스 화면을 합성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망’ 표현을 쓴 경우도 있는데 배경으로 봉하마을이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고인 모욕 요소’가 들어간 게시글이다.

이처럼 풍자나 패러디 성격의 게시글은 사람에 따라 속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실제 관련 게시글의 댓글을 보면 허위임을 알고 쓴 글과 속은 것처럼 보이는 글이 섞여 있다. 이는 정부에서 가짜뉴스를 규제할 경우 풍자 목적을 예외로 둘 때 적용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물론, 인터넷 게시글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지역 등에 대한 비하가 있는 경우 심의에 돌입하는 건 통상적인 절차다. 그러나 경찰은 ‘가짜뉴스’라고 부각하고 심의규정 가운데서도 ‘사회질서 위반’ 조항을 주로 적용해 심의 요청했다.

앞서 박근혜 정부 때 방통심의위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천안함 사태 관련 루머성 게시글에 사회질서 위반을 이유로 삭제 결정하는 등 사회질서 위반 조항은 정치적 표현물에 대한 심의 근거로 활용됐다.

해당 안건들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방통심의위는 문제된 사안 모두 “관련 법령 및 심의규정을 위반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며 ‘해당없음’ 결정했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내부에서도 경찰의 대응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비하’를 이유로 심의 요청한 게시글 가운데는 친박집회 당시 경찰의 진압을 왜곡해 비판하는 내용도 다수 있었다. 한정된 행정력으로 누구를 위한 ‘가짜뉴스’ 대응에 나서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2017년 경찰이 삭제를 요구한 일간베스트 게시글. 경찰은 자신들에 대한 게시글이 심의규정상 '비하'에 해당한다며 심의 요청했다.
▲ 2017년 경찰이 삭제를 요구한 일간베스트 게시글. 경찰은 자신들에 대한 게시글이 심의규정상 '비하'에 해당한다며 심의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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