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드라마 ‘품위있는 여군의 삽질로맨스’(삽질로맨스)를 만든 제작사에서 드라마 사전제작에 참여한 프리랜서 스크립터 A씨의 급여를 체불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A씨는 “관행상 담당PD(B씨)가 프리랜서들을 모아 약 2개월 간 일을 했고 이 사실을 제작사도 아는데 최종 책임이 있는 제작사가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며 “다른 스태프들은 돈을 받았는데 나는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제작사 고니브로스 측은 “스크립터는 B씨와 계약을 체결했을 뿐 제작사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제작사가 드라마제작에 참여하기 이전 시점에 일이므로 급여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드라마 제작현장에선 보통 일을 완성하고 용역비를 받는 도급계약을 맺지만 현실적으로 함께 일하는 프리랜서가 제작사 또는 현장 PD의 지휘감독을 받아 고용관계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번 논란의 경우 고니브로스는 ‘A씨가 제작에 끝까지 참여하지 않았으니 용역비를 줄 수 없다’고 했고, 노동청은 ‘A씨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볼 수 없으니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웹드라마 '품위있는 여군의 삽질로맨스' 출연진. 사진=Kstar 화면 갈무리
▲ 웹드라마 '품위있는 여군의 삽질로맨스' 출연진. 사진=Kstar 화면 갈무리

A씨는 지난해 9월12일부터 11월4일까지 웹드라마 삽질로맨스 촬영기록 등을 맡은 스크립터로 일했다. A씨는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출근 직후부터 제작사 임원이 현장에 보였다”며 제작사가 9월부터 이미 제작에 개입했다고 말했다. 방송계에선 보통 PD가 프리랜서를 섭외해 일하는 관행이 있다. 두 달 가까이 일했지만 급여를 받지 못하자 A씨는 삽질로맨스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A씨가 주장하는 체불 금액은 약 470만원이다.

프리랜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아냐

A씨에 따르면 월급이 11월15일쯤 나오기로 했는데 안 나와 우선 PD와 얘기 했고 11월말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계속 월급이 나오지 않아 지난해 12월과 지난 2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A씨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며 손을 뗐다. 고니브로스 측도 “자신들이 A씨와 직접 계약을 맺은 적이 없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일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A씨는 “고니브로스 측 변호사가 ‘민사소송해도 소용없다’ ‘언론에 알리면 명예훼손을 묻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방송계 노동환경 개선을 주장하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고니브로스 측에 지난달 공문을 보내 “삽질로맨스 권리는 단독 제작자의 지위를 갖고 있는 고니브로스에 온전히 귀속돼 있으니 A씨의 급여 지급 의무는 고니브로스에 있다고 판단한다”며 급여 지급을 요구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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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 받은 스태프도 있어

웹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일부 스태프와 배우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뒤늦게 고니브로스에서 급여를 받았다.

한빛센터는 “1월에 급여를 지급한 60여명의 스태프도 (고니브로스와) 직접 계약한 사실이 없지만 급여를 지급했고, 고니브로스가 급여를 지급한 스태프 중에는 11월 이전 근로부분도 포함돼있다”고 했다. 고니브로스가 11월부터 본격 제작에 참여했다고 주장했지만 11월 이전에 일한 사람들도 급여를 받았으니 A씨도 급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니브로스 측은 “고니브로스가 본격 제작에 들어간 11월 이후엔 A씨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아서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고니브로스는 “서면 계약서가 없어도 촬영에 참여한 스태프에겐 보수를 지급했지만 이는 이례적인 일”이라며 “스태프 개개인과 회사의 계약이 성립했고 분쟁의 여지가 없어 지급했다”고 했다.

A씨를 섭외한 프리랜서 PD B씨도 제작사가 A씨에게 급여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B씨는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10월에 리딩 겸 전체 회식 있을 때 A씨와 고니브로스 측이 모두 있었는데 ‘A씨를 모른다’거나 ‘촬영기간에는 합류하지 않았으니 (근무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건 말 안 된다”며 “초반부터 고니브로스가 제작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는데 내가 스태프를 모았다고 내가 돈을 줘야 한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고니브로스는 한빛센터에 “노동 현실의 문제를 개선하려는 한빛센터의 노고는 인정할 만한 것이지만 한빛센터의 주장을 적용하기에는 제작현실이 그에 부응하지 못하며 별도의 특별법이 입법화되거나 종속적 노동관계의 본질에 대한 실무 및 학계의 의견이 대폭 수정돼야 할 상황”이라며 “스태프 계약관계를 종속적 고용관계로 접근하기 힘든 측면이 더 많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도급계약과 근로계약의 성격이 섞여있는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책임주체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고 계약서조차 쓰지 않은 채 프리랜서에게 일을 시켜온 ‘관행’이 만든 결과다. A씨는 언제쯤 임금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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