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벌고 야간고등학교도 다니겠다며 충남 서산에서 상경한 15살 문송면 군은 환기시설도 보호장비도 없이 온도계 안에 수은을 넣는 일(협성계공, 현 협성히스코)을 하다가 두 달만에 수은중독 진단을 받고 쓰러졌다. 회사가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아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던 문군은 상경한지 7개월 만인 1988년 7월 2일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숨졌다.

앞서 경기도의 합성섬유공장 원진레이온에서도 노동자 수백명이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수십명이 숨졌지만 산재 인정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외로운 싸움만 계속됐다. 문군의 죽음은 원진레이온 투쟁에 기름을 부었다.

문군의 죽음 이후 30년이 흐른 지금 산재 피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원진레이온 피해자 915명 가운데 사망자는 이미 200명을 넘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재 산업재해는 전 산업으로 확대됐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죽음, 고객과 상사에 의한 감정노동과 직장내 괴롭힘, 원청회사의 하청사 갑질,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의 열악한 환경 등 한국은 여전히 한 해 2천명에 달하는 산재 사망자를 내고 있다. 30년이 지났지만 문송면의 죽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연장인 노태우 정권 초기에 문송면 군의 이야기를 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으로 만들어 한국사회에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알렸던 김종식 전 KBS PD(현 아이윌미디어 대표)를 서울 상암동 KBS미디어 11층 아이윌미디어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 노태우 정부 초기인데 노동과 산업재해를 다룬 논픽션드라마가 어떻게 KBS 방송을 탔나?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잠깐, 1년 조금 넘는 그 기간 동안, 서울의 봄처럼 방송의 봄이 좀 있었다. 그 때 만들어진 드라마였고, 그때였기에 전파를 탔다. 당시 MBC 이채훈 PD는 5공 청산을 위한 KBS 와 MBC 구성원들의 몸부림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리는 ‘광주는 말한다’(KBS, 남성우), ‘어머니의 노래’(MBC, 김윤영)가 긴 진통 끝에 방송됐고, ‘논픽션 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KBS, 김종식) 등 빼어난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다고 했다. 당시엔 방 송이 한몫을 담당해야만 민주화투쟁에 ‘무임승차’ 한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자각까지 나왔다. 

- KBS에 PD로 입사해서 드라마외주제작사 대표까지 됐는데? 

“1982년 입사해 87년에 논픽션 드라마로 입봉했다. 97년부터는 기획자로, CP, 주간, 팀장, 국장을 거쳐 2006년에 퇴직했다. 그후 외주프로덕션에서 대표를 하다가 2011년 초에 아이윌미디어(드라마 외주제작사)를 설립해 지금까지 왔다.” 

- 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은 어떻게 만들었나? 

“그 때 민주화 분위기를 타고 방송 규제가 대거 풀렸는데, 드라마 파트에서 발의하고 편성에서 오케이 돼서 KBS에 실화를 드라마화하는 ‘논픽션 드라마’라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송면이의 서울행’은 그 두세 번째 작품이었다. 시사적인 것도 있었지만 말랑말랑한 내용, 인간승리 류까지 여러 소재를 다뤘다. 논픽션 드라마는 시사적이면서 시청자에게 필요하지만 정권이 방송 못하게 했던 것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시사적인 소재를 찾다가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사건을 알았고 드라마로 기획을 냈는데 반대도 많았다.”

▲ ⓒ KBS 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div></div>
                                <figcaption>▲ ⓒ KBS 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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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송면 사망 넉달만에 발빠르게 방송했는데 어떻게 가능했나? 

“그걸 어떻게 드라마화하려고 하냐며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때 운 좋게 작가를 잘 만났다. 교양작가 하다 드라마로 옮겨온 김혜정 작가인데 시사에 관심도 많고, 알려져야 하지만 무겁고 딱딱한 소재를 드라마로 만드는 데에 굉장히 솜씨가 좋았다. 김 작가와 같이 취재를 다녔다. 산재판정을 받아내고 임종을 지켜본 형 문근면씨를 주로 취재했다. 동생에게 애정이 깊은 20대 초반 청년이었다. 산재단체에 있던 김은혜씨가 자료를 많이 도와주셨다. 드라마 마지막에 문송면 장례식 현장을 기록한 비디오가 나온다. 그 화면을 제공해 준 분이 김은혜씨다. 그런 장면은 재현하면 진실성이 없어보여서 실제 화면을 썼다.” 

- 서울대병원이 문송면군에게 수은중독 판정을 내렸는데, 드라마에는 길병원과 성모병원이 나오더라. 서울대병원에서 장소협조를 안했나? 

