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 가죽, 전기요금, 근무 장소까지 모두 회사가 제공합니다. 우리가 가진 건 두 손뿐인데, 왜 우리가 사장입니까.”

수제화를 만드는 제화노동자들이 14일 오후 노동자로 권리를 찾기 위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오는 24일 30여개 제화업체에 교섭하자고 요구했다. 특히 공임을 올리기로 구두 약속했다가 최근 인상폭을 낮춘 업체 ‘미소페(비경통상)’ 본사와 하청공장에 직접 찾아가 요구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이날 미소페 본사와 하청공장 4곳(원준·LJS·슈메이저·LK)을 찾아 행진했다. 제화지부는 본사 사옥을 직접 방문해 단체교섭 3차 제안에 임하라고 요구했다. 제화지부는 “노동부도 사측에 교섭에 성실히 임하라는 공문을 추가로 보냈다”며 “이제 사측이 답해야 할 때”라고 했다. 정기만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장은 방문을 마치고 나와 “미소페가 오는 17일 3시에 참석 여부를 알려주기로 했다”며 “아마 참석하겠다고 할 것 같다”고 전했다.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14일 제화노동자 총궐기대회에서 제화업체 미소페 본사를 찾아 오는 24일 단체교섭 3차 제안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14일 제화노동자 총궐기대회에서 제화업체 미소페 본사를 찾아 오는 24일 단체교섭 3차 제안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참가자들은 본사 앞에서 발언을 이어갔다. 김형수 서울일반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사측이) 교섭에 안 나오니 신사적으로 공문도 전화도 했다. 그런데도 대답을 안 해 이 자리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김종민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차장은 “우리는 1~3차에 걸쳐 공문을 보냈고 미소페가 정상적으로 화답하길 바랐다. 그러나 우리가 항의방문을 와도 문을 닫고 맞이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5월 미소페는 제화노동자들에게 공임을 인상하기로 구두로 약속했다. 제화업체 ‘탠디’가 하청업체 제화노동자들의 파업 끝에 공임 인상을 합의하고 난 직후 일이다. 공임이 5000원가량으로 탠디(6500~7000원)보다 더 낮았던 미소페가 1300원 인상을 제시하자 제화노동자들의 파업 움직임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2개월이 지나자 올랐던 공임이 ‘싼 구두’라는 명분으로 슬슬 내려가기 시작했다. 현재 제화공들이 가장 많이 만드는 구두는 켤레당 공임이 5300원에 불과하다.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가 14일 제화노동자 총궐기대회를 열고 제화업체들에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이 미소페 하청업체 '원준' 사옥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가 14일 제화노동자 총궐기대회를 열고 제화업체들에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이 미소페 하청업체 '원준' 사옥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날 20개 업체에서 모인 250여명의 참가자들은 △소사장 제도 폐지 △공임 인상 △4대보험 적용 △퇴직금 지급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제화노동자들을 관리·지시하고 근무 지속 여부를 결정하지만 이들은 법적 고용관계가 아니다. 2000년대 초 본사가 만든 ‘소사장 제도’ 탓이다. 법적으로 노동시간도 제한되지 않는다. 제화노동자 대부분이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한다. 주말에도 출근한다. 낮은 공임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박완규 제화지부 탠디분회 분회장은 “만드는 개수에 따라 공임을 주는 도급제는 좋아 보이지만 오히려 더 노예제도”라고 토로했다. “밥 먹는데 점심시간 5분이고, 노동자로서 권리는 아무것도 없다. 개인사업자로 세금도 낸다”고도 했다. 박완규 분회장은 “모든 업장이 소사장제이기 때문에 제화공들은 이 곳에서 그만 둬도 다른 갈 데가 없다”고 했다.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14일 총궐기대회를 열고 △소사장 제도 폐지 △공임 인상 △4대보험 적용 △퇴직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14일 총궐기대회를 열고 △소사장 제도 폐지 △공임 인상 △4대보험 적용 △퇴직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정기만 지부장은 “(소사장제가 시작된 2000년대 초반) 3200원이었던 최저임금이 만원이 돼 간다. 그 동안 한 차례도 공임을 올려주지 않은 게 사측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참가자들은 “노예 강요하는 소사장제 폐지하라” “20년간 임금동결 못살겠다 갈아엎자” 등 구호를 외쳤다.

한편 지난달 세라제화와 고세제화는 공임 인상 등 내용을 담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세라제화는 본사 제화공들은 8월부터,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내년 3월부터 4대보험을 적용하기로 했고, 고세제화는 퇴직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제화노동자들이 권리 찾기 움직임에 나선 결과다.

박완규 분회장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이번에 바꾸지 않으면 다른 기회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화지부는 교섭을 하루 앞둔 23일 제3차 공동행동 집회를, 오는 9월8일엔 제화노동자 후원주점을 열어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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