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8,350원으로 확정됐다. 올해 7,530원보다 10.9% 올랐다. 10.9% 인상은 제도운영 31년 동안 역대 10번째 높은 인상률이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1986년 12월 최저임금법 제정 이후 1987년 최저임금위원회가 첫 최저임금을 결정해 1988년부터 시행해 31년 동안 운영해왔다.

▲ 한겨레 14일자 5면.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장면
▲ 한겨레 14일자 5면.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 장면

지난해 7월 16.4% 인상률이 결정되자 여러 언론이 역대 최대 인상률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인상률 16.4%는 역대 4번째 인상률이었다.

▲ 역대 정권별 최저임금
▲ 역대 정권별 최저임금
노태우 정부 첫해인 1988년 20% 넘는 인상률이 역대 최대였다(88년에 결정해 89년에 적용 - 해마다 결정시기와 적용시기가 차이 남). 2번째 높은 인상률도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 18.8% 인상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16.6%를 인상해 3번째 높은 인상률을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 최저임금 인상률 16.4%는 역대 4번째다.

그러나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11일자 사설 ‘최저임금 1년 해보고 속도조절, 청와대 답할 때 됐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또 지난해 인상률이 역대 최대라고 언급했다. 한국경제는 이날 사설에서 “지난해 최저임금이 역대 최대 폭인 1060원(16.4%)이나 올라 시간당 7530원이 된 것도 대선 공약을 의식한 노동계 주장에 공익위원들이 가세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고 썼다. 습관이 참 무섭다.

노사 18명 중 5명 남았는데도 표결 가능

14일 새벽 최저임금 결정 때 사용자 위원이 모두 퇴장하고, 노동자 위원 중 민주노총이 퇴장해 노사 양측이 대부분 없는데도 의결정족수를 넘겨 표결이 이뤄졌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가 9명씩 18명이 들어간다. 이번 결정엔 사용자 위원 9명이 전원 불참했고, 노동자 위원 9명 중 민주노총 측 4명이 불참했다. 노사 양측 18명 가운데 한국노총 5명만 남았는데도 의결정족수를 채웠다.

비밀은 공익위원에게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공익위원도 9명이나 들어간다. 노,사,공익 9명씩 모두 27명 구조다. 따라서 27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 이상만 있으면 언제든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가능하다. 노사가 아무리 지지고 볶고 싸워도 공익위원 9명에 노사 어느 쪽이든 5명만 있으면 언제든 의결이 가능하다.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는 위원회의 독립을 주장하지만 내용상 공익위원을 쥔 정부가 결정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14일 새벽 4시30분 표결 때 공익위원 9명 전원과 한국노총 5명까지 모두 14명이 가까스로 의결정족수를 넘겨 표결에 들어갔다. 마지막 안은 공익위원들이 내기 때문에 더 높은 인상을 요구하는 한국노총을 감안할 때 표결 결과는 9:5가 돼야 맞다.

그런데 표결결과 8:6으로 나왔다. 공익위원 9명 중 1명은 공익위원 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 공익위원이 더 높은 인상을 요구하며 반대표를 던졌는지, 아니면 사용자들 주장을 받아들여서 반대표를 던졌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해마다 공익위원 9명만 똘똘 뭉쳐 있으면 언제든 공익위원 안대로 표결이 가능한 게 현행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다. 이런 정권 입맛대로 인상액을 결정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 한국경제신문 11일자 사설
▲ 한국경제신문 11일자 사설

조선일보 ‘공익위원 9명 전원 親勞’?

조선일보는 지난 12일자 3면에 현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9명을 모두 친노동자 성향이라고 비판하면서 마치 ‘심판이 한쪽 편 선수’로 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가 든 근거는 문재인 후보 캠프 출신이거나 정부부처 정책자문위원 정도다. 문재인 후보캠프 출신은 9명 공익위원 중 류장수 위원장과 김혜진 교수 2명 뿐이다. 정부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등 정책자문위원은 맡은 공익위원이 2명이다. 정부나 부처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공익위원은 3명이다.

▲ 조선일보 12일자 3면
▲ 조선일보 12일자 3면

대선캠프 출신을 제외하고 학자가 정부부처나 정부 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두고 친정부 성향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더구나 ‘친정부’가 곧 ‘친노동’인 것도 아니다.

조선일보는 한국노총 정책국장을 지낸 권혜자 공익위원을 아예 사실상 노동자위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노총은 2007년 대선때부터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고, 2011년 2월 정책연대 파기 때까지 이명박 정부와 협조적 관계였다. 

민주노총의 한 실장은 “공익위원 중 강성태 교수는 사안마다 노동계에 힘을 실어줬지만 나머지 분들은 대부분 이름도 잘 모른다”며 “공익위원들이 정부의 입김을 받겠지만 노동계가 이 분들을 움직일 순 없다”고 했다.

