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사람이 없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세월호 희화화’ 논란을 부른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 조사결과를 두고 쓴웃음을 지으며 이처럼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언론 보도의 문제점’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토론회는 4·16연대 피해자지원위원회가 주최·주관했다.

지난 5일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은 방송인 이영자씨가 어묵을 먹은 뒤 매니저에게 단골 식당 요리사를 소개해달라고 말한 내용에 이어 “[속보] 이영자 어묵 먹다 말고 충격 고백”이라는 자막을 세월호 참사 당일 MBC 특보 화면과 함께 내보냈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언론 보도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언론 보도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침몰한 세월호가 배경이었던 특보 화면은 블러 효과를 통해 흐려졌지만 ‘어묵’이 반사회적 사이트 ‘일간베스트’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조롱할 때 쓰는 표현이라는 점이 더해져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유 위원장은 지난 주말 사건 조사 과정과 내용 등을 MBC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앞선 언론 보도와 이 사건 경위를 종합해보면 한 MBC 조연출은 ‘속보입니다’,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등의 멘트가 들어간 뉴스 영상을 FD들에게 부탁했다. 재미 요소를 추가하겠다는 의도였다.

이에 따라 한 FD(floor director·연출자를 돕는 역할)가 화면 클립들을 찾아 자료 폴더에 넣었는데 이 가운데 세월호 화면이 있었다. 

세월호 자료를 넣어도 되느냐는 얘기가 FD들 사이에 있었지만 원하는 다른 클립을 찾을 수 없었고, 논란이 된 화면은 조연출 요청에 따른 미술부의 블러 처리와 편집, 이후의 시사 과정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유 위원장은 “전참시는 예능이었지만 언론 전파를 탔기 때문에 (보도와)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MBC는 자체 조사결과를 오늘 내일 안으로, 늦어도 이번 주 안으로 발표한다고 한다. 저희도 처음에는 (시민들의 생각과 비슷하게) MBC 제작진 중에 ‘일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결론은 ‘잘못한 사람이 없다’였다”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조사 내용을 보면) FD는 세월호 장면과 관련해 ‘이런 게 나와도 될까’ 잠깐 고민했다고 한다”며 “조연출도 ‘이런 거 써도 되나’ 고민을 했지만 장면만 따는 것이고 블러 처리를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블러 처리를 미술부에 요구했다. 미술부 직원도 마찬가지로 시키는 대로, 시키니까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그 뒤 시사 과정에서 (MBC PD들은) 논란의 화면이 세월호 보도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며 “결국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것인데 그러나 그 결과 우린(세월호 유족들) 또 죽은 셈”이라고 말했다. 악의적 왜곡이나 폄하 의도가 없었음에도 한 순간의 방송 실수가 유족에게 큰 상처를 줬다.

유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에 나온 기자들 가운데 악의를 가진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기자들은 할 일을 했던 것인데 결과로 우리는 진도에서 (언론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언론 보도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MBC 카메라가 유 위원장을 찍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인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언론 보도의 문제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MBC 카메라가 유 위원장을 찍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유 위원장은 “이번 MBC 예능 프로그램 사태도 기존 시스템에 따라 하던 대로 일했던 것”이라며 “이는 ‘데스크 문제’, ‘정권으로부터의 독립’ 등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기자들과 제작진들이) 본질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이번 일은 변화를 약속한 MBC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이 건에 관련한 MBC 제작진은 공교롭게도 사내에서 평가가 좋은 분들이었다. 함께 공정방송 파업을 하고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고의적 보도 참사로 피해를 받아왔지만 전혀 성격이 다른 사안으로도 피해를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 위원장은 그러면서도 “언론의 관행과 관습으로 인해 잘못한 사람은 사라졌고 언론은 책임 지지 않을 수 있었다”며 “그 사이 (언론에 의해) 사람들은 죽어나가지 않았느냐”며 언론·방송인들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다. 유 위원장은 정상화를 선언한 MBC에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등 ‘세월호 보도 참사’ 진상 조사에 속도를 내줄 것을 요구했다.

토론회 패널로 참여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세월호 보도로 피해를 입힌 사례를 철저하게 파헤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도 엄중해야 한다. 언론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보다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