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지난 15일 ‘탈북민 출신’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에게 남북고위급회담 취재 불허를 통보한 것과 관련해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정부 비판과 함께 자사에도 책임을 묻자 노조 소속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박준동)는 지난 16일자 노보에서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남북회담 취재에 탈북민 출신 기자를 보내는 것이 협상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이번 취재 불허 통보 논란에서 조선일보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통일부는 15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 회담을 취재하려던 공동취재단 소속 김명성 기자의 판문점 출입을 불허했다. 김 기자는 지난 2002년 남한으로 넘어와 2013년 기자가 됐다.

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통일부가 기자단의 특정 기자를 배제하겠다고 밝히자 통일부 기자단은 이를 ‘언론 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조명균 통일부장관에게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 지난 16일 발행된 조선일보 노보.
▲ 지난 16일 발행된 조선일보 노보.
그러나 조선일보 노조는 노보에서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남북회담 취재에 탈북민 출신 기자를 보내는 것이 협상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자사를 겨냥했다. 

이에 노조 소속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들은 이날 늦은 밤 입장을 내어 이번 노보가 “통일부의 ‘언론 자유 침해’, ‘탈북민 차별’ 행위를 감싸고 김(명성) 조합원을 풀기자로 정한 본지의 결정을 나무란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들은 “이번 노보는 정부의 언론 자유 침해, 탈북민 차별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뿐만 아니라 ‘탈북민 출신은 남북 회담에 방해가 되며, 회담 성공을 위해선 언론의 자유나 탈북민 인권을 일부 침해할 수 있다’는 정부의 비뚤어진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 취재 현장에서 분투 중인 조합원들의 사기를 꺾은 것”이라며 “특히 통일부의 조치로 크게 낙담한 김 조합원은 정부의 ‘탈북자 차별’을 두둔한 노보로 인해 다시 한 번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조합원들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노보가 조합원들을 응원·격려하기는커녕 조합원들의 뒤통수를 친 격”이라고 비판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통일부를 출입하는 50개 언론사 중 49개 언론사는 ‘통일부의 탈북민 기자 취재 제한은 부당하다’는 제목의 입장문 채택에 찬성했다”며 “국제언론인협회(IPI)와 유엔인권서울사무소도 김 조합원 취재를 막은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노보는 도대체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가. 조선일보 노동조합원들인가, 정부인가”라고 비판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보가 대다수 조합원들의 ‘민심’이 아닌 특정인의 정치적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점”이라며 “이번 노보에는 ‘전쟁이냐 평화냐’식의 이분법적 안보관, 북한 체제에 대한 내재적 접근 필요성 등 한쪽으로 편향된 의견들이 여과 없이 실렸다. 이에 정치부 소속 조합원 전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도 했다. 노보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박준동 노조위원장(한국기자협회 조선일보지회장)을 겨냥한 비판이다.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 조선일보 사옥 간판. 사진=미디어오늘
정치부 기자들은 “이번 노보에 실린 글이 마치 조선일보 노동조합원들의 공통된 견해처럼 외부에 비치게 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조합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노보는 더 이상 노보가 아니”라며 “이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하면서도 조합원들의 권익과 직결된 사안을 노보 머리기사로 다루기로 했다면 최소한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하지만 노조는 이번 사태의 주무 부서인 정치부나 사건 당사자인 김 조합원에게 단 한 차례의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노보 발행 경위 공개 △추후 대의원 회의를 통한 이번 사태 후속 조치 마련 △노조의 공식 사과 등을 요구했다.

박 위원장이 이끈 노조 집행부는 △처우가 열악한 사내 비정규직과 연대 호소 △임직원 임금 상승에 비해 과도한 사주 배당금 문제 비판 △언론사 세습 문제 지적 △노동 시간 단축 필요성 강조 △회사의 노조 교섭 불성실 비판 △‘뇌물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자사 옹호 보도 비판 등 사내 경영진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활동했다. 

