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이 혁신을 이야기할 때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곳이 영국 BBC와 미국 뉴욕타임스다. 그런데 언론계가 지금껏 편의대로 BBC와 뉴욕타임스 혁신의 일부만, 혹은 보고 싶은 대목만 보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신문과 방송’ 9월호에서 ‘한국 언론의 디지털 역량 진단’이란 주제의 기고글에서 BBC와 뉴욕타임스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국의) 모든 혁신 담론에 노골적인 누락이 있다. 혁신을 수반하는 구조조정이다.”

이준웅 교수는 “혁신의 막다른 골목에는 비용 통제가 있으며, 그것도 오래된 핵심 역량을 잘라내는 난폭한 방식의 구조조정을 동반한다”고 지적했다. 

기고글에 따르면 1300여명 가량의 정직원이 근무하는 뉴욕타임스는 2017년 1월 등장한 ‘2020보고서’ 이후 편집기자 100여명 중 절반이 정리해고 대상에 올랐다. 경영진은 100여명의 기자를 새롭게 고용하기 위해 편집부를 구조조정의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2017년 정리해고는 뉴욕타임스가 2008년 이후 추진한 여섯 번째 정리해고였다. 2014년 구조조정에서는 100명 축소가 목표였는데 최종적으로 87명에게 희망퇴직을 받고 나머지는 해고했다. 그리고 해고한 만큼 디지털 분야에 적합한 새 직원을 뽑았다.

▲ BBC와 뉴욕타임스 로고.
▲ BBC와 뉴욕타임스 로고.
BBC는 어떨까. 2016년 말 기준 BBC는 1만8920명의 정규직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는 2011년 말 기준 1만9767명에서 847명 감소한 수치다. 2016년 BBC가 쓴 인건비는 전체 영업비용의 21%였다. 

BBC는 수입의 약 78%를 수신료 수입으로 충당한다. BBC는 칙허장 갱신 과정에서 효율적 경영을 약속하고 있는데 이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BBC는 진보-보수 양쪽의 비판을 견디기 위해 효율경영을 입증해야 한다. 

BBC는 2016년 301명에 불과하던 디지털 인력을 2016년 1395명으로 늘렸다. 구조조정이 수반된 결과였다. BBC는 2011년 당시 2016년까지 2000명을 감축한다는 구조조정 계획안을 약속했다. 이후 2016년까지 총 3400명을 ‘정리’했다. 그러나 2011년 대비 2016년 직원기준 순 감소 인원은 847명에 그쳤다. ‘정리’한 만큼 새로 ‘고용’했기 때문이다.

2014년 구조조정에서 BBC는 보도본부 직원 8100명 중 415명을 정리해고하고, 디지털 뉴스에서 195명을 새로 채용했다. 비용절감은 디지털 재투자로 이어졌다. 2016~2017년에도 BBC는 539명을 정리해고했다. 그러나 이 기간 직원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디지털과 월드서비스 분야에 새롭게 고용을 늘려서다.

BBC는 2017년 초 BBC스튜디오를 상업적 자회사로 독립시켰다. 이를 통해 BBC스튜디오는 BBC는 물론 다른 방송사에도 프로그램을 납품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BBC는 2000여명의 스튜디오 직원 중 300여명을 정리해고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BBC와 뉴욕타임스의 혁신은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동반한 것”이라며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디지털 혁신을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법적 해고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이며 노동시장 경직성이 강하다. 이 조건이 우리나라 언론매체의 혁신에 대해 갖는 함의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공영방송의 경우 KBS가 2018년 9월1일 현재 4606명의 정규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MBC는 2018년 9월 현재 1657명의 정규직원(임원 제외, 서울 기준)이 근무한다.

KBS는 향후 5년 간 88올림픽 무렵 대규모 채용됐던 1300여명의 ‘88사번’들이 자연퇴사하며 구조조정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MBC의 경우 김재철-안광한-김장겸 사장시절 파업 참가자를 업무에서 배제하기 위해 채용한 경력직원이 200여명 수준으로 조직 혁신이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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