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여 명의 내외신 취재진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 모였다. 평양에서 열린 기념비적인 3차 남북정상회담을 누구보다 빨리 취재하기 위해서다. 지난 4월 일산 킨텍스에 마련된 1차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 모인 4000여 명의 취재진 숫자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취재 열기는 식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도 국내 많은 매체가 외신 기자들을 붙들고 의견을 물었다. 외신 기자들의 반응을 기사로 쓰기 위해서다.

▲ 지난 9월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각국 취재진이 대형모니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9월1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마련된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에서 각국 취재진이 대형모니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나도 동료 기자들에게 외신기자의 반응을 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외신기자들의 강한 반발에 번번이 인터뷰에 실패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유럽계 외신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당신도 상사가 시켜서 했겠지만 나는 외신의 반응을 취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의미 없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에 기여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인터뷰를 거절하겠다.” 그의 반응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실례였다면 미안하다”고 머쓱하게 자리를 떠났지만, 순간 이들의 반응에 대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침 9시가 되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기자들 책상 앞쪽에 온통 파랗게 칠해놓은 단상에 올라 대표단이 북한에서 보낼 하루 일정을 브리핑했다. 이는 미리 고지되지 않아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에 따라 기사의 주제가 결정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윤 수석은 브리핑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손을 든 기자를 지목하고 바로 매체명과 기자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아는 청와대 기자들’의 정해진 질문만 받는다는 불만도 나왔다. 종종 끈질기게 손을 든 기자의 질문도 받았지만 수석은 대체로 ‘현지 상황에 따라서 스케줄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내가 확인해 줄 만한 정보는 없다’ 내지는 ‘미국 측과도 긴밀하게 협의를 해오고 있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추가질문을 받지 않는다고 그 자리에서 문제제기한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 지난 9월18일 오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마련된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정상회담 첫날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9월18일 오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마련된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정상회담 첫날 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국내 언론이 서구권의 반응을 취재해왔던 구태의연한 관성 역시 외신기자들의 강한 반발과 맞닿아 있었다. 물론 외국인들의 반응을 마침 옆에 있는 외신기자를 통해 간편하게 취재해 보도하려고 한 점이 있겠지만 애초에 왜 다른 나라 사람들, 특히 ‘파란 눈의 외국인’들의 반응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기사가 되는가는 새삼스러운 의문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한국 땅에서 벌어지는 최초의 역사를 굳이 외부의 시선 속에서 기록할 필요도 없었다.

국내 언론사인 영자신문도 영어로 기사를 쓰는 점에선 외신과 같을지 모르나 출입처에 나가고 국내 이슈를 더 긴밀하게 보도한다는 점에서는 외신과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자국의 시선이 크게 반영되는 외신기사들보다 한국의 논리와 관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매체다. 일련의 외신기자 인터뷰 거절 과정을 겪으며 한반도 문제를 보도함에 있어 영자신문 기자로서의, 혹은 나의 ‘시선’이 부재했음을 통감했다.

▲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
▲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
DDP에서 같이 취재한 동료들의 볼멘소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3차는 프레스센터가 작아지고 외신기자의 수도 반으로 줄어든 것을 보면 사람들이 남북정상회담에 관심이 없어졌다느니, 겨울에 서울에서 이 취재를 또 해야 한다느니, 너무 일이 많아서 힘들다느니 말이다.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남북정상회담이 ‘일상적’이 돼간다는 방증이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내가 시선을 두고 써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입만 쳐다보는 기사만을 생산하는 것이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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