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어머니와 삼촌, 고령의 할머니까지 돌봐야 했던 김선호씨(32)는 알바생활을 전전하다가 2009년부터 휴대폰 판매 일만 7년째 하고 있었다. 김씨는 2014년 5월 KT스카이라이프가 무선사업팀을 신설한다는 공고를 보고 입사했다. 면접 때 나온 스카이라이프 간부들은 “계약직으로 시작하지만 열심히만 하면 정규직도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스카이라이프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6월에서야 스카이라이프가 아닌 KTis 명의의 계약서를 들고 와 연말까지 8개월짜리 계약을 강요했다. 일은 스카이라이프에서 하는데 계약은 KTis와 해 불법파견(위장도급) 소지가 있었다. 스카이라이프는 연말 계약기간이 끝난 2015년 1월 불법파견 소지를 없애려는 듯 김씨에게 ‘1년 계약직(기간제)’ 근로계약서를 썼도록 했다.

2016년 1월 다시 1년이 지났다. 스카이라이프는 김씨와 계약을 꺼려했다. 기간제로 1년을 더 일하면 ‘정규직 고용의제’에 걸리는 게 문제였다. 2014년처럼 KTis와 계약하자니 불법파견에 걸릴 것 같고. 회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2016년 1월부터 4월까지 김씨는 스카이라이프와 개인 위탁계약으로 넉 달을 일했다.

버리자니(해고) 아깝고, 계약직으로 직고용하자니 1년 뒤엔 정규직 고용의제에 걸리고, KTis명의의 계약서를 쓰자니 불법파견에 걸리고. 고민 끝에 스카이라이프는 2016년 5월 KTis 명의의 1년짜리 도급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계약기간은 2016년 5월부터 2017년 4월까지였다.

김씨는 3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①KTis 도급계약(8개월 / 2014년 5월~12월) ②스카이라이프 기간제(1년 / 2015년) ③개인 위탁(4개월 / 2016년 1월~4월) ④KTis 도급계약(1년 / 2016년 5월~2017년 4월)으로 신분이 4번이나 바뀌었다.

김씨는 노동위원회 구제신청과 소송전까지 가는 복직 싸움 끝에 지난 5월8일 스카이라이프 영업본부의 컨설턴트로 다시 첫 출근했다.

- 어느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하나?

“KT 스카이라이프 영업본부 수도권영업단 수도권 북부지사다. 무선 사업팀에서 해고됐는데 이번에 복직되면서 회사가 새로 만든 컨설턴트 직군(기존 정규직과 다른)으로 복직했다. 스카이라이프가 접시 안테나를 달면 주파수가 잘 맞는지 준공검사 하는 일이다. 전국에 이 일을 하는 사람이 24~25명 정도 있었다. 이 분들도 직고용을 요구했다. 이 분들과 함께 컨설턴트 직군으로 복직했다. 기존 정규직 부서로 고용되길 원했지만 정규직들 반발이 있었다. 해고 뒤 우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얼마 뒤 정규직들이 스카이라이프 정규직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정규직이 서명운동을 해서 대부분 사인했다. 컨설턴트들은 오래된 분들은 10년 넘는 분도 있고 적게는 4~5년 이상 근무했다. 그들은 기존 스카이라이프 정규직과 친분이 있어 정규직들 반발이 덜했지만, 나와 염 지부장이 속한 무선사업부는 교류할 일 없는 섬 같은 조직이라 기존 정규직들 반발이 더 심했을 수 있다.”

- 지리한 복직 논의, 맘이 편치 않았겠다.

“회사와 복직에 합의한 뒤에도 정규직이 계속 반대하니 회사가 새 직군을 만들었다. 작년 6월 회사가 고용을 제의 했을 땐 그런 말이 없었다. 기존 정규직과 평등한 조건으로 고용되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내가 속한 컨설턴트 직군은 정규직과 비교해 복지는 거의 같은데, 직급 체계와 연봉 상한선이 다르다. 나는 원래 내근만 했는데 컨설턴트는 대부분을 현장 나가 점검, 설치, 수리하는 일이다.”

- 비정규직일 때와 비교해 근무환경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로 근무 환경은 괜챦다. 스카이라이프 자체가 근무환경 나쁘지 않은 편이다. 무선 사업팀 때는 굉장히 늦게까지 남았다. 휴대전화 개통 가능한 게 오전 10부터 저녁 8시반 까지다. 처음 도급으로 들어가 워낙 많은 업무량을 할당 받아 한 달에 절반 정도는 밤 9~10시까지 일했다. 팀장이 실적이 안 나오면 ‘자리라도 늦게까지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전산시간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 주문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했다.”

▲ 김선호 KT새노조 스카이라이프지회 사무국장이 지난 5월25일 서울 미아역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하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 김선호 KT새노조 스카이라이프지회 사무국장이 지난 5월25일 서울 미아역 인근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하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 동료들은 어떤가?

