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송영무 장관의 ‘계엄사 문건 지연 보고’ 입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카메라없이 진행하는 익명브리핑(백그라운드브리핑)으로 하려다 일부 기자의 반발을 샀다. 국방부가 송 장관의 청와대 지연 보고 및 지연 공개 문제에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온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16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 관련 국방부 입장을 발표했다. 최 대변인은 발표에 앞서 ‘발표후 기자 질의응답’은 기자실로 자리를 옮겨 백브리핑(백그라운드브리핑)으로 하겠다고 했다. 백그라운드 브리핑이란 발언자 실명을 ‘정부당국자’ ‘국방부 관계자’로 표현하고, 카메라 없는 상태에서 진행한다. 국가안보나 기밀, 협상 등이 있을 때 정부 당국자 얼굴이 공개되면 곤란할 때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좀더 편하고 길게 대화할 때도 종종 쓴다.

최현수 대변인 말에 전현석 조선일보 기자는 “온브리핑으로 해달라”고 했다. 전 기자는 “기자들만 듣는 게 아니라 국민들도 듣기 때문에 (공개할) 필요가 있다. 기자단과 상의하지 않고 백브리핑 하겠다는 것은 저희가 봐드릴 수 없다”고 했다.

최 대변인은 “백브리핑으로 하겠다. 안 그러면 오늘 (백브리핑을) 그냥 취소를 하든지요. 예정대로 저희가 해명하고, 백브리핑으로 하겠다. 아침에 기자단 간사에게 말했다”고 맞섰다.

A언론사 국방부 출입기자도 공개브리핑을 요구했다. 이 기자는 “공식적인 입장에 질문을 좀 받아주는 게 맞는 것 같다. 녹음해도 되느냐. 백브리핑 때 정확하게 칠 수가 없다. 나중에 국방부가 부인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질의응답은 예정대로 백그라운드 브리핑 형태로 진행됐다. 브리핑한 당국자는 송영무 장관의 보좌관이었다.

B언론사 다른 국방부 출입기자는 17일 “국방부 말이 자주 바뀌니까 도장을 찍는 의미에서 온브리핑(공개브리핑)을 요구했을 거다. 온브리핑으로 해서 기록을 남기는 편이 더 낫다. 온브리핑 하면 이브리핑에 올라가니 공개기록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계엄령 문건의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사건의 본질은 문건의 실체가 뭔지, 어떻게 작성됐는지 등에 있다”고 덧붙였다.

▲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16일 기무사 계엄령 문건 관련 국방부 입장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이브리핑
▲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16일 기무사 계엄령 문건 관련 국방부 입장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이브리핑
국방부 대변인에게 백그라운드 브리핑 하자고 제안받은 기자단 간사 김관용 이데일리 기자는 17일 “브리핑 전 국방부로부터 전달 받고, 기자들한테 의견을 물었는데, 별 얘기하는 기자가 없어서 용인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일보 기자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 기자는 국방부가 백브리핑 하자고 한 사유를 “송영무 장관이 4월30일 청와대 보고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장관 보좌관이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해 기자실로 내려와 백브리핑 하기로 했다. 그가 보좌관이기에 공식멘트가 나가거나 얼굴이 나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요청이었다. 그래서 동의했다”고 했다. 김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 등이 사전에 브리핑 방식에 이견을 냈으면 당국과 얘기해 방법을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

송영무 장관이 기무사령관에게 보고를 받은지 한 달 반이나 지나 청와대에 지연보고한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이 껄끄럽고 난처해서가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김 기자는 “백브리핑 한 경위와 무관하게 그 의문에 대변인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게 기자들 중론이다. 송 장관이 기무사 문건을 어떻게 판단하고 해석했길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고 했다.

김 기자는 “장관이 와도 답변 안하면 의미가 없다. (대변인이건 당국자이건) 국방부가 미리 답변을 정해놓고 와서 답변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기무사 문건을 누가 전달하고 누가 받았는지 물었지만 답해줄 수가 없다고 한다. 왜 이렇게 감춰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걸 감춰야 하는 정보인지 따져볼 문제”라고 했다.

이에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17일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한 것은 질문이 많고 이에 따라 설명할 내용 역시 많아 시간이 길어질 것을 감안해서”라며 “보고과정에 대한 것은 입장문 발표를 통해 이미 밝혔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전현석 조선일보 기자는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를 통해 질의했으나 오후 7시 현재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앞서 조선일보는 계엄령 문건이 공개된 직후인 지난 11일자 기사와 사설에서는 ”기무사 문건의 시발점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이라는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의 주장을 실었고, 같은 날짜 사설에선 기무사의 문건작성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현수 대변인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송영무 장관이 2018년 3월16일 기무사령관에게 문건을 보고 받았으나 청와대에 한 달 반 뒤인 4월30일 보고한 이유를 두고 법적 분석과 동시에 공개 여부에 정무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고 했다. 최 대변인은 송 장관이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분위기 유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우호적 상황 조성 △6·13 지방선거 전 문건공개시 쟁점화를 감안해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했다.

최 대변인은 송 장관이 4월30일 기무사 개혁방안을 놓고 청와대 참모진과 논의 과정에서 기무사의 촛불집회 관련 계엄 검토 문건의 존재와 내용의 문제점을 간략히 언급했으나 국방부의 비공개 방침에 따라 청와대에 문건을 전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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