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을 작성한 책임자들을 내란음모죄로 기소해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계엄령 문건이 사실상 합의에 의한 실행계획임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이뤄졌기에 초법적인 쿠데타를 모의한 죄로 작성자들을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계엄령 문건의 법적 처벌 논리는 2015년 1월 이석기 전 의원 등의 내란음모 등 사건(2014도10978) 대법원 판결문에 담겨 있다. 당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사실상 최초로 내란선동죄와 내란음모죄의 성립요건 등을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해 내란선동 혐의는 유죄로 선고하고,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로 확정해 선고했다.

▲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이석기 전 의원 사건에서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한 공소사실은 “2013. 5. 12.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강당에 모인 RO 조직원들과 함께 전쟁 상황이라는 정세인식과 예비검속 등 적의 탄압이 있을 것이라는 위기의식, 폭력혁명 또는 군사적·물질적·기술적 준비의 필요성 등을 공유”했고, 이석기 전 의원이 “총공격의 명령이 떨어지면 속도전으로 일체화된 강력한 집단적 힘을 통해서 각 동지들이 자기 초소에 놓여 있는 물질적· 기술적 조치를 하자”는 취지의 발언이 상부명령으로서 각 권역의 국가기간시설 파괴 등 전국의 다발적인 폭동에 이를 것을 통모해 내란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음모하였다고 돼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내란음모를 단행한 조직인 ‘RO’에 대해서 “지하혁명조직 RO가 존재하고 이 사건의 각 회합의 참석자들이 지하혁명조직 RO의 구성이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내란을 음모한 조직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란음모의 성립 여부에도 영향을 줬다.

특히 내란음모를 위해선 “실행의 착수 이전에 2인 이상의 자 사이에 성립한 범죄실행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2인 이상의 자 사이에 어떠한 폭동행위에 대한 합의가 있는 경우에도 공격의 대상과 목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고, 시기와 실행 방법이 어떠한지를 알 수 없으면 그것이 ‘내란’에 관한 음모인지를 알 수 없음. 따라서 내란음모가 성립하였다고 하기 위해서는 개별 범죄행위에 관한 세부적인 합의가 있을 필요는 없으나, 공격의 대상과 목표가 설정되어 있고, 그 밖의 실행계획에 있어서 주요 사항의 윤곽을 공통적으로 인식할 정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내란음모죄에 해당하는 합의가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내란에 관한 범죄결심을 외부에 표시,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객관적으로 내란범죄의 실행을 위한 합의라는 것이 명백히 인정되고, 그러한 합의에 실질적인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며 “내란음모가 실질적 위험성이 있는지 여부는, 합의 내용으로 된 폭력행위의 유형, 내용의 구체성, 계획된 실행시기와의 근접성, 합의 당사자의 수와 합의 당사자들 사이의 관계, 합의의 강도, 합의 당시의 사회정세, 합의를 사전에 준비하였는지 여부, 합의의 후속 조치가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1회적인 토론의 정도를 넘어 내란의 실행행위로 나아가겠다는 확정적인 의사의 합치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려움. 따라서 피고인들을 비롯한 이 사건 각 회합 참석자들이 형법상 내란음모죄의 성립에 필요한 ‘내란범죄 실행의 합의’를 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내란음모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2인 이상의 합의한 자가 있고, 구체적인 내란의 실행계획(시기 및 방법)이 있어야 하고, 사전사후 논의를 통한 내란음모가 합의에 따른 실질적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의 판결문에 비춰보면 기무사 문건은 “객관적으로 내란범죄의 실행을 위한 합의”임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많다.