“논픽션 드라마 찍다보면 실제 현장에서 못 찍는 경우가 많다. ‘송면이의 서울행’도 병원, 회사, 관공서가 협조를 잘 안해줬다. 문송면이 산재 판정을 받은 곳은 서울대병원이고 이후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산재 판정 받은 자료가 필요했는데 서울 대병원은 환자의 개인신상이라며 공개를 안했고 장소 협조도 해주지 않았다. 문군이 수은충만식 온도계를 만들다가 중독됐던 협성계공(협성히스코) 양평동 공장도 못 찍게 하더라. 그래서 수은온도계 만드는 작업장 현장은 세트로 만들어서 찍었다.”

- 취재 결과, 송면군이 치료를 제때 받았다면 치료 가능했겠나? 

“그게 아쉬운 점이다. 제작 당시 그런 부분까지 드라마에 넣으려고 했지만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산재 판정하거나 진료했던 의사도 인터뷰에 응하질 않으니 거기까지 못 들어갔다.” 

▲ ⓒ KBS 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div></div>
                                <figcaption>▲ ⓒ KBS 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 수은중독으로 위독한 상태에 빠진 문송면 씨</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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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당시 반발이 여러 경로로 들어왔을텐데 

“공식적 압력은 없었다. 그런데 개인적 인연을 통해 선배, KBS 간부, 친척 등이 그거 안 할수 없어? 꼭 해야 돼? 그런 말은 많이 들었다.” 

- 제작 당시 들었던 생각과 기억에 남는 일은? 

“기업도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협성계공은 수은온도계를 만들면서 근로자의 수은중독방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설비를 해야하는지 이런 개념 자체가 없었다. 원진레이온과는 좀 달랐다. 원진레이온은 일본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갈 데까지 간 공해 사업장을 한국으로 뜯어 옮겼다. 문송면이 일했던 협성계공은 규모가 굉장히 영세했다. 회사와 공장 관계자들을 취재하러 갔지만 촬영은 못했고 공장장을 만났다. 그들은 수은이 몸에 어떤 영향이 있고 이런 개념이 없더라. 그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면이와 같이 일하던 아이들 2~3명이 여전히 있더라. 그들은 산재단체나 언론에서 찾아오니 어리둥절해 했다. 너무 어린 아이들이 수은중독의 심각성을 알고 그만둬야 되나 어쩔줄 몰라했다. 산업재해에 인식이 그 정도였던 시절이다.” 

- 드라마에는 형 근면씨가 도입부와 마지막 장면에 해설자 역할을 한다. 카메라 워킹은 핸드헬드 였고. 그 당시 유행하던 기법인가? 

“아니다. 이 논픽션 드라마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다큐멘터리 제작 기법을 많이 썼다.” 

- 드라마 제작할 때 분위기는 어땠나. 

“그 전까지 없었던 형태의 드라마를 만드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낯설어 했고 영상촬영감독도 ‘드라마를 이런 식으로 찍어서 되겠느냐’고 미심쩍어 했다. 그 당시 16mm 필름카메라로 찍던 시절이라 강한 조명이 필요했지만 드라마 분위기 상 조명을 어둡게 썼다. 그러니까 스탭들도 ‘이 영상이 제대로 구현되는 건가?’ 하며 걱정들이 많았다. 배우들도 이런 드라마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걱정했고 나도 그랬다. 그런데 역시 프로그램은 진실이나 진심이 통한달까? 제작기법 때문에 문제되거나 낯설어서 진실성이 훼손되거나, 볼 사람이 안 보거나 그러진 않더라.” 

- 제작진의 그런 걱정을 뚫고 촬영을 이어나가기가 힘들었을텐데 

“논픽션 드라마는 지금 생각하면 시작부터 끝까지 ‘이런 식으로 해서 되겠어?’라는 우려의 연속이었다. 연출자가 고집, 내지는 확신, 소신으로 밀고 나간 거다. 촬영만 하고 오면 ‘지금이라도 좋으니 중단해라. 지금까지 예산 쓴 것은 방송사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이게 무 슨 드라마냐? 이것은 드라마가 아니야’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마. 지금이라도 다른 걸 해’라는 압력에도 시달렸다. ‘송면이의 서울행’도 그 중 하나다. 그 땐 젊고 소신 있고 용기 있었기에 했지 지금이면 못했을 것 같다.” 

▲ KBS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div></div>
                                <figcaption>▲ KBS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을 제작한 김종식 전 KBS PD (현 아이윌미디어 대표)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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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런 PD 있다면 제작자로서 말릴 건가? 

“지금은 방송이 급격히 상업화돼서 그런 PD 자체가 없다. PD들이 방송국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런 것은 아예 머릿속에 없다. 지금은 그런 건 좀 기대하기 힘들다. 공영방송도 마찬가지다.” 

- 그때 용기를 북돋워 준 선배는 있었나?

CP 하시던 장기오 선배가 그랬다. 그 분이 외압이랄까, 방송국이 우려했던 것들을 많이 막아줬다. 니 소신대로 하라고 해서 용기를 많이 얻었고 힘이 됐다. 사후에 심의실에서는 ‘PD의 소영웅주의적 발상’이란 평가도 있었다고 전해들었다.” 