“3주 째인데 무선사업팀에서 일할 때보다 조용하다. 회사와 소송까지 한 저를 배척할 줄 알았는데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말도 친절하게 건네준다. 사무실에 11명 일하는데, 컨설턴트 3명, 정규직 8명이다.“

- 복직했을 때 가족들 반응은?

“너무 좋아 잔칫집 분위기였다. 나는 외할머니, 어머니, 외삼촌을 모시고 함께 산다. 어머니와 외삼촌은 청각장애인이고, 할머니는 고령에 고혈압, 심장, 무릎 등 합병증에 고생하신다. 해고되고 복직투쟁 하면서 집에 말을 안했다. 어머니가 지난해 12월 꿈자리가 안 좋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매일노동뉴스 표지에 1주일 동안 1인시위하는 내 사진이 실렸더란다. 어머니는 비 맞고 서 있는 내 사진을 보고 엄청 우셨다. 실업급여(130만 원 6개월)가 끝나던 지난 1월말쯤 가족에게 그동안 일을 말씀 드렸다. 회사가 너무 완강해 대법원까지 갈지 모르지만 해볼만하다고 가족들을 진정시켰다. 그때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지난 3월23일에 회사와 복직합의서 쓰고 여자친구에게 맨 먼저 알렸다. 꺅꺅 소리 치고 난리가 났었다. 10년 연애 끝에 올 10월 결혼식 날까지 잡은 여자 친구는 모든 과정을 다 안다. 걱정을 많이 하면서도 응원해 줬다. 예식장은 잡았는데 신혼집은 알아봐야 한다.“

- 비정규직과 정규직, 가장 달라진 점은?

“마음이 편하다. 비정규직일 땐 정규직 전환 기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소속이 계속 바뀌면서 이래도 되나 싶었다. 매일 퇴근할 때면 ‘계약 기간 얼마 남았는데 계약 안 되면 뭐 해먹고 살아야 하나? 나이도 차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항상 고민했고 탈모까지 생겼다. 지금은 발전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출퇴근할 때 발걸음 자체가 가벼워졌다.”

- 어떻게 정규직화 요구를 시작했나?

“해고 전 마지막 계약은 KTis와 2016년 5월 1년짜리 도급계약이었다. 일은 스카이라이프에서 했는데. 한 달쯤 일하다가 6월부터 고민했다. 어차피 1년 지나면 재계약 놓고 안절부절 할 텐데, 계속 소속이 바뀌니 처음에 품었던 정규직 희망은 다 사라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부터 계약관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위장도급’, ‘불법파견’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이런 말이 뭔지도 몰랐다. 혼자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던 도급 비정규직 동료들에게 함께 직고용 요구하자고 얘기했는데 “그러다 너만 짤린다”며 외면했다. 혼자 증거를 5백장 넘게 모아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부지청에 내 발로 찾아갔다. 박아무개 근로감독관이 “회사가 몇 백억 대 소송을 너한테 걸면 감당할 수 없다. 평생 갚아도 못 갚는다”고 말해 겁먹었다. 진정 접수도 못하고 돌아와 침울했다. 그 때 염동선 지회장이 팀장한테 쌍욕을 듣고 나서 “너 진정 접수한다며, 어떻게 됐어? 나랑 같이 하자”고 했다. 염 지회장이 2016년 9월 중순에 박사영 노무사 만나서 진정 넣었다. 서부지청 담당자는 일전의 박아무개 근로감독관이었다. 보통 진정 하면 당사자 불러서 최소 한 번은 대면이나 서류조사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2017년 2월에 무혐의 처분하고 내사 종결했다. 고용노동부가 누굴 위해 존재하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종결 된 뒤 노무사와 논의하다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고, 2017년 3월 공공운수노조 ‘KT새노조 스카이라이프지회’를 만들었다. 동시에 이남기 전 KT스카이라이프 사장과 박형출 KTis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형사 고소했다. 박 노무사가 큰 힘이 됐다.”

- 복직투쟁 때 두렵진 않았나?

“나서는 걸 싫어해 정말 창피했다. 그래도 클리앙, 네이버카페 등 대형 커뮤니티에 우리 사연을 알리려고 글을 썼다. 고용노동부 차관이 KT 구로지사에 온다고 해 1인 시위 하러 갔다. 지나던 행인이 김선호씨 아니냐며 커뮤니티에서 글 봤다고 음료수를 건넸다. 그 분은 문재인 대통령이랑 프리허그 때 찍은 몇 시간짜리 전체 영상 중에 내가 나온 부분만 편집해 메일로 보내줬다. 눈물이 났다.”

- 문재인 후보와 프리허그는 어떻게 성사됐나?

