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공공성을 말한 건 시민계급이 막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18세기였다. 오늘 우리가 참 많이도 사용하는 공공성이란 말을 거의 처음 무대 위로 끌어낸 이 대철학자는 ‘이성’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을 말한다.

칸트는 이성의 공적·사적 사용을 말한다. 이성의 공적 사용은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걸 말한다. 반면 이성의 사적 사용은 선출된 직책의 공직자가 하는 의사 표현이다.

언론소비자가 SNS에 자기 의견을 표현하면 이성의 공적 사용이고, 선출직이나 공직자가 SNS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면 이성의 사적 사용이 된다.

개인이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 시민정치의 큰 흐름이 됐다. 이 흐름은 ‘촛불’로 발현돼 정권 교체를 이루는 막강한 힘이 됐다.

문제는 선출직이나 공직자가 이성을 사적으로 사용할 자유와 용기가 있느냐다. 칸트의 생각을 오늘날 우리 공영방송에 대입해 보자. 공영방송 이사는 보도와 방송 프로그램의 독립성, 공정성에 전문 식견을 갖춰야 한다. 경영의 투명성, 자율성, 개방성을 실현할 민주주의적 역량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공영방송 이사는 이성을 사적으로 사용할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는 특정세력의 요구에 복종만 해서는 안 된다.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은밀한’ 이사 선임 구조는 이래서 문제다. 방송법에도 없는 정치권 추천으로 이사를 뽑는 이 수상한 절차 말이다.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방통위 제공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방통위 제공

사실 절차는 요식 행위다. 정치학이 신주단지 모시는 ‘절차적 민주주의’도 사실은 빈약한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시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체제전복의 화살을 정치인이나 정당으로 한정하게 만든다. 국가와 공공영역이 실은 이해관계의 전쟁터라는 점도 은폐한다. 독일 공영방송은 이런 절차적 민주주의가 역대급으로 반영돼 있다. 정당은 물론 60여명이 넘는 다양한 시민사회가 이사회에 대거 포진해 있다.

하지만 우리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런 절차적 민주주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당정치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데도 정당 추천으로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해왔다. 대폭 개선해야 한다.

며칠 전 KBS와 방문진 이사 공모를 시작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이사 선임은 대략 이런 식이다. 이사 후보자는 두 가지 지원서를 제출하는데, 하나는 대국민 공개용이고 다른 하나는 내부 심사를 위한 비공개용이다. 비공개용 지원서에만 추천인 인적사항과 서명란이 있다. 상당히 괴기하다. 추천한 사람을 국민이 알면 큰 일이라도 나는 걸까.

국민은 독일 공영방송처럼 완벽에 가깝진 않아도 약간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지켜질 거라 생각한다. 공영방송 이사는 이성의 사용 능력을 봐야 한다. 그러나 이 방식으론 어림도 없다. 다른 사람(정당)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 공영방송의 현실이다.

적어도 이성의 사적 사용이 가능한 사람이 공영방송 이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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