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 신호 대기가 걸리면 죽음이다. 온 몸은 땀범벅인데 그늘 하나 없고 버스가 토해내는 뜨거운 매연을 몇 분 동안 마시면 숨이 막힌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걸 보다 잠시 집중력을 잃기도 했다. 아차사고는 그 순간 난다.”

1년7개월차 ‘맥도날드 라이더’ 박정훈씨(34)는 지난 25일 2시 서울 광화문 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여름용 유니폼을 주세요” 피켓을 40분 가량 들었다. 그는 ‘폭염에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배달하는 건 말도 안된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본사를 찾았다.

▲ 박정훈씨가 들고 선 피켓. 사진=박정훈씨 제공
▲ 박정훈씨가 들고 선 피켓. 사진=박정훈씨 제공
라이더는 패스트푸드점에 종사하는 알바노동자 중에서도 야외근무가 많다. 폭우, 폭설, 한파 등 기상 변동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올해 이례적으로 장기화된 폭염도 마찬가지다.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최고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등 기록적인 폭염을 기록하면서, 지난 5월20일부터 7월23일까지 전국 온열질환자는 1303명, 사망자는 1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온열질환자 738명의 1.8배, 사망자 4명의 3.5배가 늘어난 수치다.

박씨는 라이더들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전했다. 그는 “‘올해는 급이 다르다’는 말을 한다. 작년엔 폭염 사이 시원해지는 몇 일 텀이 있었는데 올해는 2주 내내 뜨거웠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직 사고 사례는 접한 적이 없지만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라이더들은 현장에 굉장히 많았다”고 했다.

폭염엔 배달량도 는다. 평소 하루 20건을 뛰었는데 폭염이 시작되면서 24~25건을 뛰고 있다. 7시간 일하는 라이더가 한 시간 2~3건을 처리했다면 폭염특보 후엔 3~4건으로 증가한 셈이다. 박씨는 “주말엔 배달주문이 더 늘어난다. 폭염으로 라이더 노동강도가 늘었다”고 말했다.

배달 과정도 평소보다 두 배는 힘들다. 박씨는 “교차로에 섰거나 신호대기로 버스 옆에 서 있을 때 가장 힘들다. 헬멧 안으로 뜨거운 수증기가 들어오고, 마스크를 썼으면 내 뜨거운 입김까지 섞인다. 매연, 햇빛에 노출이 돼 피부가 따갑다. 올해는 썬크림이 소용없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 ‘맥도날드 라이더’ 박정훈씨(34)가 지난 25일 2시 서울 광화문 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1위 시위를 벌였다. 사진=박정훈씨 제공
▲ ‘맥도날드 라이더’ 박정훈씨(34)가 지난 25일 2시 서울 광화문 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1위 시위를 벌였다. 사진=박정훈씨 제공
박씨는 현장 라이더들의 의견을 종합해 네 가지 안건을 만들었다. △여름용 하의 유니폼 지급 △폭염 특보시 배달 제한 △폭염 수당 100원 지급 △여름용품 지급 등이다.

맥도날드 라이더들은 여름용 상의 유니폼은 있지만 하의는 청바지다. 박씨는 “시원한 냉장고 바지를 제작해서 지급하고 하의는 무조건 청바지인 복장 규정을 철폐해달라”고 요구했다. 머리부위를 전면 감싸는 ‘풀페이스’ 헬맷보다 좀더 시원한 ‘하프헬맷’ 지급도 요구했다. 박씨는 “거기다 자외선을 막을 수 있는 선캡 부착, 여름용 얼음 조끼 등 폭염 대책 물품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폭염 수당 100원’도 호응을 얻은 안이다. 현재 라이더들은 배달 한 건당 400원 수당을 받고 있다. 맥도날드는 폭설·폭우 시 100원을 늘려 500원을 지급한다. 라이더들은 마찬가지 이유로 폭염 때도 100원을 추가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요즘 같은 날씨면 돈은 필요없으니 배달을 막자”는 의견도 나왔다. 배달 수당 지급 받지 않는 걸 감수하고라도 폭염엔 일을 줄이자는 주장이다. 박씨는 “맥도날드에서는 폭우·폭설시에 배달구역을 제한하는 시스템이 있다”며 “폭염특보시에 배달구역을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시위 취지에 대해 “맥도날드 뿐만 아니라 배달노동자 전체, 배달노동자 뿐만 아니라 폭염에도 일을하는 노동자 전체에 많은 관심과 대책을 함께 고민해달라”고 “폭염뿐만 아니라 혹한기, 미세먼지, 황사 등의 날씨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