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 운동의 메시지는 ‘나도 말한다’다. 이는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을 경쟁적으로 보도해온 언론사는 자기 조직 내 ‘미투’ 목소리를 들을 최소한의 제도를 갖췄을까? 사내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의 말하기를 보장할 전담기구를 갖고 있을까?

미디어오늘 취재결과 국내 주요 언론사 22곳 가운데 10곳만 사내 성폭력 전담기구와 징계 양형기준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반대로 6곳은 전담기구와 매뉴얼 어느 것도 없었다. 2곳은 최근 미투 운동 혹은 사내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새로 구체적 매뉴얼을 마련하는 중이다. 성폭력 대처 전담기구는 올 상반기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직장 내 성폭력 예방지침에도 포함돼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지침 표준안’을 보면, 기관은 ‘고충상담창구’를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 표준안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고충상담원을 2인 이상 지정하되 남·녀 각 1인 이상으로 지정하도록 명시했다.

▲ 여성가족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성희롱 성폭력 예방지침 표준안 및 해설 갈무리
▲ 여성가족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성희롱 성폭력 예방지침 표준안 및 해설 갈무리

미디어오늘은 지상파와 종편을 포함한 TV·라디오방송사 10곳과 일간지 9곳, 통신사 3곳을 조사했다. 각 언론사가 △성폭력(성희롱 포함) 대처 전담기구를 갖췄는지 △성폭력 양형 기준을 마련했는지 △성폭력 유형과 범위를 정의했는지 여부 등을 취재했다.

22개 언론사 가운데 EBS의 매뉴얼이 가장 구체적이고 철저했다. EBS는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를 노사공동으로 운영하도록 정했다. 이 위원회는 성폭력 발생시 피해자가 신고·상담하는 상설기구로, 필요시 외부 변호사도 상담원으로 부른다. EBS는 사규에서 성 관련 비위를 성희롱·성폭력·성매매로 세세하게 구분했다. 비위의 경중과 고의성을 기준으로 견책부터 파면까지 가능토록 명시했다. 재발했을 땐 모두 조건 없이 파면한다. 성희롱도 ‘성적 유감을 유발하는 행동’이라 칭하고 그 유형을 규정했다. △외설적 사진을 보여주거나 공유하는 행위 △성과 관련된 자세나 특정 신체부위를 보이는 행위 △외모를 비하하거나 평가하는 행위 등이 여기에 속한다.

▲ 세계신문협회는 “당사자가 달갑지 않고 불쾌하다고 느끼는 ‘모든’ 행위가 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세계기자협회 발간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 세계신문협회는 “당사자가 달갑지 않고 불쾌하다고 느끼는 ‘모든’ 행위가 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세계기자협회 발간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지상파 3사도 성희롱·성평등 내규를 신설하고 신고창구를 마련했다. KBS는 사장 직속 성평등센터 출범했는데, 향후 사건 처리 매뉴얼을 만들고 성평등 자문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중앙일보와 JTBC도 성비와 노사 비율을 맞춘 성희롱 고충처리위원을 두고 노사 합의안에 징계 기준도 마련했다. 성희롱 범위는 비언어적 행위부터 신체적 행위까지 포괄해 규정한 반면, 성폭행은 ‘폭행 또는 협박 따위 불법적 수단으로 간음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관련기사: 방송사 성평등 기구, 어디까지 왔나]

경향신문도 올 4월20일에 노사합의로 성희롱·성폭력 사건 양형기준을 만들고 피해자 지원을 위한 ‘신고도우미’ 제도를 뒀다. 성폭력 유형을 나눠 감봉에서 해고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한겨레는 형법상 규율되지 않는 성폭력을 위주로 경중에 따라 구두·서면조치하고 있다. 전담기구로는 성 관련 고충접수와 사전조치, 노조 보고의무를 지닌 노사공동위원회를 운영한다. 조선일보는 성희롱신고센터장과 성희롱고충상담관을 노사 및 성비에 맞춰 두고 있다. 양형 기준도 파면부터 경고까지 마련했다. TV조선은 “조선일보와 사규가 대동소이하다”고 알려왔다.

징계기준은 없으나 성폭력 신고 또는 조사 전담기구를 둔 곳은 4곳으로 나타났다. 국민일보와 동아일보, 연합뉴스, CBS는 노사 동수로 구성된 성희롱신고창구 혹은 조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전담기구는 없지만 성폭력 사건 특성을 감안한 절차를 둔 경우는 2곳이었다. YTN은 성폭력을 신고한 피해자가 희망할 경우 비공개 조사 후 특별인사위원회를 소집하도록 했다. 미투운동이 불거진 올 상반기 특별신고센터를 운영했으며, 현재는 이메일로 피해 신고를 접수한다. 한국일보는 일반 고충을 신고 받고 1차 조사하는 고충처리위원회에 여성기자 위원을 최소 1명 두도록 했다.

▲ 세계신문협회는 “사용자로서, 당신은 직원에게 성폭력 없는 업무 환경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다”며 경영진 책임을 강조한다.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 세계신문협회는 “사용자로서, 당신은 직원에게 성폭력 없는 업무 환경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다”며 경영진 책임을 강조한다.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4곳은 사내 성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한 신고·조사 기구 혹은 처리 매뉴얼이 없었다. 뉴시스 측은 “매뉴얼이 없다”며 “실제로 그런 일(성희롱·성폭력)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밝혀왔다. 뉴시스 노조 측이 “매뉴얼이 없는 게 맞다”면서도 “성희롱 실태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피해 겪은 사람 비중이 높았다”고 밝혀 사측과 대조를 보였다. 뉴스1은 피해자가 사장에게 직접 접수하도록 한다고 밝혀왔다. 신고를 접수하면 “조직 내 신뢰와 전문성을 쌓은” 남성 고위간부가 조사를 진행한다. 뉴스1 관계자는 “해당 절차를 거쳐 실제 성폭력 가해자를 징계한 사례가 있다”고 알려왔다. 채널A는 일반 사원고충처리위원회가 성폭력 사건을 함께 담당한다. 안건이 생길 때마다 고충상담관을 2명 지정하는데, 성비 규정은 없다. MBN은 회사 측이 마련한 매뉴얼이 없으며, 지난 4월 노조 산하에 성폭력 문제를 포괄할 성평등위원회를 신설했다고 MBN 노조 측이 밝혔다.

2곳 언론사는 성폭력 대처 매뉴얼을 만들고 있거나 계획을 세운 상태다. 세계일보는 최근 불거진 고위간부의 성폭력 가해 사건을 계기로 사측이 성폭력 대처 매뉴얼 초안을 마련했으며, 외부 자문을 구해 확정할 예정이다. 서울신문은 올 9월 노사가 협의해 성평등위원회를 꾸리고 양형 기준을 명시한 성폭력 대처 매뉴얼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올 상반기 개정한 ‘모범단체협약 및 해설’에 ‘성적 괴롭힘’을 규정하고, 대처 전담 기구를 두라고 명시했다. 제116조 “성적 괴롭힘 예방 및 구제” 부분을 보면, △성적인 언어, 폭언, 동작, 신체 접촉, 추행, 폭행, 강간 등으로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 △성적 괴롭힘에 대응(거부, 신고 등)하는 행위에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 △성적 괴롭힘을 제지하지 않거나 방조함으로서 성적 괴롭힘이 발생할 환경을 직,간접으로 조성하는 행위가 모두 성적 괴롭힘에 속한다. 모범단협은 “성적 괴롭힘과 관련한 고충처리기구”를 운영하고 전담 상담원을 1명 이상 배치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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