우선, 계엄령 선포 권한이 없는 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것부터 직권남용죄가 적용될 수 있다. 권한 없는 기관이 계엄령 선포를 검토했다는 것은 내란음모로 의심할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특히 이석기 사건에서 내란음모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방안과 계획된 실행시기 등이 있어야 하고 합의 당시의 사회정세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는데 기무사 문건은 “현 시국 관련 단계별 조치사항”이라는 항목에서 당시 각 장소별 위험 상황을 예단해 열거하고 기계화 2개 사단, 특정 2개 여단 등 구체적인 병력 배치계획까지 밝혔다.

역대 위수령과 경비계엄, 비상계엄 사례를 열거하며 계엄 시행시 위헌 소지 등을 비껴갈 방안까지 제시했다. 이어 박근혜 탄핵 기각 결정을 전제로 해서 비상계엄 선포문까지 만들어 첨부했다. 계엄령 선포 실행계획의 구체성이 도드라지는 대목이다.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명의의 “비상계엄선포에 따른 대국민 당부”라는 문건까지 작성해 계엄령 선포 이후 상황까지 고려해 실행계획을 짰다. 이석기 사건에서 대법원은 “합의의 후속조치가 있었는지 여부”도 내란음모죄 성립에서 주요하게 고려할 사항이라고 봤는데 실제 계엄령 선포 이후 발표할 담화문까지 마련했다는 점에서 내란음모 성립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계엄사령부의 가용 장소를 검토하고 합동수사본부를 편성하고 유관기관인 국정원을 통제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도 계엄 선포 이후 지휘 통제 권한을 명확히 한 점에서 내란음모의 구체성을 띈다. 국회에 의한 계엄해제 시도시 조치사항을 보면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하고 계엄령 해제 조건을 무산시키기 위해 정족수 미달을 유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계엄령 선포를 성공시키기 위한 반대세력 제거 작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 대비계획 세부자료’란 이름으로 작성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세무 문건가운데 일부.
▲ 대비계획 세부자료’란 이름으로 작성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세무 문건가운데 일부.

이밖에 정부부처 조정 통제 방안과 중요시설 및 집회 예상지역 방호부대 편성· 운용 계획, 계엄법 위반자 사법처리, 보도매체 및 SNS 통제 방안 등을 봤을 때 기무사 문건을 작성한 책임자들이 내란의 위험성을 인지해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놨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 변호인이었던 김칠준 변호사는 “이석기 사건에서 핵심 쟁점은 객관적으로 내란범죄의 실행을 위한 합의가 있었고, 준비를 했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위험성이 있느냐 여부에 있었다. 그런 걸로 봤을 때 기무사 문건은 힘을 갖고 있는 조직이 군대를 동원한다는 것이어서 위험성과 구체성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다만 국헌을 문란케 할 목적이 있었느냐가 법리 쟁점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변호사는 “기무사 쪽은 소요사태가 아주 심각할 것을 예상해 헌법 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정도로 소요사태가 발생할 것을 막기 위해 오히려 국헌 문란 행위로부터 헌법기관을 보호하기 위해 준비된 사전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헌법기관과 언론기관 등이 오히려 정상 작동하는데 자신들 목적을 위해 무력화하는 행동이었다는 계획으로 나오면 내란음모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무사의 단독 행동이 아니라 청와대와 교감을 통해 문건을 작성했다면 오히려 내란음모죄가 성립키 어려울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도 나올 수 있다.

탄핵이 기각됐을 경우 지휘를 복권한 대통령이 반대자를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엄령을 선포하는 계획을 세웠다면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겉으로 소요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계엄령 문건 작성을 지시하고 기무사가 따른 것이라고 한다면 문건 작성자들이 내란음모죄를 피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반대로 기무사 내부의 군 강경파가 탄핵 기각을 계기로 정권을 잡기 위한 목적에 따라 계엄령 선포 권한이 없는데도 계획을 세운 것이라면 국헌문란이라는 목적이 분명해지면서 내란음모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기무사의 문건 책임자가 내란음모죄로 처벌받을 수 있을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문건상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위험성을 갗췄다는 것은 부인키 어렵기 때문에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가 핵심 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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