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청와대 소장 작품들을 시민들에게 공개 전시한다. 그런데 공개 전시 대상 작품이 아닌데도 주목받는 작품이 있다.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그의 독특한 예술관을 배우기 위해 그의 아트센터로 달려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세기의 예술가인 백남준의 작품이 청와대에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청와대의 예술작품이 소개될 때나 가끔 문화예술전문 기자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쓴 기자수첩에 등장하곤 했다.

청와대에 설치된 백남준의 작품은 ‘산조’(散調)라는 작품이다. 산조는 12인치 칼러모니터 83대로 이뤄져 있고, 작품에 전원이 켜지면 전통음악의 형식인 산조가 흐르는 듯 빛을 뽐낸다.

하지만 산조는 청와대에서 불운의 작품이다. 회화나 조각은 설치된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지만 산조는 설치된 장소를 가더라도 감상할 수 없다. 꺼져 있기 때문이다.

산조가 설치돼 있는 장소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일하는 청와대 춘추관. 춘추관 건물 안에서도 눈여겨 보지 않으면 백남준의 작품인지 잘 알 수 없는 곳에 있다. 산조는 춘추관 입구를 지나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벽면에 설치돼 있다. 계단 동선에서 한참 위에 설치돼 있어 벽을 따라 위를 향해 유심히 보지 않으면 백남준의 작품인지 알기 어렵다. 작품의 전원이 꺼져 있기 때문에 검은색 모니터를 한데 모아놓은 느낌이 난다.

지난 3일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소장품 특별전 ‘함께, 보다’를 이달 9일부터 7월 29일까지 청와대 사랑채에서 개최한다”며 청와대가 40년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 중 실물을 통해 16점, 영상을 통해 14점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남준의 산조는 전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벽면에 붙어있는 탓에 전시 장소로 옮기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 백남준의 작품 '산조'. 청와대 춘추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설치돼 있다.
▲ 백남준의 작품 '산조'. 청와대 춘추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설치돼 있다.

이번 전시회로 산조의 작품이 회자되면서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우리가 세기의 예술가 작품을 매일 머리 위로 지나 다닌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산조의 작품은 청와대가 소장한 작품 중에서도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져있다. (2014년 기준 3억원)

산조의 작품은 장소를 옮겨 설치하기 어렵고 전원을 넣지 않으면 시민들이 볼 수 없기 때문에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산조는 1990년 청와대 춘추관이 설립되면서 함께 설치됐다. 삼성전자는 춘추관에 산조 작품을 기증했다. 백남준은 1985년 삼성전자TV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록에 따르면 산조 작품의 전원이 켜진 때는 많지 않았다. 2008년 3월 시험 가동한 일이 있다. 2016년에는 백남준 서거 10주기를 맞아 가동됐다. 당시 육동인 춘추관장은 산조 작품 가동 이유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기조인 문화융성에 부응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17년 작품이 가동되는지 시험하기 위해 전원을 공급한 적이 있다.

지난 2013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산조 작품이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에 “에너지 절약 때문에 2006년 이후 가동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필요할 때 1, 2회 정도 가동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특별한 날이나 작품의 가동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원을 넣고 있지만 앞으로 산조 작품을 ‘방치’해놓으면 영영 빛을 못 볼 수 있다.

백남준 아트센터 관계자는 통화에서 “기업에서 기증한 작품 중 상당수가 하드웨어 수명이 있어 안 켜둔 경우가 많다”며 “아트센터는 저작권과 유지 보수와 관련해서 전권을 위임받지 못했다. 저작권과 관련해선 미국에 있는 유족이 가지고 있다.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컬렉터 기관과 협의해서 운영하는 것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 소유권자는 공공장소 혹은 원하는 곳에 전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