박 위원장이 노보를 낼 때마다 조선일보 논조와 다른 관점이 언론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자들로 구성된 조선일보 노조 조합원 수는 207명이다. 지난해 12월 연임한 그는 위원장 1년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그가 다시 위원장 선거에 출마할지도 관심을 모은다. 아래는 노조 소속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 일동의 입장문. 16일자 조선일보 노조 노보 전체보기

[조선노보에 대한 조선일보 정치부 노조원 입장]

10월 16일 발행된 ‘조선노보’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노보는 전날 통일부가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재할 예정이던 본지 김명성 조합원에게 취재 불허를 통보한 사태와 관련, “책임 있는 언론이라면 남북회담 취재에 탈북민 출신 기자를 보내는 것이 협상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정부 입장을 두둔했다. 정부의 조치를 비판한 내용도 일부 포함됐지만, 글의 배치와 분량을 감안하면 통일부의 ‘언론자유 침해’ ‘탈북민 차별’ 행위를 감싸고 김 조합원을 풀기자로 정한 본지의 결정을 나무란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노보는 정부의 언론자유 침해, 탈북민 차별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뿐만 아니라 ‘탈북민 출신은 남북 회담에 방해가 되며, 회담 성공을 위해선 언론의 자유나 탈북민 인권을 일부 침해할 수 있다’는 정부의 비뚤어진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 취재 현장에서 분투 중인 조합원들의 사기를 꺾은 것이다. 특히 통일부의 조치로 크게 낙담한 김 조합원은 정부의 ‘탈북자 차별’을 두둔한 노보로 인해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조합원들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노보가 조합원들을 응원·격려하기는커녕 조합원들의 뒤통수를 친 격이다.

노보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본지가 김 조합원을 풀기자로 정한 결정을 재고했어야 한다’는 취지의 논리를 폈다. 이 같은 인식은 현장 취재 기자를 비롯한 대다수 조합원들의 생각은 물론, 언론계 전반의 정서와도 동떨어진 것이다. 판문점 남측(평화의집)에서 열리는 회담에 통일부 출입 6년차인 김 조합원을 풀기자로 보내는 건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윤형준 조합원이 최근 통일부에 투입됐지만 출입 기간 조항(최소 3개월)을 충족하지 못해 풀기자 자격이 없었다. 통일부 출입기자단도 이같은 결정을 존중했다. 또 통일부를 출입하는 50개 언론사 중 49개 언론사는 ‘통일부의 탈북민 기자 취재 제한은 부당하다’는 제목의 입장문 채택에 찬성했다. 참고로 통일부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우호적인 매체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출입처 중 하나다. 국제언론인협회(IPI)와 유엔인권서울사무소도 김 조합원의 취재를 막은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밝혔다. 조선일보 노보는 도대체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가. 조선일보 노동조합원들인가, 정부인가.

가장 심각한 문제는 노보가 대다수 조합원들의 ‘민심’이 아닌 특정인의 정치적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점이다. 이번 노보에는 ‘전쟁이냐 평화냐’ 식의 이분법적 안보관, 북한 체제에 대한 내재적 접근 필요성 등 한쪽으로 편향된 의견들이 여과없이 실렸다. 이에 정치부 소속 조합원 전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노보에 실린 글이 마치 조선일보 노동조합원들의 공통된 견해처럼 외부에 비치게 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조합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노보는 더 이상 노보가 아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하면서도 조합원들의 권익과 직결된 사안을 노보 머릿기사로 다루기로 했다면 최소한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하지만 노조는 이번 사태의 주무 부서인 정치부나 사건 당사자인 김 조합원에게 단 한 차례의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의원 회의를 소집하지도 않았다. 노조 집행부 차원의 의견 수렴 과정도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대다수 조합원들은 특정인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 개진을 위해 노보를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노조 집행부는 이번 노보의 발행 경위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특정인의 의견을 독단적으로 노보에 게재했다는 의혹이 사실인지, 아니라면 발행에 앞서 어떤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는지 낱낱히 밝혀야 한다. 또 최대한 빨리 대의원 회의를 열어 이번 사태의 후속 조치 등을 논의할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조합원들의 사기를 꺾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 데 대해 공식 사과하라.

조선일보 정치부 소속 노동조합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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