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에서 회사와 사주를 강하게 비판해온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지난 25일 차기 노조위원장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미 재선에 성공한 박 위원장은 이제 3선 출사표를 던졌다. 

앞서 박 위원장은 통일부가 지난 15일 ‘탈북민 출신’ 조선일보 기자 취재를 불허한 데 대해 노보(1323호, ‘정부, 北 배려하듯 언론도 존중해야’)에서 정부를 비판하면서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남북회담 취재에 탈북민 출신 기자를 보내는 것이 협상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자사 책임도 물었다가 조합원 반발을 샀다.

노보 발행 이후 노조 소속 정치부 기자들이 “노보가 대다수 조합원들의 ‘민심’이 아닌 특정인의 정치적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비판하는 등 조합원 여론이 악화하자 박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책임질 것을 계속 요구한다면 탄핵 또는 불신임 투표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그러나 노조 대의원들은 탄핵이나 불신임 투표 없이 내달 1일 선거 공고를 한 뒤 예정대로 차기 노조위원장 선거를 치르기로 정리했다. 1988년 조선일보 노조 출범 이후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박 위원장은 두 번째 임기 1년 만료를 앞두고 있다.

대의원들은 박 위원장에게 ‘노보 사유화’ 책임을 물어 노보 편집권 행사를 중단하라고 했고 박 위원장은 이를 수용했다.

박 위원장은 25일 입장문에서 “노보 발행은 노조 활동의 핵심이기에 편집권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직무를 정지하라는 말과 같다”며 “이 때문에 조합원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조합원들 지지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편집권을 고수하는 것도 애매하므로 대의원들 요청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논란이 됐던 정부의 취재 불허 조치 관련 노보에 “메인 제목과 앞세운 내용이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한 정부 비판인데 언론 책임에 대한 설명과 함께 본지에 대한 비판을 덧붙였다고 정부를 대변했다는 논리는 무리한 이분법”이라고 비판한 뒤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 지지를 받으려면 공익을 앞세우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생각도 변함없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노보가 (정부의) 언론 자유 침해를 두둔했다는 주장 자체가 허위 사실에 근거한 선동”이라며 “노보는 사주뿐만 아니라 조합원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불신임 투표는 무산됐지만 차기 선거에 출마해 내부 비판에 적극적인 편집 방침을 지지하는 조합원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차기 노조위원장 선거에 공식 출마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출마한다고 위원장 자리에 연연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다수 생각을 단순히 추종하는 인기 영합주의를 택했을 것”이라며 “물론 그동안 사주 눈치는 보지 않았지만 조합원 눈치는 많이 봤다. 조합원 지지가 있어야 노조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발행하는 노보는 ‘사내 골칫거리’였다. 그는 노보를 통해 조선일보 사주와 경영진은 물론 동료 기자들이 불편할 수 있는 글도 주저하지 않았다.
▲ 박준동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발행하는 노보는 ‘사내 골칫거리’였다. 그는 노보를 통해 조선일보 사주와 경영진은 물론 동료 기자들이 불편할 수 있는 글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평조합원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더 자유롭게 내부 비판 활동을 할 수 있다”며 “노보에 기고하고 거부되면 조합원들에게 메시지를 돌릴 생각이다. 상향평가제와 편집국장 신임투표제가 도입돼 기자 한명 한명이 언론기관처럼 존중되는 날까지 한 명의 조합원으로서 준법투쟁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장문 말미에 “송희영 주필 사태 당시 저를 흔들어 깨운 어느 기자의 노보 기고를 상기한다”면서 “권력과 싸우고, 부자와 싸우고, 회사와 싸우고, 자신과 싸우는 게 기자들이다. 이 네 가지 싸움을 계속하는 대가로 독자가 세끼 밥을 기자 입에 넣어준다”는 인용구로 글을 마무리했다.

이번 사태는 취재 불허 사태 관련 노보로 빚어진 노조위원장과 조합원 간 갈등처럼 보이지만 그동안 박 위원장이 발행하는 노보는 ‘사내 골칫거리’였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 노보를 통해 △처우가 열악한 사내 비정규직과 연대 호소 △임직원 임금 상승에 비해 과도한 사주 배당금 문제 비판 △언론사 세습 문제 지적 △노동 시간 단축 필요성 강조 △회사의 노조 교섭 불성실 비판 △‘뇌물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자사 옹호 보도 비판 등 자신의 소신을 피력해왔다. 조선일보 경영진은 물론 동료 기자들이 불편할 수 있는 글도 주저하지 않았다.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그가 노보를 낼 때마다 조선일보 논조와 다른 관점이 언론계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기자들 사이에선 “박 위원장 개인 생각이 노보에 지나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기자들로 구성된 조선일보 노조 조합원 수는 207명이다.

한편 박 위원장이 편집·발행을 맡지 않은 26일자 조선노보(1326호)는 조합원 결혼 소식으로 1면 발행됐다. 노보는 “지난 노보에 싣지 못했던 조합원 결혼 소식을 전한다. 차기 집행부가 구성될 때까지 노보는 부위원장 주도로 제작한다”고 밝혔다.

아래는 박 위원장 입장문 전문.

