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에서 자존심이 나온다.”

지난 2014년 10월 조선일보 노동조합 노보에 실린 조선일보 기자 말이다. “회사가 통 크게 인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기자들 요구가 2018년이라고 다를까.

조선일보 노조는 “임금은 줄이고 배당은 늘렸다”(지난 4월6일자 노보)며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겨냥했다. “임직원 총임금은 2007년 439억원에서 2017년 405억원으로 꾸준히 줄어든 반면 주주에 대한 배당은 2007년 54억원에서 2017년 12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는 지적이었다.

기자가 만난 조선일보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보다 ‘월급’에 민감했다. 자사 지면은 최저임금 인상 등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을 ‘좌파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글로 범벅이었지만 “이 시대에 임금인상은 애국”(지난 5월11일자)이라며 자신들의 월급은 그것과 무관한 듯 이야기했다.

조선일보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는 미디어오늘 기사가 나올 때면 ‘조선일보 빨갱이들’이라는 폄하 댓글이 달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해되는 면도 있다. 기자들의 과열된 경쟁과 압박, 매일 조여 오는 마감 압박 및 이를 위한 야근, 50판을 가뿐히 넘는 지면 편집 등 조선일보 기자들은 과로를 호소한다. 월급만큼 노동 강도 역시 업계 최고라는 평가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생존 역시 그들에겐 중차대한 문제다. 피라미드식으로 소수에만 열린 보직 문은 승진에 목을 매게 한다. 기자가 ‘승진’과 ‘월급’이라는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회사를 비판하는 데엔 용기가 필요하다.

▲ 서울 중구에 위치한 조선일보·TV조선 사옥.
▲ 서울 중구에 위치한 조선일보·TV조선 사옥.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다룬 자사 보도를 두고 조선일보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 흥미로운 논쟁이 일었다. 

조선일보 A 기자는 노 의원 사망 소식 기사 옆 청룡기 우승 사진을 “무심한 편집”이라고 비판하고 글 말미에 “상대의 작은 흠을 침소봉대해야만 정당성이 확보되는 세력은 사회악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보도에 문제를 제기한 A 기자를 겨냥해 B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글을 썼다.

“밖에서 우릴 죽이려고 하는데 안에서도 사회악이라네.(중략) 안 그래도 힘든 시간이 우리 조선일보 앞에 왔는데 기자들 사기는 땅바닥이다. 조선일보 기자여서 그나마 인간 취급 받고 사람들이 고개 숙이고 밥 얻어먹고 다녔다. 분열 조장하지 말라. 월급 아깝다. 안에서 상처 내는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 조선일보는 안 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어질 것 같다.”

B 기자 주장은 월급을 주는 회사를 사회악이라고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A 기자는 “기자가 밥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회사에 충성해 무슨 글이든 쓰기 때문이 아니”라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고 탐사하고 토론해서 사내외 눈치 안 보고 용기 있게 쓰는 것을 전제로 사회가 입에 밥을 넣어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조선일보 기자들이 A, B 기자 중 어느 쪽에 더 동조할지 가늠하긴 어렵다. 다만 조선일보에서 ‘월급’은 이처럼 예민한 주제다. 누군가는 ‘월급 주는 회사’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조선일보 기자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바란다. 임금 인상에만 머물지 않았으면 한다. 회사의 부당한 기사 지시가 있다면 거부할 수 있는 조건으로 노동 환경이 개선되길 바란다. 노 의원 사망 기사 옆 “기쁨 만끽” 야구 우승팀 사진을 기자들이 먼저 거를 수 있는 편집국이 되길 바란다. 

일부 보직 간부들의 편집권 독점을 견제할 수 있는 ‘편집국장 신임투표제’, ‘상향평가제’ 등 사내 민주화 장치가 갖춰진다면, 조선일보가 지금보다는 한국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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