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용역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공공기관 곳곳에서 파열음이 계속 나고 있다. 공공기관이 제편으로 꾸린 전환 협의기구를 통해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이 반대하는 자회사 설립을 강행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동·청소년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국잡월드’ 체험강사들은 지난 4월1일 비정규직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 분회)을 결성했다. 체험강사 275명은 한국잡월드에서 일하지만 용역업체 ‘서울랜드’에 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다. 이들은 직접고용을 6개월 이상 거부해온 한국잡월드 방침을 바꾸려고 노조를 만들었다.

▲ 한국잡월드에서 일하는 한 체험강사가 지난 5월14일 청와대 앞에서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고용을 주장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한국잡월드에서 일하는 한 체험강사가 지난 5월14일 청와대 앞에서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고용을 주장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들은 한국잡월드가 ‘자회사가 유일한 답’이라며 편향된 정보만 제공해왔다고 밝혔다. 한국잡월드는 노·사·전문가협의회가 만들어진 지난해 8월부터 ‘자회사 설립이 되지 않으면 고용승계가 힘들다’거나 ‘직접고용될 시 공개채용 경쟁을 치러야 해 탈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여론조사, 단체교육, 협의회 진행 등을 통해 체험강사들에게 전달해왔다.

산업은행 시설·경비·미화 노동자들도 ‘자회사안 동의를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협의회 논의에서 직접고용 시 ‘정년이 60세가 될 수밖에 없어 고용이 줄어든다’거나 ‘임금피크제를 적용할 수 있다’ ‘복지수준이 하락하고 공개채용도 불가피하다’ 등의 의견을 내놨다.

7년차 시설관리노동자인 남용진씨는 “용역업체 직원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겁먹을 수밖에 없다. 거짓정보로 자회사 고용 찬성을 유도해내는 것”이라며 “가이드라인은 미화, 경비같은 고령자 친화직종의 경우 별도 정년을 정하라고 한다. 국립국악원은 정년을 70세로 늘려 직접고용했다”고 반박했다. 산업은행 용역업체 ‘두레비즈’ 노동자들은 지난 4월 중순 노조(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산업은행분회)를 결성했다.

이들 기관이 말하는 자회사 안은 ‘공공기관과 구조적으로 수의계약을 지속할 수 있는’ 자회사를 설립해 파견·용역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안이다. 기존 보다 고용안정이 개선되지만 현재 용역·파견업체를 낀 간접 고용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고용 방식은 기관·이해당사자·전문가 등이 함께 하는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다수결로 정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또한 당사자로서 협의회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문제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이 없다는 데 있다.

▲ 한국잡월드 분회 조합원 피켓 시위 모습.
▲ 한국잡월드 분회 조합원 피켓 시위 모습.

산업은행은 협의회 총 인원 16명 중 기관 관계자가 6명, 노동자 측이 6명, 외부전문가가 4명이다. 이 중 노동자 측 2명은 산업은행 정규직 노조 관계자로, 두레비즈 고용주와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 산업은행 내 직원 친목단체인 ‘행우회’가 두레비즈를 소유하고 있다. 남씨는 “기관 측이 인선하는 전문가는 실질적으로 기관의 거수기다. 협의체에서 비정규직들이 아무리 반대 목소리를 내도 무시되기 일쑤”라고 밝혔다.

불공정한 인적 구성은 기간제 노동자 전환에서도 지적된 문제다. 교육기관 기간제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심의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정규직전환심의원회 구성을 보면 전체 163명 중 비정규직 노동조합 추천위원은 19명에 불과했다. 정규교원단체 16명과 학부모 9명을 합한 25명보다 적은 비율이다.

의견 수렴 과정이 불공정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영희 한국잡월드 분회장은 △다수결 방식 △편파적 회의 진행 △고용불안을 담보로 한 회유 등을 지적했다. 한국잡월드 협의회는 기관, 전문가, 노동자 측 구성원이 각각 9명, 2명, 9명이다. 노동자 측 9명 중 3명이 체험강사 대표다. 박 분회장은 “한국잡월드는 올해 6월 계약이 종료되는 일부 업체들에게 자회사 안에 동의해라고 회유했다. 협의회는 우리가 반대 발언을 할 때 한숨 쉬며 무시하기 일쑤였고 회의록엔 우리 측 반대 의견이 제대로 적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이런 상황을 “공공부문 정규직화 취지에 반하는 꼼수”라 비판했다. 박 분회장은 6년 동안 한국잡월드에서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남씨 또한 6년 동안 산업은행 본관 승강기 17대의 유지·관리 업무를 맡아 왔다. 남씨는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상시·지속 업무에 비정규직을 남용한 관행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공공기관이 제대로 된 정규직 고용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집계하는 정규직화 실적은 이런 실정을 반영하지 못한다. 자회사 안은 가이드라인에 규정된 파견·용역노동자 정규직화 방안 중 하나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8년 3월 기준 목표 인원 10만2581명 중 41.2%인 4만2242명이 전환 결정됐다.

정규직 전환 속도가 빠른 부문을 보면, 중앙행정기관은 41개 중 30개가 결정을 완료해 1만1361명 중 7044명(62%)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공공기관은 6만9876명 중 46% 가량인 3만2125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자치단체, 교육기관, 지방공기업 등은 전환 비율이 각각 10.5%, 16.2%, 15.4% 수준이다.

한대식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노조가 있는 사업장도 일방적 강행을 막지 못하는데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더 심각할 것”이라며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에게 지도·감독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 분회장은 “우리 힘으론 일방적 강행을 도저히 막을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공공기관이 제대로 된 의지를 가지고 정규직화를 추진하게끔 지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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