노보 편집권 행사를 중단하라는 대의원들의 요청을 수용합니다

노보 발행은 노조 활동의 핵심이기에 편집권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직무를 정지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때문에 조합원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합원들의 지지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편집권을 고수하는 것도 애매하므로 대의원들의 요청을 수용합니다.

그럼에도 불신임 투표가 노조에 상처를 남긴다는 전임 위원장들의 주장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의견 충돌이 발생했는데 매듭짓지 않고 흐지부지 끝내는 게 건강한 조직은 아닙니다. 투표 없이 직무를 정지하라는 것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라는 뜻일 뿐입니다.

노보가 언론 자유 침해를 두둔했다는 주장 자체가 허위 사실에 근거한 선동입니다. 메인 제목과 앞세운 내용이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한 정부 비판인데 언론의 책임에 대한 설명과 함께 본지에 대한 비판을 덧붙였다고 정부를 대변했다는 논리는 무리한 이분법입니다. 본지와 정부의 대립이 격화될수록 내부 비판은 이적행위로 몰리기 쉽다는 점은 예상했던 바입니다. 그럼에도 취재원에게 영향을 주거나 받아서는 안 된다는 언론윤리의 원칙을 간과할 순 없었습니다.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공익을 앞세우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생각도 변함없습니다. 노조는, 그 중에서도 언론사 노조는 내편 네편 가르는 단순한 이익집단이 돼선 안됩니다.

기자단 내규 등 사실 확인이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일정 정도 인정합니다. 더 많은 사실을 취합하고 더 많은 조합원 의견을 들어야 논평의 완성도와 정당성이 높아진다는 지적을 받을 때면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논평에 언급하지 않은 사실, 논평의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실까지 확인하지 않았다고 비난 받을 일은 아닙니다. 노보를 만들면서 최소한 허위 사실이나 ‘~라면’ 식으로 가정에 근거해서 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논란이 되는 논평 안에 관계되는 사람들의 반론을 충실히 넣지 않았다는 지적도 저의 태만함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후에도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허위입니다. 오히려 반론을 통해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기를 기대한 문제제기였습니다. 제가 발행하지 않은 노보를 통해 저도 명예가 훼손됐지만 반론을 통해 의혹이 해소됐습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보다 당당히 의혹을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반론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지난 대의원회의 때 한 대의원은 그동안 거슬렸던 노보들을 들고와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았다고 추궁했습니다. 저도 그동안 반론 기고가 한 건도 없어 논의가 이어지지 못한 점이 아쉬울 뿐입니다. 특히 사내하청업체 동료 해고와 최저임금 갑질 관련 노보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라는 막연한 항변만 있었을 뿐입니다. 사측은 노보 내용 중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 제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노조 활동 중 가장 답답했던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 노보에 무엇이 쟁점인지 다룰 예정이었습니다. 노보 발행 권한을 내려놓았으므로 대신 그 내용을 이 메시지에 덧붙입니다. 이번엔 반론을 해주기 바랍니다.

대의원회의 내용을 노보에 게재하지 않고 벽보로 붙이는 것을 보며 노조활동에 대한 인식차를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노보가 외부에 알려져 회사가 비판받으면 안된다는 프레임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밀이 유지될 리도 없고 사측이 노조와 협상을 거부하는 상황에선 특히 조합원들이 아니라 사측이 걱정할 일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내부비판을 통해 협상력을 높일 수 있어야 하는데 임기 막판에 비판의 강도를 높이던 와중에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습니다. 내부비판이 설득력이 있으면 조선일보에 자정 노력하는 기자와 노조가 있다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설득력이 없으면 큰 파장이 없을 것이므로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조합원 다수의 생각과 다를 순 있지만 내부 비판 노보를 발행했다는 이유로 연판장을 돌리고 노조위원장의 직무를 중단시키는 게 합당했는지 의문입니다. 즉각 반론을 하고 성명서 발행을 표결에 붙이자고 했으면 충분했다고 봅니다.

노보는 사주뿐만 아니라 조합원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신임 투표는 무산됐지만 차기 선거에 출마하여 내부 비판에 적극적인 편집방침을 지지하는 조합원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출마한다고 위원장 자리에 연연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다수의 생각을 단순히 추종하는 인기 영합주의를 택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사주 눈치는 보지 않았지만 조합원의 눈치는 많이 봤습니다. 조합원의 지지가 있어야 노조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개별기사에 대한 비판은 자제하고 편집방향과 논조에 대한 비판에 치중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평 조합원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더 자유롭게 내부비판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노보에 기고를 하고 거부되면 조합원들에게 메시지를 돌릴 생각입니다. 상향평가제와 편집국장 신임투표제가 도입돼 기자 한명 한명이 언론기관처럼 존중되는 날까지 한 명의 조합원으로서 준법투쟁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송희영 주필 사태 당시 저를 흔들어 깨운 어느 기자의 노보 기고를 상기합니다. ‘권력과 싸우고, 부자와 싸우고, 회사와 싸우고, 자신과 싸우는 게 기자들이다. 이 네 가지 싸움을 계속하는 대가로 독자가 세끼 밥을 기자 입에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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