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내 성폭력 “터지기” 전에 바꾸려면
언론사 내 성폭력 “터지기” 전에 바꾸려면
세계신문협회 ‘성폭력 실용안내서’ 눈길… “경영진, 성폭력에 대해 ‘무관용 분위기’ 조성해야”

“터질 게 터졌다.” 언론사 내 성폭력 사건이 기사화될 때마다 등장하는 반응이다. 세계일보는 지난 9일 사내에서 후배 기자를 성추행한 편집국장을 정직 1개월 처분하는 데 그쳤다. 사내 여기자회가 징계 수준을 비판하고 나선 뒤에야 인사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간부는 여성 기자들에게 ‘맘충’ ‘여자 가슴이 음란물이 아닐 수 있느냐’고 발언했다가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된 뒤 논설위원실로 전보됐지만 논란은 진행형이다.

언론사 내 성폭력은 몇몇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자 A씨는 전 직장에서 여성 신입기자들이 보도국장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그를 피해 다니는 것이 일종의 ‘통과의례’였다고 말했다. 국장은 술자리에서 여성 기자들에게 자신의 허벅지와 팔을 만지라고 요구하기 일쑤였지만, 이를 미리 알려주거나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대 기자준비생 B씨는 인턴기자로 일할 때 남성 선배로부터 ‘카메라 앞에 설 때 가슴이 패인 의상을 입으라’고 요구받았다. 1년차 기자 C씨는 “회사는 ‘미투’가 무서워 요즘 말을 못하겠다”는 남성 선배들의 푸념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사내 성폭력을 일상으로 겪거나 목격하는 언론사 구성원들은 회사 대응에 한 번 더 실망한다. 동료 기자의 성추행 피해와 관련해 사내 징계위원회에 참석했다는 기자 D씨는 “뿌리 깊은 가해자 위주 사고를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징계위원들이 ‘피해자가 그 장소에 혼자였던 게 맞냐’고 거듭 물었다고 말했다. D씨는 “상사의 행위에 수치심을 느낀 게 핵심인데, 회사의 시각은 (권력관계나 수치심이 아닌) 신체 위협에 맞춰졌다”고 말했다.

D씨는 연차 높은 선배가 피해자에게 “개인적으로 사과 받고 말지, 어떻게 회사 다니려고 그러느냐”고 했다며 “위로일 수도, 걱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는 회사 사람들이 본인만 보는 것 같고, ‘내가 문제를 키웠나’ 돌아보며 스트레스와 죄책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가해자의 잘못보다 문제를 제기한 행위에 집중하는 분위기는 사실상 침묵을 종용한다.

▲ 세계신문협회가 지난 5월 발간한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는 “사용자로서, 당신은 직원에게 성폭력 없는 업무 환경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다”며 경영진 책임을 강조한다.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 세계신문협회가 지난 5월 발간한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는 “사용자로서, 당신은 직원에게 성폭력 없는 업무 환경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다”며 경영진 책임을 강조한다.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세계신문협회(WAN-IFRA)는 사내 성폭력에 대한 회사의 책임 있는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신문협회는 지난 5월 ‘언론 내부 성폭력(Sexual Harrassment in the Media)’ 실용안내서를 발간했다. 안내서는 △언론사 내 성폭력 통계 현황 △성폭력 정의와 세부 유형 △경영진을 위한 안내서 △직원을 위한 안내서 △사내 정책·설문조사 표본으로 구성돼있다.

안내서는 “성폭력은 성(sex)이 아닌 권력과 연관이 있다”며 “성폭력은 실제 성적·사교적 관심보다 상사와 후임, 고연령 직원과 저연령대 직원 등 사이의 비대칭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규정한다. 성폭력 정의는 상당히 폭넓다. 성폭력으로 간주하는 행위는 크게 △육체적 △언어적 △비언어적으로 구분된다. 강간, 강제추행 등 직접적 접촉뿐 아니라 위아래로 훑어보는 행위, 윙크, 원치 않는 선물, 개인 공간 범위를 거듭 침범하기 등을 비언어적 성폭력으로 분류했다.

▲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는 성폭력 유형 목록 하단에 “당사자가 달갑지 않고 불쾌하다고 느끼는 ‘모든’ 행위가 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는 성폭력 유형 목록 하단에 “당사자가 달갑지 않고 불쾌하다고 느끼는 ‘모든’ 행위가 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강조했다.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경영진이 성폭력에 대해 ‘무관용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은 중요한 대목이다. “경영진이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면 나머지 원칙은 껍데기”라는 것이다. 사건이 보고된 뒤에는 피해자들이 겪는 △수치심과 당혹감 △의심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골칫거리로 여겨지는 두려움 △비웃음 혹은 괴롭힘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직업과 수입을 잃으리라는 두려움 등을 무릅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물리적 성폭력(성추행, 성폭행 등 포함) 발생 시 회사가 경찰에 신고할 의무도 명시돼있다.

▲ 언론사 조직 내 성폭력 예시.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 언론사 조직 내 성폭력 예시. 언론 내부 성폭력 실용안내서 갈무리

사내 성폭력 사건 담당자의 경우 인사 부서 직원 가운데 노동관계법에 밝고,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전문 훈련을 받은 사람을 지정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요구를 고려해 공식·비공식 대응 방안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세계신문협회는 설명한다.

경영진은 또 구성원들에게 회사의 성폭력 대응 정책 내용을 쉽고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안내서는 구성원에게 알려야 할 내용으로 △성폭력의 정의 △직원들의 권리 △무관용 정책과 그 의미 △성폭력 보고 수단과 방법 △사내 절차와 세부정책 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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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8-07-27 15:38:15
성폭력과 성추행은 원아웃제를 도입해야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