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특별사절단(특사단)이 5일 평양을 방문하기로 한 가운데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방북해서 논의할 의제를 밝혔다.

정 실장은 4일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9월 중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이미 합의한 정상회담의 구체적인 일정과 의제 등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판문점 선언 이행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을 진전시키기 위한 여러 방안들도 논의해 9월 정상회담에서 보다 구체적 합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정 안보실장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 항구적 평화정착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들도 협의할 예정”이라며 “한반도의 평화는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 안보실장은 “남북관계 발전은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하는 주된 동력”이라며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서 한반도 비핵화 협상 과정을 견인해 나가야 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대북 특사단의 성패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하거나 구체적인 비핵화 조처를 밝힌다면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 이후 경색된 북미관계를 회복시킬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 8월4일 오후 대북특사로 평양에 파견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외교·안보 장관회의를 마친 뒤 방북 일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8월4일 오후 대북특사로 평양에 파견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외교·안보 장관회의를 마친 뒤 방북 일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만 북한을 돌이켜 세울 선물이 마땅치 않다. 북한은 4일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지만 관계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동신문은 논평에서 “제재와 봉쇄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며 “우리의 자강력을 최대로 높여 나갈 때 적들의 그 어떤 반공화국 압살 책동도 맥을 추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 수위를 높였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대통령 친서는 휴대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판문점 선언의 이행속도를 높여 남북관계를 발전시키자는 수준에 머문다면 북한의 입장 변화를 기대키 어렵다. 미국의 대북제재를 반감시킬 남북 경제협력 방안을 들고 가더라도 북한은 미국의 대북제재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만 내세울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 동의를 재요청하고 민주당이 국회의 남북정상회담 동행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북한을 돌이켜 세울 선물이 마땅히 없다는 점을 방증한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한반도 비핵화를 이끌 동력이 남북관계 발전이라고 했지만 파격적 메시지가 없다면 현재 경색국면을 타개할 방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사 방북 전 미국이 긍정적으로 해석할 메시지를 내놓을 경우 반전이 가능하지만 섣불리 기대하기도 힘들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미국 쪽의 메시지를 가져가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과는 늘 긴밀히 공조를 하고 있고 이번 특사단 북한 방문 과정에도 미국과 정보 공유하고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최악의 경우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경우 남북관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 정의용 안보실장은 “아직 김정은 위원장 면담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 저희가 평양에 도착한 이후에 세부일정이 확정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지난 3월5일 북한 노동당 본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 지난 3월5일 북한 노동당 본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이번 특사 방북의 가시적인 성과물은 개성에 설치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용 실장은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를 위한 그 물리적 준비는 사실상 완료가 됐고 남북 간에 연락사무소 구성 운영에 대한 합의서 문안도 타결이 됐다”면서 “다만 개소식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서 남북 간 계속 조율하고 있고 특사단 방북 결과로 공동연락사무소 개소와 관련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사단이 귀환하면 남북정상회담 일정은 곧바로 발표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일보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이를 취재할 남측 메인프레스센터 등을 설치하기 위해 서울 동대문디자인센터(DDP)와 근처 호텔을 비워 놓고 있다면서 “오는 18~20일, 2박3일 일정으로 개최하는 안을 북측에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9절과 9월말 예정된 유엔 총회 사이 가장 최적의 시점이 오는 18~20일 사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에 대해 권혁기 청와대 춘추관장은 “정상회담을 위한 프레스센터를 동대문디자인프라자로 특정기간을 계약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며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이 안 된 상황이기에 일정이 확정되어야 프레스센터 공간을 임대하고 준비한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대북 특사단은 5일 오전 특별기 편으로 서행 직항로를 통해 방북하고 오후 북한에 체류한 뒤 서울로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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