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31일 “청와대에 백기 투항했다”며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게 양상훈 주필 파면을 요구한 가운데 조선일보 사내에서 강 의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강 의원은 이날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께 보내는 공개편지’란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양 주필을 비난했다. 그의 칼럼을 두고 “한겨레신문을 보고 있는지 깜짝 놀랐다”, “청와대 대변인의 협박에 굴복한 조선일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양 주필은 강 의원보다 먼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강 의원의 입사 선배다.

양 주필은 31일 오전 “역사에 한국민은 ‘전략적 바보’로 기록될까”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북의 비핵화를 믿으면 바보라지만 때로는 바보가 이기는 경우도 있다. 북한 땅 전역에서 국제사회 CVID팀이 체계적으로 활동하게 되면 그 자체로 커다란 억지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양 주필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더라도 정보, 자유, 인권이 스며들어 체제에 근본적 변혁이 올 수 있다고 언급하며 “그렇게 되면 한국민은 전투에서는 져도 전쟁에서 이기는 전략적 바보가 될 수 있다”고 적었다.

▲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강 의원은 “양상훈 칼럼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패배주의자들의 말장난이고 속임수”라며 “이렇게 항복 문서 같은 칼럼이 나오면 김정은과 청와대만 웃게 된다”, “양상훈이 정권과 결탁해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인가”, “이런 이중인격자를 두고 있으면 조선일보도 이중인격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맹비난했다.

조선일보 간부들은 강 의원의 비난 발언을 무시하는 분위기다. 박두식 편집국장은 31일 미디어오늘에 “그분은 이제 정치인 아닌가. 그분에게 물어보시라. 왜 이러시는지. 본인이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강천석 논설고문도 “정치하는 사람 아닌가. 우리처럼 인쇄소에 있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나”라고 했다. 자사 출신 정치인의 ‘돌출 행동’에 대한 입장표명에 난색을 표한 것이다.

반면 일선 기자들은 달랐다. 1일 조선일보 기자들 익명 게시판(‘블라인드’)에 “홍준표 대표께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편지는 전날 강 의원이 방 사장에게 보낸 편지 형식을 그대로 차용해 강 의원을 비판했다.

익명의 조선일보 기자는 “청와대 공세에 맞장구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당장 강효상 비서실장을 파면하라”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강효상 의원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재직 시절 기자들에게 악몽과 같은 존재였다. 물러난 뒤에도 몇 달도 안 돼 권력의 품에 안기어 언론의 공정성을 훼손함으로써 기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최근 모 대기업 모녀의 괴성 소리 녹음을 들으며 다시 강 의원의 국장 시절이 떠올라 몸서리쳤다. 발악하는 소리와 갑질 양상이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청와대의 조선일보 비판 논평에 굴복해 주필의 칼럼이 나온 것처럼 선동해 조선일보의 신뢰도를 훼손했다”며 “북한을 지속적으로 샅샅이 뒤지는 핵 사찰과 김정은 체제의 붕괴를 기대하는 칼럼이 청와대 입장과 같다니 강 의원의 독해력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사실 강 의원의 기회주의적 행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며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성품은 공개편지에도 드러난다. 조선일보의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이 따위 편지에도 사장에게 아첨하며 이간질을 획책하고 있다. 권력에 아첨해 편집국장에서 물러나자마자 몇 개월 만에 비례대표를 받아낸 행실에 대해 부끄러움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이중 인격자를 두고 있으면 홍준표 대표도 인중 인격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거짓보수는 당장 파면하고 출당해야 자유한국당 명예를 지킬 수 있다. 보수 정당의 조종이 울리지 않도록 이성적인 사람을 기용하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아래는 이 기자가 익명 게시판에 남긴 글 전문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께 보내는 공개편지

청와대의 공세에 맞장구 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당장 강효상 비서실장을 파면하라.

