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일 리비아 무장단체의 한국인 납치에 논평을 내놨다. 청와대는 이날 김의겸 대변인 명의로 “리비아에서 납치된 우리 국민이 한 달이 다 돼서야 생존 소식을 전해왔다”면서 “그의 조국과 그의 대통령은 결코 그를 잊은 적이 없었다. 납치된 첫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구출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안전과 귀환을 위해 리비아 정부 및 필리핀 미국 등 우방국들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특히 아덴만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청해부대는 수에즈 운하를 거쳐 리비아 근해로 급파돼 현지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논평은 영상을 통해 리비아 무장단체의 한국인 납치 사실이 확산되자 한달 동안 정부가 인질 구출을 위해 긴밀히 대응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달 동안 왜 깜깜 무소식 상태가 됐는지, 정부는 그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인질 협상 및 구출 활동을 벌였는지 궁금증이 일고 있다.

▲ 8월1일 SBS 8뉴스 보도 갈무리
▲ 8월1일 SBS 8뉴스 보도 갈무리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건 정부의 엠바고(보도유예) 때문이다. 외교부는 리비아 무장단체의 한국인 납치 사실을 확인하고 출입기자단과 협의해 보도유예를 걸었다.

언론 보도가 나오면 인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어렵기에 특정 시점이 되면 납치 사실을 공개하겠다는 암묵적 약속을 걸었다. 인질 협상이 길어지고 구출이 어려워져 더 이상 언론 보도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경우나 현재와 같이 영상으로 납치 사실이 알려져 엠바고가 무의미해진 경우 관련 사실을 공개하게 된다.

지난달 7일 연합뉴스의 보도가 논란이 된 것도 엠바고 때문이었다. 연합뉴스는 당시 영국의 통신사 로이터를 인용해 리비아 무장단체의 한국인 납치기사 전문을 올렸다. 하지만 연합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관련 기사를 내렸다. 그러면서 연합은 “[알림] 리비아 무장단체, 한국인 1명 납치(1보)는 엠바고여서 전문취소합니다”며 “7일 오전 2시 50분에 송고된 연합 국제 ‘로이터’ ”리비아 무장단체, 한국인 1명, 필리핀인 3명 납치 제하 기사는 외교부 엠바고 사안이라 전문 취소합니다“라고 전했다.

연합뉴스는 국제부 출입기자를 통해 리비아 무장단체의 한국인 납치 소식을 보도했지만 뒤늦게 외교부의 엠바고가 걸린 사안임을 인지하고 관련기사를 내렸다. 하지만 엠바고로 기사를 내렸다는 공지문 때문에 역설적으로 한국인 납치 소식이 확산됐다. 당시 여러 외신도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로이터는 ‘리비아의 무장 집단이 필리핀 3명 한국인 1면 납치:공식’이라는 제목을 달고 “신원 미상의 무장집단이 3명의 필리핀인과 1명의 한국인을 리비아 남동쪽에서 납치했다고 공직자가 금요일 말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리비아 무장집단이 3명의 필리핀인과 한국인을 납치했다고 말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리비아 당국이 신원미상의 무장집단이 수도 트리폴리 남쪽에서 프로젝트 작업을 하는 3명의 필리핀 국적자와 1명의 한국인을 납치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외국인 노동자가 리비아 서쪽에서 납치 당하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지 공직자에 따르면 신원미상의 무장강도들이 금요일에 정부에 고용돼 급수 프로젝트 현장에서 일하는 4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납치했다”며 “(리비아 급수 당국의 정보국 국장인) 알쉐흐디는 신원미상의 무장강도들은 세 필리핀 엔지니어와 한 명의 한국인 기술자를 납치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우리 언론은 외신에서 자국인 납치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엠바고 때문에 인용 보도를 못했다.

▲ 8월1일 SBS 8뉴스 보도 갈무리
▲ 8월1일 SBS 8뉴스 보도 갈무리
리비아 무장단체의 한국인 납치 시점에 언론보도로 국민들께 알리고 정부의 적극 대응을 투명하게 지켜보는 게 인질 구출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나온다. 청와대는 한달 동안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대응해왔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인권운동가 이영환씨는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난 금요일(6일) 로이터와 알자지라가 보도하고 미국의소리(VOA), 중국 신화통신사도 보도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일요일(8일) 인도‧싱가포르 순방을 떠나고, 주 리비아 한국대사관은 난리가 나도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인도에서 대통령 보좌에 여념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인도 순방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보좌한 것을 두고 자국민 보호에 관심이 적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영환씨는 “적어도 피랍된 사실을 알았던 시점에 외교부 장관은 남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 비판 의견이었다”며 “피랍된 가족 입장에서 보면 외교부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인데 그 와중에 인도 순방길에 따라갔다는 것은 좋은 모양새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엠바고도 “외신들은 계속 보도하는데 국내 언론만 통제하는 게 문제해결에 필수적인지 미지수”라며 “사건자체는 보도해도, 구출 관련 민감한 정보만 엠바고 요청하면 언론도 납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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