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 앞 시위는 거의 없다시피 해요. 사람들이 여의도동 당사 앞에 하던 시위를 이제는 국회 근처에서 주로 해요.” 20일 낮 3시께 서울 영등포동 자유한국당 당사 앞은 사람이 아닌 차 소리로 시끌했다. 승용차뿐 아니라 레미콘과 기중기 차량, 트럭이 10차선 도로 위에서 제각각 속도를 냈다. 1층에 자리한 자동차 대리점에 주차한 차량에 가려 당 현판은 보이지 않았다. 입구를 24시간 지키는 5명의 경찰을 보고 이곳이 한국당 당사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난달 11일 자유한국당은 당사를 영등포로 옮겼다. “저희는 처절한 진정성으로 더 낮은 곳에서 국민들이 부를 때까지 쇄신과 변화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전 여의도 당사 현판 철거식에서 김성태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가 말했다. 한국당은 20대 총선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후원금과 정당보조금이 감소해 타격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올해 2분기까진 정당 가운데 가장 많은 정당보조금(34억4000만원)을 받았으나, 3분기(33억2590만원) 들어 근소한 차이로 더불어민주당(33억5421만원)보다 줄어들었다.

자유한국당은 11년간 사용하던 서울 여의도동 한양빌딩 2~7층에서 영등포동 우성빌딩 2~3층으로 축소 이전했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현재 당사에는 부서가 총무국과 민원소통국만 남아 있다. 다른 모든 부서는 국회로 옮겼다”고 했다. 부동산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현 당사 월 임대료는 관리비를 포함해 2000만원가량으로, 이전(1억원)보다 8000만원 정도 줄었다. 당시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실질적으로 여의도 당사의 15% 정도 규모”라고 밝혔다.

▲ 영등포로 이전한 자유한국당 당사. 자유한국당은 우성빌딩 2층과 3층에 입주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영등포로 이전한 자유한국당 당사. 자유한국당은 우성빌딩 2층과 3층에 입주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당사 앞을 지키며 매일 시위 일정 소식을 듣는 복수의 경찰 관계자는 최근에 당사 앞에서 열린 시위는 한 달 전쯤이 마지막이었다고 귀띔했다. “당직자들도 거의 안 보여요. 다 여의도에서 지낼 걸요.” 시민사회단체들의 집회장소로서도 상징적이었던 여의도 당사 모습과 사뭇 다르다. 당사 이전을 결정할 때 기존 당사 건물주는 당사 주변에서 이어지는 각종 집회 소음 때문에 계약 연장에 난색을 표했다고 알려졌다.

기자들 발길도 끊겼다. 한국당에 출입하는 기자 A씨는 “이전엔 당사 브리핑룸에 갈 일이 많았지만 이제 국회에서 기다렸다 브리핑 받는다”며 “사실 기자로선 편해졌다”고 전했다. 한국당은 종종 당사에서 하던 최고위원회나 브리핑 등을 이제 모두 국회에서 한다. 당사 원내대표실과 기자실 등을 없애고 국회 내 공간을 쓰기로 했다. 또다른 한국당 출입기자 B씨도 “홍준표 당대표 시절엔 (여의도 당사에서) 예고 없이 기자회견을 하거나 대책회의를 했다. 기자들이 7층 대강당에 꽉 차기도 했다”며 “그에 비하면 주목도가 줄어든 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A 기자는 “당의 위상은 지지율이나 메시지의 정확성이 관건이지, 당사 크기로 결정되진 않는다고 본다”며 “시민들은 (당사 위치나 크기를 근거로) 존재감을 다르게 느낄 수도 있겠다”라고 했다.

▲ 2014년 당시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 사진=이치열 기자
▲ 2014년 당시 새누리당 여의도 당사. 사진=이치열 기자

우성빌딩은 자유한국당이 이전하기 전 노동자의 건물이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화학섬유연맹, IT연맹, 보건의료노조 등 산별연맹이 대거 입주해 ‘민주노총 2청사’라고 불렸다. 자유한국당이 옮겨오기 직전에 우성빌딩을 나온 보건의료노조는 300m 떨어진 곳에 새 둥지를 틀었다. 보조금과 후원금 사정으로 우성빌딩으로 옮긴 한국당과 달리 조합비로 단독건물을 매입해 새 터전을 마련했다. 당사에서 170m 거리엔 노동당이 4년째 자리 잡고 있다. 당사가 자리한 동네는 중장비 부품 가게들이 들어선 오랜 공구 상가이기도 하다. ‘철물점’ ‘도기·타일’ ‘지게차 매매’ ‘컨테이너 임대’ 등 간판들이 눈에 띈다. “원래부터 많았어요. 서울에 있는 세 곳 가운데 하나예요. 청계천은 신축(관련 철물)이고, 여기는 중공업 장비 부품을 다루고. 구로가 새로 생기기 전엔 더 컸죠.”

주변 사람들에게 자유한국당 당사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경찰 분들이 서 있으니까 ‘저게 뭐지’하고 보다가 알았어요. 간판은 있는지 몰랐고요. 그렇게 안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당사에서 한 블럭 떨어진 철물점 직원  C씨가 말했다. 주민들은 지난달 한국당 이전 당시 주변이 한동안 시끄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인근 철물절 사장 D씨는 “당사 들어오늘 날, 그리고 한 2주 동안 시끌시끌했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당사를 환영하는 이는 찾기 어려웠다. 당사 인근 중장비 부품가게에서 부품을 골라내던 직원 E씨(45)는 “분위기를 보면 다들 썩 좋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내가 지지하는 정당도 아니고, 또 원래는 조용했던 동네가 가끔 시끄러워질 때가 있어요. 태극기 부대 말이에요.” D씨는 “당사가 여기로 오니 주차공간이 사라졌다”고 했다. “앞에 작은 컨테이너 있는 곳이 원래 주차공간이었어요. 근데 당사 출입하는 사람들 지켜봐야 한다고 경찰이 가져다놓은 거죠. 주차가 복잡해졌어요.” 그는 “그밖에 변화는 딱히 못 느꼈다”고 덧붙였다.

▲ 지난달 11일 영등포로 이전한 자유한국당 당사. 자유한국당은 2~3층에 입주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달 11일 영등포로 이전한 자유한국당 당사. 자유한국당은 2~3층에 입주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당사 이전’은 위기에 빠진 정당들이 이미지를 쇄신하는 비기 노릇을 해왔다. 한나라당은 지난 16대 대선 당시 불법 대선자금 사건이 터져,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 여의도 당사 매각 후 ‘천막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같은해 강서구 염창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가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여의도로 다시 이전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열린우리당 창당 때 국민일보빌딩 당사가 ‘호화 논란’을 부르자 총선을 앞두고 영등포 옛 농협 청과물공판장 건물로 옮겼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달 영등포 당사 현판식에서 “기득권과 관성, 잘못된 인식과 사고들 모두 여의도 당사에 버려두고 여기서는 오로지 국민의 삶만 생각하는 진정한 서민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