- 시청률은 몇 % 정도나 나왔는지? 

“당시만 해도 정확하게 집계할 때가 아니다. 지금처럼 시청률 집계업체가 없었고, 편성국에서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고용해서 무작위로 전화를 돌려 ‘뭐 보고 계세요’ 해서 조사했었다. 그것도 몇 개의 주요 드라마, 주말연속극, 9시 뉴스 등 몇 개만 뽑아서 했다. 논픽션 드라마는 조사 대상 자체가 아니었다.”

- 반향이 상당했을 것 같다 

“일반 시청자보다 언론, 특히 신문이 많이 주목 했다. 논픽션 드라마 나가고 나면 신문기자들이 리뷰를 많이 써줬다. 내 기억에 ‘송면이의 서울행’을 보고 중앙일보에 리뷰를 쓴 기자가 당시 신입이었고 지금은 주필이 된 이하경 기자일 거다.” 

- 방영 후 내부 분위기, 평가는 어땠나? 

“동료 후배들은 잘 만들었고 용기 있다고 평가했다. 선배들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어떤 선배는 너 참 용기 있다’고도 했고, 어떤 선배는 ‘왜 교양으로 안가고 여기(드라마국) 있어?’라고 했다. 지금은 장르파괴가 많지만 그때만 해도 ‘송면이의 서울행’은 전통 드라마 문법이 아니었다.” 

- 선배 본인들이 그런 소재를 못 다룬데 대한 시기와 질투였을까? 

“일부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 회사와 노동부, 법률구조공단 등 누구도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자, 형 근면씨가 동아일보에 제보하러 가는 장면이 나오고 기사가 나가니 산재로 판정난다. 당시 산재를 대하는 신문사 논조는 어땠나? 

“신문사라 해서 특별히 산재에 관해 인식을 갖고 있진 않았던 것 같다. 산재 문제라기보다는 억울한 사람이 언론사 찾아와서 하소연하는 것을 들어주고 기사에 반영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 ⓒ KBS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div></div>
                                <figcaption>▲ ⓒ KBS드라마 <송면이의 서울행> 동아일보 사옥에 문근면 씨가 동생 문송면 씨의 사연을 제보하는 장면.</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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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드라마 <송면이의 겨울행></div></div>
                                <figcaption>▲ ⓒ KBS드라마 <송면이의 겨울행> 문송면 씨의 죽음을 알리는 동아일보 보도.</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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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DAS(KBS Digital Archive System)에서 검색 했더니 안나오더라. ‘송면’인데 ‘송연’으로 입력이 돼 있더라. KBS에서 아카이브를 체계적으로 한 건 언제부터인가? 

“그래도 영상자료가 있다니 다행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해왔을 거다. 그 전에는 옛날 드라마 연속극이나 논픽션 드라마 같은 경우는 회차가 많아서 1회와 마지막회만 보관하고 나머지 싹 날려버리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 정권이 바뀌고 공영방송도 내홍을 겪다가 제자리를 찾아가려 노력중인데 현재 KBS를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KBS에 오래 있으면서 늘 느꼈던 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중심 잡고 중립적 시스템 속에서 가야 하는데 KBS는 모든 게 정권에 따라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중심을 잡을 수 없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공정한 시스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요원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큰 차이 없는 것 같다. 그게 제일 아쉽다.”

- 외주 드라마 제작사 제작환경은 요즘 어떤가? 

“점점 열악해진다. 52시간 노동은 제작사에 심각한 문제다. 52시간제 하려면 직원을 더 채용하든지 직원을 다 내보내고 52시간 근무를 할 프리랜서로 바꾸든지 시스템 전체를 다 바꿔야 한다. 당연히 제작비가 상승한다. 제작비를 방송사가 해결해 주느냐? 고스란히 제작사 몫이다. 이익은 점점 줄 어들거나 손해보는데 대책이 없다. 특히 지금 방송의 러닝타임, 분량으로는 주 52시간 맞추기 힘들다. 미니시리즈를 일주일에 70분짜리 두 편 나가는 건 세계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 사전 제작해 1년, 2년 전부터 만들면 가능하지만 제작비가 엄청나게 오른다. 제작비를 맞추려면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만드는 시스템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52시간 못 지킨다. 누구 하나 책임져 줄 곳이 없다.” 

- 김 대표가 생각하는 해법이나 대안은? 

“아…(한숨) 섣불리 꺼낼 수 없는 얘기다. 너무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지상파 방송도 지금 다 적자라 무조건 돈 내 놓으라 할 수 없다. 그러니 이게 산업 구조, 상업화된 시장하고 깊은 연관을 갖고 다원적으로 얽혀있는거지, 단순히 왜 돈 덜주냐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적극적으로 조정해야 할 방통위나 문화체육관광부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방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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