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실체도 모른 채
유령의 실체도 모른 채
[서명준의 헤겔광장]

유령이 떠돌고 있다. 가짜뉴스라는 유령이. 물론 이것을 잡으려는 처방들도 있다. 국회와 정치권이 강하게 내놓고 있긴 한데, 그게 대부분 그렇듯이 이번 처방도 별로 고품질이 아니어서 문제라면 문제다. 가짜뉴스특별대책위원회를 만든 더불어민주당,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교란범이니 제작·유포한 사람을 수사해 엄정 처벌하라고 지시한 이낙연 총리, 그리고 범정부 차원의 대응회의를 ‘일단 보류’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등 국가 주요 기관이 공동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이에 선뜻 동의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가짜뉴스 말고 허위조작정보라는 말을 쓰자는 가짜뉴스특위의 박광온 의원은 독일 소셜네트워크법(일명 페이스북법)이 좋은 사례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사업자가 위법 콘텐츠를 자체 삭제하지 않으면 한화로 65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 것이 독일 페이스북법의 특징이다.

이른바 ‘국가’의 영역에 속해있는 이 정치행위자들의 규제정책은 질이 낮을 뿐만 아니라 위험해 보여서 더 문제다. 가짜뉴스를 허위조작정보라고 명명한들 규제의 방식은 결국 둘 중 하나로 요약된다. 사법기관이 직접 검열하거나 인터넷 사업자가 관리하는 방식 말이다. 일단 전자는 별로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민주주의에 완전 역행한다는 건 국가검열의 역사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독일 페이스북법 사례가 즐겨 인용되는 것을 보면 후자의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이것은 과연 만병통치약일까.

여기 문제는 무엇보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더 큰 힘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미 기존의 저널리즘 산업에 맞먹는 힘을 갖게 된 플랫폼 기업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콘텐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력마저 갖게 된다. 이미 페이스북 CEO 저커버그가 뉴스를 지울 것이냐 말것이냐 뉴스가치는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 하는 결정에 미디어업계가 긴장하는 현실이다. 더구나 플랫폼 기업들은 스스로 더 많은 뉴스를 삭제하게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법 판정을 받기 싫어서다. 대체 어느 사업자가 저 많은 벌금을 내고 싶겠는가. 단속기간에 맞추기 위해선 잠재적인 위법 소지가 조금만 보여도 콘텐츠를 급히 삭제할 것이다. 과도한 차단이다. 생각해보자. 법원에서조차 오래 걸리는 결정을 어떻게 일개 기업이 24시간 내에 결정하겠는가.

그렇다면 외려 플랫폼 자본권력을 강화하는 황당한 현실이 나타날지 모른다. ‘국가의 자본’에서 ‘자본의 국가’로의 변이가 더 강화될지 모른다. 사실 정치가 자본에 종속되는 이런 흐름은 이미 오래전에 나타난 것인데, 플랫폼자본이 이를 더 가속화 시키는 중이다. 요컨대, 사회 소통망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플랫폼 사업자는 소통 그 자체보다는 이용자 데이터와 ‘관심’을 다른 기업에 넘겨 수익을 내는 데 더 관심이 있다. 이용자의 상품구매는 물론 정치 성향도, 이용자를 가능한 한 더 오래 플랫폼에 머물게 하는 다양한 기술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그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감성적인 콘텐츠가 넘쳐나고 감성적인 걸 좋아하는 이용자가 더 많이 클릭하고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은 흔적을 남긴다. 그럴수록 더 많은 광고를 보게 된다. 감성으로 점철된 광고들은 이용자를 더 감성적인 인간으로 완성해 간다. 플랫폼 자본이 감성적인 정치의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성 없는 감성의 알고리즘인 셈이다.

이용자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있지만, 플랫폼 자본이 지배하는 공간엔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용자’가 없다. 페북을 무료로 쓰는 대신 광고수익을 보장해주는 콘텐츠를 만들거나 공유해주는 플랫폼 기업의 ‘계약직 직원’만이 있을 뿐이다. 저커버그는 이미 지난해 2월 가짜뉴스와 혐오발언 포스팅과 같은 극단적인 내용을 제거하려 한다는 선언을 했다. 저널리즘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독일의 한 미디어연구소가 조사한 세계 100대 언론기업 리스트에서 페북은 13위에 올라있다. 얼마전 유럽연합(EU)이 도입한 저작권 위반 콘텐츠를 사전에 걸러내는 업로드 필터 의무조항도 같은 사실 맥락이다. 벌금 내기 싫어서 과도하게 차단하는 구글·유튜브는 새로운 검열기관이 될지 모른다. 허위조작정보와 표현의 자유 논쟁을 ‘추상적으로’ 접근해선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짜뉴스라는 유령이 정치선동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SNS와 함께 시작된 것인가. 유튜브는 선동을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인가. 그렇지 않다. 정치적인 선동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는 사실은 조금만 검색해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더구나 필터버블에 갇혀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소비하는, 감성적인 정치선동을 즐기는 SNS의 ‘계약직 직원들’은 또 어떤가. 사정이 이런데도 독일식 규제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선동하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진보 정치권으로부터 강한 반대를 받다가 연방의회를 겨우 통과한 갓 1년 된 독일 페이스북법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법이다. 플랫폼자본에게 지금보다 더 막강한 힘을 주기 때문이다. 자국의 정치공론장이 타국의 플랫폼자본의 손에 넘어갈 수 있는 위험한 법이기도 하다. 독일과 유럽연합에 대해 미국의 저커버그는 그래도 유럽의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고, 또 백인 중심사회라는 문화적 공통점도 갖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 한국 정치와 문화에 대해 그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겠는가. 유령의 실체도 모른 채 덤비다가 역공을 당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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