“대선기간에 우리 문제를 알리려 후보들을 쫓아다녔다. 문, 심 후보에게 손편지 써서 썼다. 문재인 후보가 사전투표율이 25% 넘으면 프리허그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할 때 손편지를 전달했다. 문후보 SNS에 프리허그 일정이 나왔길래 일찍 가서 단상 앞에 앉았다. 3만 인파가 몰려서 특별한 주제를 가진 사람만 단상위에서 포옹하기로 현장에서 결정됐다. 우리는 편지를 막 흔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도 올려 보내달라’고 소리쳤다. 사회를 보던 조국 교수가 우리를 보고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계신 분?’하고 물었다. 내가 지목돼 올라갔다.

우리 해고 얘기는 간단히 하고 양극화 해소를 문 후보에게 부탁했다. 떨려서 할 말도 제대로 못했다. 염 지회장은 자기는 너무 나이 들어 보이고, 청년 비정규직이 문제이니 나보고 올라가라고 했다.

노동위 심문회의 때 회사 노무사가 문 후보와 프리허그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우리 복직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정권이 바뀌고 궁지에 몰린 KT 황창규 회장이 우리 둘의 복직 문제를 신경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

▲ 지난해 5월6일 김선호 사무국장(왼쪽)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 삼호중공업 비정규직 송원석 씨가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열린 ‘투표참여 릴레이 버스킹’행사에서 프리허그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5월6일 김선호 사무국장(왼쪽)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 삼호중공업 비정규직 송원석 씨가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에서 열린 ‘투표참여 릴레이 버스킹’행사에서 프리허그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지지율이 말해 준다. 새 정부는 소통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복직 투쟁 전에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내 또래는 먹고 살기 바빠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 노동부에 진정을 내고나니 사회문제에 관심이 생기더라. 촛불혁명으로 청년 세대도 정치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대통령은 때론 지지층이 반대해도 옳은 일이라면 적극 밀어붙여야 한다고 본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경영계가 크게 반대하는데 정부는 그걸 넘어설 뚝심이 필요한데 아직 먼 것 같다. 불법파견 판정 나서 직접고용하라고 공문이 와도 회사는 과태료만 내면 끝이다. 강제성이 없는 것이 제일 문제다. 파견법을 고쳐야 한다.”

- 노조 만들고 나서 나아진 건?

“처음엔 노무사 권유로 만들었지만 아무 것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노조라는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겪어보니 우리나라에 이렇게 비정규직이 많은지 몰랐다. 아사히 글라스처럼 불파 판정 받았는데 이행하지 않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그런 분들 어서 복직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저조한데, 정부에서 노조 조직과 활동을 권장해야 하고, 민주노총도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 저 같은 사람이 볼 때는 민주노총이 거대기업, 산별조직에만 관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노조에 더 가입하는 사람은 없었나?

“스카이라이프에 콜센터나 설치기사 중에도 비정규직이 몇 백 명은 있는데 우리 노조에 가입 문의해 온 적은 없다. 이번에 함께 정규직 고용된 24명의 컨설턴트 분들은 조만간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 지부에 가입한다고 했다. 나와 염 지회장은 노조를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내가 소속됐던 KT 자회사 KTis, KTcs가 사실상 인력공급회사처럼 운영되는 듯하다. KT나 스카이라이프가 콜센터 직원이나 설치기사들을 최저임금으로 부려먹을 건 다 부려먹고 고용은 책임지지 않는다. 한때 공기업이었고 지금도 상당한 주식을 정부가 보유한 KT가 이렇게 하는 것 옳지 않다. 나와 염 지회장은 고통을 겪은 당사자라서 앞으로 임금이나 복지보다도 불공정한 고용형태를 개선에 중점을 둘 것이다.”

- 염 지회장은 어디로 발령났나?

“연고가 없는 광주광역시로 발령 났다. 복수노조 대표라서 나와 염 지회장을 갈라놓으려는 거 아닌가 의심했다. 문제제기 했는데 회사는 무연고지 발령자가 25명 중에 6명이라고 했다. 염 지회장은 6월 1일 복직한다. 떨어져 있어도 함께 할 일은 하겠다.”

- 복직투쟁을 보도한 언론은?

“보수언론, 진보언론 가리지 않고 메일을 굉장히 많이 보냈다. 조중동은 연락도 안왔고. 노동부 진정에서 지고 본격 싸울 때 우리를 다룬 언론은 대부분 우호적이었다. 두세 번 써준 기자도 있다. 매일노동뉴스와 한겨레, 뉴스타파, 슬로우뉴스, 투데이신문 등에 감사한다. 기사를 다 모아놨다. 문재인 후보와 프리허그 하고 비정규직 이슈가 뜨자 많은 언론이 관심을 기울였다. 그 뒤 복직투쟁이 답보 상태가 되자 언론의 관심도 떨어져 아쉬웠다.”

- ‘서 있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는데?

“아직 서 있는 곳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할 일도 많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다짐한다. 얼마 전까지 나와 같은 처지였던 사람들을 돕는 것이, 그동안 받은 도움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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