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이삿짐 업체 사장님께
그때, 그 이삿짐 업체 사장님께
[미디어 현장] 이성원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

이 말을 기사에 꼭 넣어달라고 하셨죠. 대한민국은 노력만 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요. 요즘 청년들은 힘든 일을 거부하고 편한 일만 고집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요. 기성세대 진입로에 서 있는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요. 다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달 초 아는 형님의 가게 이사를 도와주다가 사장님을 뵀습니다. 어쩌다 제가 고시원에서 생활한다는 얘기도 나왔지요. 사장님은 1년간 고시원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와 인생 역전 스토리도 들려주셨습니다. 고시원을 1년 만에 탈출했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짐작이 가더군요. 단지 일 때문에 3주간 고시원에서 생활했던 저로서도 고시원 생활은 악몽 같았거든요. 시설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고시원 생활이 어떤지 거기서 살아본 사람은 알 겁니다. 고시원을 배경으로 한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가 현실을 묘사했다는 점을요.

성실하셨겠지요. 몇 차례 이사해봤지만, 사장님 같은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삿짐에 상처라도 날까봐 비닐로 한 겹 싸고, 그 위에 천 장판으로 꼼꼼히 덧대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사장님을 신뢰했을 겁니다. 지금이 있기까지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배우셨을 테고요. 10년 만에 서울에서 이삿짐 업체를 차리는 게 어디 쉬웠겠습니까.

그런데 마음 한쪽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요즘 청년들 이해하기 어렵지요. 가난하고 배운 게 없으면 ‘노가다’라도 뛰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거부하는 청년도 있으니까요. 사장님 말씀처럼 노가다 열심히 뛰면 한 달에 250만원 법니다. 그 돈 모아 가게도 내고, 빈곤의 탈출구도 마련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사장님처럼 직원들 월급도 주고요. 왜 청년들은 사장님처럼 될 수 없는 걸까요.

사장님, 그거 아십니까. 올해 5월 기준, 노가다 뛰는 청년(15~29세)이 25만3000명이라는 사실을요. 2014년 19만 명보다 6만 명 늘어난 수치입니다. 2016년 기준 육군 병력이 49만 명입니다. 육군 병력의 절반이 뭐라도 해보겠다고 꿈 대신 벽돌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들도 사장님처럼 어엿한 사장이 되고 싶을 겁니다. 도전도 해보겠지요. 이 청년들이 돈을 모아 자영업 전선에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요. 분명히 누군가는 망할 겁니다. 음식점만 하더라도 이미 지난해 신규 창업자 수가 128만 명에 이르고 폐업률은 91.9%라고 합니다. 100명 중 92명이 망할 테고, 8명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실패한 사람들은 ‘노오력’이 부족하다고요. 그들이 부족했던 게 노력뿐이었을까요.

‘2018 청년빈곤 리포트 - D급 청춘을 위하여’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노숙 청년 두 명을 만났습니다. 김모씨는 서울 주요 사립대 시설팀에서 일했던 분인데, 조울증과 결핵에 걸려 결국 노숙자 신세가 됐습니다. 김씨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요. 어머니와는 개인적 이유로 연을 끊어 지금은 한 시설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하면서 그분의 눈을 보는데 저도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제가 조울증과 결핵에 걸리고, 부모님이 저를 돌봐줄 수 없었다면, 저도 노숙 시설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 이성원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
▲ 이성원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부모의 경제력, 건강, 공부할 시간과 태도 등 크게 부족한 게 없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하겠지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사회가 저를 케어해줄 수 있을까요. 노력할 수 있는데, 자발적 빈곤을 선택한 청년을 변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노력했음에도 실패한 청년, 노력조차 할 수 없는 청년을 위한 사회적 배려는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헬조선’이라는 절망적 풍조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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