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본의 아니게 성폭력과 성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시민의 변화된 인식과 열망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한국일보 8월20일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이후 소위 진보·보수 언론이 ‘안희정 1심 판결’을 두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성폭력 혐의에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지난 14~22일까지 조간신문을 확인한 결과 대다수 언론이 무죄판결 비판 여론을 비중 있게 담았다.

위 기간 동안 한국일보 22건, 한겨레 20건, 경향신문 20건, 동아일보 19건, 중앙일보 15건, 조선일보가 11건의 관련 기사를 냈다. 보수언론이 안 전 지사 판결을 비판하는 여성계 목소리를 충실하게 담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1심 선고 다음날인 15일 “‘권력형 성범죄에 면허내준 꼴’ 들끓는 여성계”(조선일보), “‘여성 못 지켜주는 법’…24년 전 첫 성희롱 판결보다 후퇴”(중앙일보), “김지은 ‘끝까지 범죄 증명할 것’…대책위 ‘침묵 강요하는 판결’”(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은 여성계 목소리를 제목에 담아 사회면 톱기사로 비중 있게 실었다.

이날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무죄판결이 미투 운동의 위축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도덕적·정치적 무죄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깊게 새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 15일자 동아일보 사설
▲ 15일자 동아일보 사설

이 같은 비판은 안 전 지사가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였다는 사실도 반영됐다. 보수신문은 늘 칼날을 여권을 향하는 겨누고 있다. 이날 사회면에 배치한 다른 기사를 보면 동아일보는 “野 ‘수많은 괴물에 면죄부’…與는 언급 없어”란 기사에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이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한데 반해 민주당이 논평을 내지 않은 부분을 파고들었다. 중앙일보 역시 사회면 하단에 민주당의 침묵과 “미투 운동에 대한 사형선고”라 내놓은 한국당 논평을 대조했다.

7월 초부터 안희정 사건 공판 과정에서 법원은 검찰·김지은씨 측 증인의 발언은 2차 피해 등을 이유로 비공개했지만 안 전 지사 측 증인의 진술은 공개했다. 결과적으로 안 전 지사 측 주장만 널리 퍼졌고, 재판도 그 연장선에서 판결 나 시민들 분노가 커졌다. 이는 한겨레 등 진보언론이 공판 때부터 계속 지적한 문제다. 경향신문은 17일자 기사에서 안 전 지사 재판과 달리 연극연출가 이윤택씨 재판은 모두 비공개한 것을 비교해 보도했다.

한겨레는 15일 사설에서 “터져 나온 미투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중심의 법정 문턱이 여전히 높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비판했고, 한국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의 갈 길이 아직 멀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20일 “남자들도 나왔다 ‘안희정 무죄 규탄’ 주말 대규모 집회”란 기사에서 성폭력 이슈가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는 한편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들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전했다.

한겨레는 이윤택·김기덕·고은 사건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안희정 무죄판결로 절망감을 호소했다고 전하는 한편 법조계 조언을 담아 안 전 지사 건과 이들 사건의 가해자 혐의가 다른지 보도하면서 동시에 안희정 무죄판결이 미투 운동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를 전했다.

14~22일까지 방송사 메인뉴스도 1심 판결을 비판했다. JTBC ‘뉴스룸’은 9일간 11건의 리포트를 냈고, 같은 기간 SBS ‘8뉴스’는 7건, MBC ‘뉴스데스크’는 7건, KBS ‘뉴스9’는 4건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보수성향의 TV조선도 같은 기간 9건의 리포트를 냈다.

▲ 안희정 1심 판결 이후 방송보도화면 갈무리.
▲ 안희정 1심 판결 이후 방송보도화면 갈무리.

▲ 지난 7월13일 오전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으로 재판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회원들이 ‘증인 역고소’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7월13일 오전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으로 재판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회원들이 ‘증인 역고소’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JTBC ‘뉴스룸’은 14일 “당사자들 간의 위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부동의 강간을 처벌할 수 없는 법체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판결을 입법책임으로 미루는 무책임한 결론”이라고 보도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은 이날 앵커브리핑에서 “이번 판결이 이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세상의 절반을 숨죽이게 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TV조선 ‘뉴스9’는 15일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은 미투운동의 미래와도 관련이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는 한편 “국회에서 올해 초 미투가 시작된 이후 동의가 없다면 강간으로 규정하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14일 “(재판부는) 현행법상으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지금 법으로도 법원이 얼마든지 전향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이어진 리포트에서 “민주당은 오늘 아무런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미투 운동을 적극 응원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고 보도했다.

KBS ‘뉴스9’는 16일 “국회의원들은 성폭력 처벌법에 대해 보완 입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재판부가 자신들의 협소한 법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책임을 국회로 떠넘겼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대다수 언론은 18일 ‘성차별·성폭력 5차 끝장집회’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안희정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성폭력 관련 언론보도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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