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국회의원 해외 출장 보도는 말하자면 ‘워밍업’ 같은 것이었다. 물론 잘 알고 있다. 이 말이 부적절하고 외람된 말로 오독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이번 보도가 ‘워밍업’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이제 막 출범한 KBS 탐사보도부가 ‘민첩하고 신속한 형태’로 출고한 첫 번째 기사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중에 무슨 어마어마한 특종을 예고하며 이번 보도가 소소한 것에 불과하다는, 근거 없는 자만을 펼치고픈 사람은 KBS 탐사보도부에 한 명도 없다.

6개월 파업 끝에 KBS 보도본부는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다. 어떤 부분은 달라져서 희망적이고 어떤 부분은 그대로라서 답답하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보도본부 구성원들이 백가쟁명으로 너도나도 견해를 제출하고 있지만 대체로 이견 없이 공유되고 있는 명제가 하나 있다. 탐사 보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자명한 방향성이다.

기존 탐사보도‘팀’이 탐사보도‘부’로 격상됐다. 부장을 포함한 기자 8명이 배치됐다. 사실 8명이면 아직 ‘팀’ 수준으로 보는 게 적절하겠지만, 앞으로 인원을 늘리면 늘렸지 줄일 일은 없을 것이다. ‘부’는 그런 지향을 담은 그릇이다. 다른 언론사 탐사보도팀과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은 수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최소 15명 이상, 아니 20명까지 탐사보도부원이 대폭 증원돼야 하고, 당장 성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일단 기자들을 몽땅 욱여넣고 봐야 한다는 폭력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 대목에선 기자들 의견이 엇갈릴지도 모르겠다.

KBS 탐사보도부는 데드라인(기사 마감시한)이라는 게 없다. 취재하고 싶은 만큼 취재해서 내놓고 싶을 때 내놓으면 된다. 출고 시점은 우리 몫이다. 출고 방식도 그렇다. ‘뉴스9’을 통해서든 50분짜리 다큐멘터리 ‘시사기획 창’을 통해서든 새로 신설될 주간 프로그램을 통해서든 디지털 기사를 통해서든, 아니면 위의 모든 창구를 동시다발적으로 이용하든 그것도 탐사보도부 구성원들의 결정 사항이다.

▲ 이재석 KBS 탐사보도부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 이재석 KBS 탐사보도부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10여 년 전 KBS 탐사보도팀의 이른바 ‘리즈 시절’의 상당 부분을 되살리고 있는 중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당시 KBS 탐사보도팀 성과는 그야말로 눈부셨다. 그것은 ①구성원들의 의지 ②보도국 내부의 충실한 지원 ③대한민국 탐사보도 초창기의 선제적 대응 등 복합 요인이 낳은 결과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①번과 ②번을 재정비하는 중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③번이다. 이제 탐사 보도는 극소수 언론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언론사가 무척이나 많아졌고 ‘탐사 전문’을 표방하는 곳도 생겨났다. 차별화한 탐사 보도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는 분위기가 언론계 전반에 조성되고 있다. 게다가 시민들 뉴스 소비 방식이 디지털과 스마트폰으로 많이 이동했다는 점도 그동안 벌어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이런 환경 변화는 탐사 보도 기자들에게도 몇 가지 고민거리를 안기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 아이템 선정 과정에서 유통 방식까지 하나하나 깊은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KBS 탐사보도부가 아직 또렷한 결론을 내린 건 없다. 정답을 여전히 고민 중이다. 다만 한 가지. ‘데드라인이 없다’는, 어쩌면 행복하고 어쩌면 그래서 더 부담이 가중되는 그런 조건에 기대어 무작정 우리 속도를 늦출 수만은 없다는 것. 여기까지는 구성원들이 대체로 뜻을 모아가는 중인 것 같다.

이번 ‘국회의원 출장 지원 전수 조사’ 보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기사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탐사보도부가 구성되자마자 곧바로 취재가 시작됐고 공공기관 경영정보 사이트 ‘알리오’에 등록된 공공기관 330곳 전체에 ‘국회의원 출장 지원 내역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를 넣었다. 5월 3일 1차 답변 시한까지 답을 보내온 299곳에 대한 통계를 뽑아내 다음날 ‘뉴스9’에서 톱뉴스로 보도했다. 그날은 국회가 자체적으로 해외 출장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날이기도 했다. 시의성을 고려한 보도였다.

요컨대 KBS 탐사보도부는 ‘유연하고 영리한 대응’을 시도해보려는 중이다. 시시각각 온갖 뉴스가 온갖 매체에서 쏟아지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그날의 뉴스를 그날 다 소화하지도 못한 채 다음날을 맞는다. 이런 유통 구조의 변화는 그때그때 시의적 사안에 대해 비교적 신속하고 가벼운 터치의 탐사 보도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요구를 그냥 남의 일인 양 내팽개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반대로 시의성만 좇다가는 이도저도 안 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탐사보도부는 어찌됐건 정치부·경제부와 같은 데일리 취재 부서가 아니다. 긴 호흡과 깊은 안목으로 우리 사회를 ‘천천히’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소란스러운 뉴스의 홍수 속에서 때때로 한 발짝 떨어질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에겐 언제 신속 대응하고 언제 깊은 호흡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한 것인데, 그런 안목을 특정 개인의 독단적 판단이 아닌 탐사보도부원들 모두의 생각이 맞부딪치는 토론으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그게 우리의 일차적 목표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문화로 착근해 KBS 탐사보도부에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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