홍준표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자유한국당이 공당으로서 역할을 잘하길 바라는 조선일보 기자입니다. 강효상 의원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재직 시절 기자들에게 악몽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물러난 뒤에도 몇 달도 안돼 권력의 품에 안기어 언론의 공정성을 훼손함으로써 기자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최근 모 대기업 모녀의 괴성 소리 녹음을 들으며 다시 강 의원의 국장 시절이 떠올라 몸서리쳤습니다. 발악하는 소리와 갑질 양상이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홍 대표 옆에서 얼쩡대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트라우마가 떠올라 고개를 돌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강 의원의 편지를 읽고 나서 이렇게 홍 대표께 공개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편지를 읽어보다 조선노동당 성명을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일보를 공격하는 건 좋습니다. 발전적 비판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언론의 자유에 관한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언론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농락했던 자가 이번엔 주필 파면을 주장하며 논리도 없는 편지로 북한처럼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꼴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강 의원은 편지에서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면 김정은 체제를 찬양하기도 했습니다. 강 의원의 칼럼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패배주의자들의 말장난이고 속임수입니다.

강 의원의 편지가 나온 타이밍은 더할 수 없이 위험합니다. 북미 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기에 미국은 한국의 여론을 살펴보고 협상에 감안합니다. 그런데 이 편지는 한마디로 북한과 협상을 하지 말고 항복을 받아내라는 겁니다. 주필 칼럼의 내용은 ‘최대한 철저히 핵사찰을 해야 하지만 김정은이 숨겨놓은 핵 물질을 다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였고 ‘그 상태에서도 북한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칼럼을 북한에 항복하라는 의미로 봤다면 다른 방책이 있겠습니까. 강 의원의 주장은 김정은을 당장 끌어내리라는 뜻입니다. 미 당국자들이 이 편지를 보고 보수 정당이 어떤 협상 결과도 수용하지 않을 거란 시그널로 인식하게 된다면 그 책임을 어쩌려고 하십니까.

이럴 때일수록 비핵화와 체제 보장의 접점을 찾아 타협이 이뤄지도록 압력을 넣어야 하는데 이런 편지가 나오면 협상을 싫어하는 북의 호전적 군부와 폭격을 원하는 미국의 매파만 웃게 됩니다. 강 의원의 편지는 항복이냐 승리냐 라는 단순 이분법적 사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 의원은 청와대의 조선일보 비판 논평에 굴복해 주필의 칼럼이 나온 것처럼 선동해 조선일보의 신뢰도를 훼손했습니다. 북한을 지속적으로 샅샅이 뒤지는 핵사찰과 김정은 체제의 붕괴를 기대하는 칼럼이 청와대의 입장과 같다니 강 의원의 독해력이 의심스럽습니다. 청와대의 한낱 논평에 위축될 조선일보가 아닙니다. 보도 내용 중 사실관계를 따지면 그만입니다. 다만 청와대가 보도의 의도를 추궁했으니 반대로 특정 언론을 지목해 논평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실만 따져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비판 언론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갈 뿐입니다. 강 의원 따위의 편지에도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강 의원의 기회주의적 행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성품은 공개편지에도 드러납니다. 조선일보의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이 따위 편지에도 사장에게 아첨하며 이간질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권력에 아첨해 편집국장에서 물러나자마자 몇 개월 만에 비례대표를 받아낸 행실에 대해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이런 이중 인격자를 두고 있으면 홍준표 대표도 인중 인격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거짓보수는 당장 파면하고 출당해야 자유한국당 명예를 지킬 수 있습니다. 보수 정당의 조종이 울리지 않도록 이성적인 사람을 기용하기 바랍니다. 자유한국당이 역사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원칙으로 강효상 의원 글의 내용과 형식을 빌어쓰다보니 그 글의 수준이 형편없음을 새삼 느낍니다. 이런 글 솜씨로 기자를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주필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인신공격을 쏟아낸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막말과 인격모독의 패악질 버릇이 쉽게 고쳐지진 않을 겁니다. 악행이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덕분에 편집국장 신임 투표제와 기자 정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있을 때도, 나갈 때도, 나가서도 골칫덩이인 강효상 의원과의 지긋지긋한 인연을 이젠 끝내고 싶습니다. 강효상 의원은 제발 어디 가서 조선일보 출신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말길 바랍니다.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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