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상화폐 대책을 담은 보도자료를 엠바고(보도유예)를 깨고 외부에 유출시킨 언론사가 기자단으로부터 1년 출입정지를 당했다. 국무총리실 기자단은 19일 투표에 부쳐 중앙일보와 국민일보, 아시아투데이에 대해 각각 출입정지 1년을 결정했다.

지난 1월15일 국무총리실은 출입기자단에 문자를 통해 정부의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 입장을 브리핑하겠다고 공지하고 오전 9시1분 보도자료 전문을 기자단에 전달했다. 그리고 9시40분 공식 발표 전까지 보도유예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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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편의를 위해 미리 자료를 주고 공식 발표를 하고 나면 보도를 해달라는 요청이었지만 9시40분 이전 커뮤니티 사이트에 해당 보도자료 전문을 찍은 사진파일이 올라왔다. 국무총리실은 보도자료 최종본이 기자단에만 수정‧배포된 내용이라며 기자단 출입기자가 자료를 유출했을 것이라며 기자단에 유출 정황을 통보했다.

하지만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오전 9시부터 9시40분까지 보도유예 시간으로 설정된 40분 동안 가상화폐 시세가 4.9% 상승하는 등 영향을 미쳤다며 해당시간 동안 미리 정보를 알았던 정부 내 작전세력이 이득을 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도자료 유출이 사실상 정부의 작전세력, 공무원에 의해 이뤄졌다는 주장과도 연결됐다.

▲ 가상화폐. ⓒ gettyimages
▲ 가상화폐. ⓒ gettyimages
하태경 의원실은 보도자료 유출 경위를 따지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수사결과 공무원이 아닌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출입기자 3명이 보도자료를 유출했다. 3명의 기자도 인정했다.

김성재 국무총리실 공보실장은 지난 12일 “경찰 수사로 보도자료 사전유출이 공무원에 의한 것이라는 하태경 의원의 의혹 주장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것은 다행”이라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 출입기자에 의한 것으로 밝혀진 것은 매우 유감이다. 우리는 언론이 지켜야 할 중대한 가치로 ‘국민의 알 권리’와 함께 ‘신뢰’를 말해왔다. 모두가 지키기로 한 엠바고 약속을 어기는 것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출입기자 여러분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주시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시길 출입기자단에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무총리실 기자단은 보도자료를 사전 유출한 언론사를 상대로 19일 징계 절차를 밟아 투표를 통해 출입정지 1년을 결정했다.

기자단에 따르면 이날 투표는 두차례 걸쳐 진행됐다. 1차 투표에서 기자단 제명(퇴출) 안건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기자단 회원사 51개사 중 사전유출 언론사 3곳을 제외한 언론사들이 참여했다.

기자단 규약상 제명은 회원사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한데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2차로 출입정지 기간을 정하는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기자단 회원사 과반수 이상이 출입정지 1년에 표를 던져 징계가 결정됐다. 징계 사유는 품위유지의무 위반이다. 언론사 3곳은 투표 전 정보공유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공유한 것이 부득이하게 외부로 유출됐다고 소명했다.

기자단 간사대행인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는 “토의 과정에서 제명까지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1~2차로 투표를 나눠서 진행했다. 출입정지 1년이면 가볍지 않다. 기자단도 사태를 심각하게 봤다는 뜻”이라고 했다.

기자단은 이번 유출 사건이 개별언론사에서 이뤄졌다며 별도의 성명이나 국무총리실에 입장을 전달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한편 기자가 아닌 정부의 작전세력에 따라 보도자료가 유출됐다고 주장했던 하태경 의원의 입장도 주목된다. 경찰이 유포 게시물 역추적 및 사건 관계자 조사 등을 통해 3명의 출입기자가 자료를 외부에 유출했다고 공식 확인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태경 의원은 통화에서 “제가 공무원이 자료를 유출했다고 한 게 아니라 이런 사안을 엠바고를 걸었던 자체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보도자료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고, 엠바고를 걸면 어떤 식으로든 유출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문건 유출이 가능하게 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하 의원은 “국무총리실은 엠바고를 걸었던 것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하는데 엠바고 설정 책임자를 문책하지 않으면서 압박하기 위해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며 “기자들도 엠바고를 걸었을 때 윤리적 책무를 다해줘야 한다. 다만 문제의 본질은 엠바고를 건 행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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