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박사와 박근혜 정부 연관성에 의혹을 제기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무죄를 선고 받았다. 류 교수는 지난 2005년 황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논문 조작의혹을 처음 폭로한 공익제보자 ‘닥터K’로 알려졌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3단독 조현락 판사는 10일 오후 류 교수에 대한 명예훼손 1심 선고 공판에서 황 박사와 관련한 류 교수 언론 인터뷰 등이 비방 목적이나 명예훼손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류 교수는 지난 2016년 두 차례 언론 인터뷰와 한 차례 토론회 발언으로 황 박사와 박근혜 정부 유착 의혹을 비판했다. 2016년 당시는 언론이 박근혜 정부가 차병원의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승인한 과정에 황 박사가 개입했으며, 황 박사가 이른바 ‘비선 실세’ 등과 친분이 있다는 의혹을 전하던 때였다. 류 교수는 관련 의혹들을 근거로 의료계와 정치 권력 결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 황우석 박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류영준 강원대 교수가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황우석 박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류영준 강원대 교수가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황 박사는 지난해 1월 류 교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약 6개월 만에 류 교수를 재판에 넘긴 검찰은 지난 8월31일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이 소송과 재판은 법조계 일각에서 논란을 샀다. 황 박사가 같은 내용의 언론보도에는 법적대응을 하지 않고 정작 언론보도를 근거로 한 발언에만 법적대응에 나서서다. 이를 두고 황 박사가 류 교수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차단하거나 위축시키려고 소송에서 질 것을 감안하고도 이른바 ‘전략적 봉쇄 소송’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사회 각계에선 검찰의 기소와 구형을 두고 “공적 발언을 이유로 기소해 학자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히틀러나 스탈린 독재체제에서나 가능한 야만”(한국PD연합회)이며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어렵게 다져온 한국의 생명의료윤리에 대한 명예훼손”(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 같은 논란 속에 열린 선고 공판에서 1심 재판부는 류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일부 사실은 허위 사실이 아니거나 중요한 부분과 관련해 허위라 보기 부족하다”며 “설령 허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황 박사 비방 목적이 있었는지 명예훼손 고의 여부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 연구와 비동결난자 사용 여부 관련 정책 결정은 인간 존엄과 관련 있는 생명윤리 내지는 고도의 공적인 관심사안”이라며 “(류 교수 발언은) 정부 정책에 여론을 형성하거나 의견을 제기하기 위해 공공성과 사회성을 갖춰 의견을 표명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의료윤리를 전공한 류 교수가 현재 학생들에게 의료·연구윤리를 가르치는 교수이자 한국생명윤리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점, 2016년 당시 황 박사와 관련한 발언 외에도 정부 정책 등과 관련한 의견을 냈다는 점 등도 고려됐다.

재판부의 허위 사실 여부 판단은 세 가지 사안에 대해 이뤄졌다. △황 박사가 청와대 주재 회의에 참석해 차병원 연구 승인을 요청한 의혹은 허위로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으며 △황 박사와 ‘비선실세’ 친분 의혹 △황 박사와 박 전 대통령 독대 의혹 등은 과장돼 보도됐거나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료계와 정치권력의 관계 의혹 제기와 정부정책 비판을 위해 사실을 적시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되고 사실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피해자 비방 목적 내지는 인신 공격까지 이르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판 직후 류 교수는 기자들과 만나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 무리한 기소가 있었지만 다툼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언론 보도를 기반으로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면 그 의혹을 풀어야지 입을 막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황우석 박사 본인은 아직 무슨 잘못을 했는지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기에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재발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앞으로도 한국사회 시스템 문제를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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