이런데도 조선일보의 ‘공익위원=친노동’ 프레임은 다음날인 13일자 동아일보에서도 확대재생산됐다. 동아일보는 13일자 4면에 ‘최저임금위원회 사실상 勞18 대 使9… 민노총 불참에도 勞 절대우위’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 역시 조선일보와 같은 논리를 반복했다.

▲ 동아일보 13일자 4면
▲ 동아일보 13일자 4면

공익위원이 하자는 대로 결정되는 최저임금

최저임금 공익위원들은 2007~2016년 10년 동안 8번은 아예 최종액수를 제시했고, 2번은 인상범위를 제시했다. 10년 모두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최종안 또는 범위 안에서 결정됐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공익위원이 내놓은 최종안이 예상보다 높으면 사용자 위원이 퇴장하고, 예상보다 낮으면 근로자 위원이 퇴장한 상태에서 결정된다.

2010년엔 사용자 위원이 퇴장했고, 2011년엔 근로자 위원이 퇴장했고, 2012~2014년엔 사용자 위원이 퇴장하진 않았지만 대부분 기권했다. 2015~2016년엔 근로자 위원이 퇴장했다. 결국 최저임금 결정에 공익위원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공익위원은 고용노동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따라서 정권 입맛대로 최저임금이 결정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뽑은 공익위원이 절대적 권한을 가져 위원회는 독립성에 한계가 명확하다.

공익위원 위촉 기준도 제한적이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13조(공익위원 위촉 기준)에 따르면 ① 3급 이상 공무원 ② 노동경제, 노사관계 등 부교수 이상 ③ 공인된 연구기관 박사 연구원으로 돼 있다.

역대 공익위원 경제·경영학 전공자 편중

1987년 최저임금위원회 구성 이후 지난해 6월까지 30년간 모두 72명이 공익위원을 맡았다. 72명 중 교수는 45명, 노동부 공무원 14명, 연구기관 12명, 시민단체 1명이었다. 절대다수인 교수의 전공은 경제학 20, 경영학 11, 법 7, 사회복지 2, 사회학 2, 소비자학 2, 문학 1명 순이다. 경제학과 경영학 편중이 심하다. 사회양극화가 심각한 현실을 생각해 복지학과 사회학 비중은 더 커져야 한다.

지난해 6월까지 공익위원 중 시민단체 출신은 30년 동안 여성민우회 정강자 공동대표 딱 1명뿐이었다. 공익위원 위촉기준 4호엔 “상당하는 학식과 경험이 있다고 장관이 인정하는 사람”도 포함돼 폭넓은 기용이 가능하지만, 노동부장관은 30년 동안 교수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노동부 공무원만 선호했다.

지난해 6월까지 30년 동안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6명은 모두 교수였다. 조기준 고려대 교수, 김수곤 경희대 교수, 최종태 서울대 교수 등 초기 3명의 교수 출신 위원장은 학계에서 노동관련 전문성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후 3명의 교수 출신 위원장은 노사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교수 출신으로 보기 어려운 노동부 공무원 출신이나 국책 연구기관 출신도 있다.

지금도 공익위원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9명의 공익위원은 교수 6명,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2명, 노동부 공무원 1명이다. 류장수 위원장과 이주희, 강성태, 김혜진, 박은정, 백학영 등 6명이 교수다. 국책연구기관 출신 2명은 노동연구원과 고용정보원 연구원이다. 나머지 1명(부위원장)은 노동부 공무원이다.

전공별로는 경제학 3명, 경영학 1명, 법학 2명, 사회학 1명, 복지학 1명이다. 여전히 경제·경영학이 4명으로 많다. 국책연구기관 2명은 학자적 양심에 따라 활동하겠지만, 정부정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어 위원회 독립성 확보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명박근혜 정부땐 공익위원 발판 삼아 정·관계 진출도

박준성 교수는 2011년 5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최저임금위원장을 맡았다. 박 위원장은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로 80년대부터 신인사 노무관리를 주제로 전경련과 포스코, 금성그룹, LG, 효성중공업 등 대기업 연구용역을 맡아 2016년 중노위 위원장 임명 때 노동계가 크게 반발했다. 박준성 위원장은 2016년 7월초 최저임금 의결 때 근로자 위원이 퇴장한 가운데 사용자 위원들이 제시한 440원 인상안을 표결에 부쳐 정권의 대리인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종훈 명지대 경영학부 교수는 2008년 5월 공익위원으로 임명돼 2012년 초까지 공익위원 간사 등으로 활동하다가 그해 4월 총선에 출마해 새누리당 국회의원(분당갑)으로 변신했다. 유경준 박사는 국책연구기관인 노동연구원과 KDI에서 30년 가까이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15년 4월 24일 공익위원으로 임명됐으나 한 달(5월26일)만에 통계청장에 임명돼 옮겨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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