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안방에서 월요일 밤 10시마다 ‘굿닥터’를 만나볼 수 있다. ‘굿닥터’는 자폐증이 있지만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는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주인공의 성장기를 담은 의학 드라마다. 한국 드라마 ‘굿닥터’가 2017년 리메이크돼 미국 ABC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된 데 이어 현재 시즌2가 방영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 포맷이 미국 지상파에 방영된 것도, 시즌2가 제작된 것도 최초다.

당시 KBS 아메리카 대표 등을 지내며 ‘굿닥터’ 포맷 수출을 진두지휘했던 유건식 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원을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8월 굿닥터 리메이크 과정을 다룬 책 ‘한국 방송콘텐츠의 미래를 열다’를 쓰기도 했다. 유 연구원은 “‘굿닥터’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의미가 있다. 문화권이 다른 미국에는 콘텐츠 포맷 수출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 미국판 '굿 닥터'인 '더 굿닥터' 포스터.
▲ 미국판 '굿 닥터'인 '더 굿닥터' 포스터.

- 왜 미국 시장에 주목해야 하는가.

“미국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제3의 시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규모가 크기도 하고 비즈니스 시스템 자체가 잘 돼 있다. 계약 도중에도 계약금이 들어오고, 파일럿 제작이 결정돼도 대가를 받는 등 돈 떼일 일이 없다. 계약이 성사돼도 대가를 못 받을 수 있는 중국과 대조적이다. 미국에서 ‘꽃보다 할배’와 ‘굿닥터’ 리메이크작이 잇따라 방영되면서 미국에서도 한국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 미국에 포맷 수출 방식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예전부터 한국드라마가 미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봤다. 문화, 인종의 장벽이 있어 미국 공중파에서 우리 드라마를 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토리를 미국에 주고, 미국 버전을 만드는 포맷 수출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2013년 콘텐츠진흥원에서 포맷 수출 ‘피칭’(투자 설명회) 작품 모집을 했다. 당시 행사에 참여하고 작품 선정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 ABC에 방영된 미국판 '더굿닥터'와 KBS드라마 '굿닥터'
▲ ABC에 방영된 미국판 '더굿닥터'와 KBS드라마 '굿닥터'

- 출품된 여러 작품 가운데 ‘굿닥터’가 선정된 이유는.

“‘굿닥터’는 미국 시장에 소구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선, ‘메디컬’ 장르가 미국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물론, 미국의 메디컬 드라마가 훨씬 더 잘 돼 있는데 승산이 있겠냐는 지적도 있었다. ‘굿닥터’에는 미국 드라마에 없는 ‘휴머니즘’ 요소가 있었다. 미국 메디컬드라마는 화려한 수술 장면이 중심이기 때문에, 휴머니즘적 요소로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피칭은 어떤 방식으로 했나.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미국에서 피칭 리허설을 했는데, 현지 작가가 미국의 어떤 드라마와 비슷한지 설명하면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천재소년 두기’(1989년부터 1993년까지 방영된 미국 드라마)라는 드라마를 소개해주며 ‘미국판 두기’라고 설명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 또 미국드라마는 시즌5까지 염두에 두고 제작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피칭 할 때 ‘천재소년 두기’와 비슷하지만 주인공이 성장하면 에피소드를 만들 수 없는 그 드라마와 달리 소아과를 배경으로 무궁무진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우리 콘텐츠가 좋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미국 시장에 맞는 특성을 강조해야 한다.”

- 에피소드와 시즌으로 분화된 미국 드라마는 한국과 다르지 않나.

“그 점도 고려해야 한다. 대체로 미국 드라마는 각 회별로 독립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제작방식도 다르다. 미국은 회별로 정산이 이뤄지고 스태프가 구성된다. 우리는 한 작품을 통으로 보고 몰아서 제작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에피소드가 독립된 작품 수출이 더 유리하다. ‘굿닥터’는 회차별로 끊기에 적합한 소재였다.”

▲ 유건식 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원.
▲ 유건식 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원.

- 계약이 성사되는 데 3년이 걸렸다.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나.

“계약 과정에서 상대가 부른 가격이 헐값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힘들었다. 국내 타 방송사의 자료를 받자니 영업비밀로 생각해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CBS와 계약했으나 파일럿 제작까지만 추진되다 중단됐다. 이후 대행사의 지원을 받아 소니와 계약을 했는데 처음 금액보다 2배가량 가격이 올랐다. CBS는 자신들과 계약을 하면 다른 국가 포맷 수출을 막았는데 소니는 허용했다. 만일 CBS와 계약했다면 일본판 ‘굿닥터’는 탄생할 수 없었을 거다. 당시만 해도 선례가 없어서 힘들었다. 앞으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요구를 할 수 있게 됐다.”

- 미국 계약 과정에서 한국의 관행과 다른 점은 어떤 게 있었나.

“가장 놀라운 건 ‘작품에 대한 권리’ 측면이다. 한국은 포맷을 수출하면 작가의 동의를 받는 식인데 미국은 원작의 제작진 모두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고정된 팀이 유지되면서 작품을 제작해 그게 가능하지만 한국은 작품이 끝나면 흩어진다. 당시 제작진 다 찾아다니면서 사인을 받아야 했다.”

- 저서에서 남미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KBS아메리카는 남미 시장도 담당한다. 남미는 한국의 연속극처럼 로맨스가 강하고 극성이 강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뻐꾸기둥지’ ‘천상여자’ ‘루비반지’ 이런 작품들이 반응이 좋았다. 남미의 경우 문맹률이 높아 더빙 작품을 선호한다. 그래서 국내에서 더빙을 해 수출하는데, 기존에는 비용 문제 때문에 편수가 적은 미니시리즈를 수출했지만 오히려 장편의 연속극이 더 인기를 끈 것이다. 여기에는 시장의 차이도 있다. 남미의 드라마는 초기에 광고가 거의 없고 인기를 끌어야 광고주들이 붙는다. 그래서 단편을 하게 되면 광고가 활성화되기 전에 끝나다 보니, 현지에서도 장편을 원한다.”

- 정책적으로 바라는 점은.

“더빙비 부담이 커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 드라마가 잘 되면 자동차, 핸드폰 등 드라마에 나오는 상품도 연관되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있다. 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을 하지만 6주 안에 더빙을 해야 하는 등 규정상 애로사항이 있다. 100편 넘는 작품을 6주 만에 더빙할 방법이 없다. ‘루비반지’를 더빙할 때는 두 팀으로 나눠 같은 배우를 다른 성우가 녹음해야 했다. 또 콘텐츠 수출의 경우 정부에서 방송사들과 함께 투어 방식의 마켓 행사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민간에서 진행하면 당국과 소통이 잘 안 되는 문제도 정부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