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겸·은·물·러·나·라’ 외친지 1년
‘김·장·겸·은·물·러·나·라’ 외친지 1년
[인터뷰] 7년만에 '이별이 떠났다'로 돌아온 김민식PD, 힘들지만 드라마 만드는 게 ‘좋다’

박근혜씨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사회 전반에 새 바람이 불었지만 김재철, 안광한, 김장겸으로 이어진 MBC만은 예외였다. MBC는 새 정부 들어서도 상당기간 그대로였다. 무기력의 침묵을 깨고 2017년 6월2일 상암동 사옥 안에서 김민식 피디가 외쳤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페이스북 라이브로 실시간 중계된 김 PD의 목소리는 MBC 구성원들에게 기폭제였고 시민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5개월 뒤 김장겸 체제가 무너졌다. 김 피디는 제작현장에서 밀려난 지 7년 만인 지난 5월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메인PD로 돌아왔다. 그를 만나 지난 1년 동안 MBC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다.

- 영상이 페북에 올라온 지 딱 1년(6월2일)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 기억은 나는가? 김장겸 퇴진투쟁 평가는?

2017년 MBC 파업은 2012년 파업의 연장선이다. 지난해 MBC가 정말 바닥을 치는데도 싸울 여력이 없었던 것은 2012년의 큰 싸움에서 너무 처절하게 깨지고, 박살 나서다.

2012년 나는 언론노조 MBC본부 부위원장으로 파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현장에서 시민을 만났고, 2017년에는 ‘김장겸은 물러나라’ 외치기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으로 여러 사람의 반응을 접했다. 12년과 17년의 반응은 달랐다. 12년에 달려온 시민들은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MBC가 망가져가고 있다, MBC를 살리자”고 했다. 17년에 달려온 시민들은 “MBC가 너무 망가졌고 더는 못 봐주겠다”며 달려온 거다. 12년엔 애정이었고, 17년엔 증오였다.

우리는 지난 1년간 분명히 싸워 이겼고 MBC가 정상화됐지만 지금 조합원들은 다들 무척 힘들어한다. 프로그램 열심히 만드는데도 생각보다 우리 뜻대로 안 된다. 지난 시기 우리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감, 좌절과 분노를 안겨줘서 시민들은 아직 우리에게 애정을 갖지 않는다. “니들 얼마나 잘할 건데?”하며 지켜본다. 조그만 실수라도 나오면 “니들 그럴 줄 알았어. 얘들 아직까지도 이러쟎아”라는 싸늘한 시선이다.

▲ 김민식 PD가 지난 1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 6층 드라마국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 김민식 PD가 지난 1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 6층 드라마국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우림 기자

나의 지난 1년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김장겸이 물러난 그 순간부터 우리의 싸움은 시작됐다. 우리가 왜 김장겸을 쫓아내야 했는지를 방송콘텐츠로 보여줘야 한다. 여전히 많은 시민이 MBC를 미덥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본다.

- 그렇게 말하면 동료들이 수긍하나?

솔직히 말하면 동료들에게 그 얘기를 하지는 못한다. 후배들이 그런다. “형 회사는 좋아진 거 같은데, 내 개인의 삶이 좋아진 건지 잘 모르겠어요.” MBC가 망가진 사이에 종편과 케이블이 급부상 했다. 나는 이게 이명박근혜의 그랜드플랜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영방송이 많이 망가졌다. 그러면서 그 빈틈을 저들이 채웠고, 옛날에 비해서 훨씬 더 경쟁이 치열해졌다.

옛날엔 MBC가 뭐 만들면 기본이 뉴스 시청률 10% 나오고 다큐도 그랬는데, 요즘 왜 이렇게 시청률이 안나와? 이러면 후배들이 미치는 거다. MBC가 예전처럼 미디어 강자가 아니다. 그래서 더 어렵다. 이것도 우리가 안고 갈 숙제다.

- 이후 김장겸 체제 조력자들 만난 적 있나?

나는 일반 조합원들 개개인이 누군지, 성향은 어떤지 잘 모른다. 회사에서 항상 웃으며 다니고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직원 같으면 웃고 인사하는데 몇몇 사람들 표정이 안 좋다. 나중에 알고 보면 김장겸 사장 밑에서 보직하다가 이번에 한직으로 밀려간 분들이다. 그들의 싸늘한 시선은 내가 안고 살아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복귀 때 “인사부, 정상화위원회, 법무부 그런 분들이 MBC 정상화 위해 일해 주실거고 저는 드라마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김장겸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끝끝내 모를 거다.

