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SBS ‘논두렁 보도’ 배후에 국가정보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주장하자 SBS가 “아무런 구체적 근거가 없고 순전히 추정에 불과한 것”이라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일명 ‘논두렁 보도’란 “‘권양숙 여사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진술했다”는 내용의 2009년 5월13일자 SBS 8뉴스 리포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품시계 수수 수사를 맡았던 이 전 부장은 지난 25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저에게 직원을 보낸 것 이외에 임채진 전 검찰총장에게도 직접 전화를 걸어 ‘노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하였다가 거절 당했다”며 “그 후 일주일쯤 지난 2009년 4월22일 KBS는 저녁 9시 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시계수수 사실’을 보도했다. 원 전 원장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 2009년 5월13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 명품시계 수수 의혹 관련 SBS 8뉴스 보도.
▲ 2009년 5월13일자 노무현 전 대통령 명품시계 수수 의혹 관련 SBS 8뉴스 보도.

이 전 부장은 자신이 KBS 보도 경위를 확인해 본 결과 국정원 대변인실이 개입한 게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2009년 5월8일 조선일보가 국정원장이 검찰총장에게 불구속의견을 개진했다고 보도했는데 이 전 부장은 “해당 보도 배경은 노 전 대통령의 시계수수 보도 개입 등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국정원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 기류로 생각된다”고 했다.

이 전 부장은 SBS 보도를 언급하며 “국정원의 행태와 SBS의 보도 내용, 원세훈 원장과 SBS와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 볼 때 SBS 보도의 배후에도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은 2015년 2월 신문기사와 2017년 11월 입장자료에도 ‘심증’밖에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지난해 10월23일 “국정원 직원 4명이 SBS 사장을 접촉해 노 전 대통령 수사 상황을 적극 보도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고, 이 전 부장은 이 같은 내용으로 심증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하금열 당시 SBS 사장과 최금락 당시 보도국장은 SBS 노사가 합의로 만든 ‘논두렁 시계 보도 경위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 조사를 거부한 가운데 국정원의 개입을 부인했다. 하 전 사장은 지난해 10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SBS 보도국은 보도본부장·국장책임 시스템으로 운영됐고 당시 SBS 기자가 취재·확인·발제해 기사가 나간 것으로 안다”며 “따라서 당연히 외부 압력이나 간섭은 없었다”고 답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사진=노컷뉴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맡았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사진=노컷뉴스

국정원 개혁위원회나 SBS 진상조사위는 대검찰청이 노 전 대통령 수사 기록을 보여주지 않아 추가 조사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정원 개혁위는 국정원 전산자료에 ‘논두렁’이란 단어를 포함한 문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SBS ‘논두렁 시계’ 조사위 “국정원 보도 개입, 근거 찾지 못해”]

SBS는 지난 25일 “이 전 부장은 ‘당시 SBS의 보도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던 종전 주장에 아무런 구체적 근거가 없고 순전히 자신의 추정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인정했다”며 “이 전 부장이 ‘논두렁 시계 보도’ 관련 과거 발언은 물론 이번 해명에서 추가로 ‘원세훈 원장과 SBS와 개인적 인연’ 등의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통해 SBS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한데 대해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인규 전 부장이 입장을 밝힌 25일 SBS 8뉴스 보도.
▲ 이인규 전 부장이 입장을 밝힌 25일 SBS 8뉴스 보도.

앞서 SBS는 사내외 인사들로 꾸린 진상조사위에서 ‘명품시계 수수 보도’ 경위 및 진상을 파악했다. 진상조사위가 한 달 넘게 조사해 지난해 12월4일 내놓은 결과를 보면 SBS 취재기자는 평소 신뢰하던 검찰 관계자에게 해당 내용을 취재했고, 취재기자를 비롯해 법조팀장·사회2부장 등도 국정원 등 다른 곳에서 관련 내용을 들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 전 부장이 SBS-국정원 연계설과 관련해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 못하면서 입장발표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 24일 다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전 부장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의 한 아파트 앞에서 현지 교민들이 1인 시위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교민들은 이 전 부장의 언론 플레이를 규탄하며 검찰 소환을 촉구했다. 미국으로 도피했다는 지적을 받아 온 이 전 부장의 행방이 드러나면서 다시 논란이 커진 상황에서 이 전 부장은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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