- 김 PD를 대하는 회사 안팎 시선 달라졌나?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제주도 촬영분이 있어서 갔는데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구경하러 모여 들었다. 촬영 현장에 학생단체 몰려오면 동시녹음이나 배우들 감정 깨지는 것 때문에 많이 걱정한다. 고민하는데 갑자기 촬영라인 안으로 아저씨 한 분이 쑥 들어와서 모니터 앞으로 걸어왔다. “공범자들 잘 봤습니다. 영화보고 나오는 길에 극장 화장실에 들어가서 울었습니다. PD님” 했다. 인솔교사신데 학생들과 현장 지나가다가 ‘어? 그 사람이네!’하고 너무 반가웠단다. 제가 조연출한테 ‘이제 나는 길 가다가 침도 못 뱉고 함부로 욕도 못하겠다’고 했다. 하하.

- 7년 만에 드라마PD로 복귀하면서 부담은?

드라마국 복귀한 뒤 작년 말부터 갑자기 부담스럽더라. 김민식 PD가 얼마나 메시지 있는 드라마를 만들지, 제작 스탭 노동환경 개선에 노력하는지, 온갖 기대할 것들이 떠올랐다. 매년 한 작품씩 드라마를 만드는 PD들도 있는데 7, 8년을 떠났다가 경쟁력 있는 드라마를 만들지, 스탭들 노동환경도 고민해야 하니 진짜 부담스럽다. 겁이 확 났다. 저는 그럴 때 좋은 거 하나씩만 보고 간다. 대본을 보고 이 얘기는 너무 재밌어. 이 배우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야. 그거만 보고 간다. 부담스럽지만 드라마 만드는 게 너무 좋다.

- 첫 현장촬영 때 감회는?

너무 긴장했다. 오히려 촬영 나가서는 정신없이 찍었고, 촬영 준비하면서 막 벅차더라. 전철 안에서 대본보면서 머릿속에 콘티를 그려보다가 와락 눈물이 났다. 이렇게 재밌고 좋아하는 일인데, 내가 이걸 7년이나 못했구나 생각하니 서러워졌다.

▲ 7년 만에 MBC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메인PD로 돌아온 김민식 PD가 지난 4월16일 촬영현장에서 스탭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MBC 제공
▲ 7년 만에 MBC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메인PD로 돌아온 김민식 PD가 지난 4월16일 촬영현장에서 스탭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MBC 제공

- MBC 정상화가 예상보다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드라마나 예능은 어떤가?

새 사장이 오고나서 외부 드라마 제작사들이 힘들어한단다. 예전엔 단일 지휘체계가 있어 그 쪽 보고 일했는데, 지금은 개개인 PD들 선택이 너무 중요해져서 PD 한명, 한명 일일이 설득해야 한다. 민주화가 너무 돼 혼란스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드라마 제작사, 외주사 대표들이 보기에 지금 MBC 드라마가 더 무너지는 게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한다는 말을 한 기자가 전해주더라.

그 얘기 듣고 파안대소 했다. 그렇게 보기도 하는구나. 지난 몇 년간 MBC 드라마의 가장 큰 폐해는 장근수 드라마 본부장의 장기집권이었다. 김재철 안광한까지 4~5년 본부장 하면서 특정 제작사와만 계속 작업했다. 몇년간 MBC 드라마 중에 참신한 소재의 드라마가 있었나? 이 얘기는 본부장 한 사람만 구워삶으면 편성 따고, 본부장이 이 드라마 하기로 했으니까 PD에게 시키는 거다. 그 결과 지난 2년 사이 PD 7명이 나갔다.

MBC에서 하고 싶은 드라마 못하면 나가서 JTBC, CJ 가서 하고 싶은 드라마를 하겠다는 거다. 지금 정상화돼서 국부장들이 “PD들이 니들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가져와봐라”하고 있다. 이런 상황 되니까 오히려 외주사가 혼란스러워 하는 거다. 지난 몇 년간 쌓인 폐해인데 이건 사장이 바뀌었다고 바로 바뀌지 않는다.

- 떠나 있는 동안 제작 환경은 얼마나 바뀌었나?

7년 만에 연출하면서 바뀐 생경한 풍경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었다. 소품팀이 손목에 오색테이프를 달고 다니더라. 촬영가서 배경에 상표들 색깔에 맞는 색테이프로 가릴려고. 큰 테이프로 크게 덮어버리면 화면에서 안 예쁘다. 아 고화질인 거다! 옛날에는 인물을 잡으면 뒤가 다 포커스 아웃됐는데 지금 시청자들은 고화질로 시청한다. 옛날에 안 보였던 뒤 배경의 상표까지 다 보인다. 또 다른 변화는 무선, 경량화, 배터리다. 예전에는 촬영 시작하면 맨 먼저 발전차에서 조명선부터 끌고 뛰었다. 선이 연결되면 비로소 ‘슛들어 갈께요!’ 했는데 지금은 다 배터리로 해 선이 없어졌다. 카메라에서 오는 영상도 다 데이터송신 무선으로 한다.

첫 방송 뒤 인터넷 댓글 중에 ‘연출이 너무 올드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저는 빵 터졌다. 당연하지, 올드 하지. 나는 7년 전 방식대로 연출하니까. 그 사이에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는데. 저도 오십이 넘었고 드라마 연출로 한창 일할 40대를 다른 곳에서 보내고 왔으니 씁쓸하고 화도 난다. 그렇게 조증과 울증 사이를 오가면서 산다.

- ‘이별이 떠났다’는 어떤 드라마인가?

살면서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고난이 반드시 온다. 안 넘어지려고 애쓰면서 위태위태하게 가는 거보다 넘어졌을 때는 다시 땅 짚고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 흔히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그리는 긴장, 갈등요소로 여주인공에게 닥쳐오는 고난은 ‘남편의 바람’이다. 그동안 꾸려왔던 가정이 한 순간 무너지는 것 같은 위기가 왔을 때 여자가 어떻게 할 것인가. 대부분 드라마는 이혼하고 혼자 싱글맘이 돼 힘들게 아이 기르다가 젊은 남자 다시 만나는데, 알고 보면 재벌 2세다. 제가 힘든 시절 겪으며 느낀 건 누구도 나를 구해주러 오지 않더라는 거다. ‘이별이 떠났다’는 어떤 남자도 오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 영희의 대학생 아들의 여자친구가 임신했다고 찾아온다. 어린 여자아이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걸 고민하면서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오는 얘기다. 불행에 빠진 여자에게 왕자님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자기보다 더 힘든 약자가 나타나고, 그 약자를 도우며 스스로 일어서는 이야기. 아들의 임신한 여친은 자기보다 더 약한 태아를 위해 또 뭔가를 한다. 얘기가 매력적이었다.

▲ 김민식 PD는 7년 만에 MBC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의 메인 PD로 돌아왔다. 김 PD는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7년이나 못했다고 생각하니 서럽다”고 말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 김민식 PD는 7년 만에 MBC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의 메인 PD로 돌아왔다. 김 PD는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7년이나 못했다고 생각하니 서럽다”고 말했다. 사진=이우림 기자


- 드라마를 본 주변의 반응은?

페북 친구들이 '저는 평소에 tv 드라마를 안 보는데 피디님이 연출하시니까 볼께요.' 이런 댓글을 많이 단다. 정말이지 이럴 때는 진짜 '그러지 말고, 보지 마세요'라고 답글 달고 싶다. 하하. 다만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를,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 모아서 한 번 해보려한다. 즐겁게 하고 있다. 사실은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좀 놀라더라. 생각보다 어두운 드라마다. 나는 뉴논스톱, 내조의 여왕 등 밝은 로맨틱코미디(이하 로코) 연출하던 사람인데 몇 년전 어느날 문득 '나는 이제 로코를 연출 못하는 사람이 된게 아닐까? ' 그런 생각이 들더라. 로코 연출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갖고 있는 구원의 힘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로코가 갖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믿지 않는다. 왜냐면 지난 몇 년간 지내면서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 중 하나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의 말이...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다. 그것 또한 내 삶이고 연출가로서 내가 살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 7월부터 주 68시간 노동시간을 지켜야 한다. 대책이 있나?  

원래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스텝은 열악한 환경에서 적은 보수로 일한다. 더 인간적인 환경이 돼야 한다. 일 자체를 쪼개서 좀 더 여러 사람이 일해서 근로시간을 준수하는 방향이 맞다.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을 것이라서. 




- 이용마 기자와 자주 연락하는지?

5월25일 첫방 앞두고 전날 이용마 기자가 격려문자를 보냈다. 성격이 건조한 이 기자가 이모티콘을 섞어 보낸 문자를 보니 완전 감동했다. 전화 목소리는 밝고 좋았다. “현장 돌아와 보니 전 경영진이 싸 놓은 똥이 너무 많아서 그거 치우느라 다들 개고생 하고 있어. 그러니까 천천히 몸 잘 만들어서 와.”라고 했더니 용마도 그럴 것 같다고 위로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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