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만 12년이 되는 5월 4일 새벽 4시 (평택미군기지확장) 행정대집행, ‘여명의 황새울 작전’.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고 좌절하게 했고, 그들의 마음을 포크레인 삽날로 군화발로 1만명 경찰의 날선 방패로 하루 종일 위협하고 대추분교에 540명을 토끼몰이해서 걸레짝 들고나오듯 몰아세웠던 그 잔인했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대추리 주민들에게 5월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평택 팽성읍 대추리 이장 신종원씨가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 참석해 한 말이다.   

▲ 평택미군기지 이전확장사업으로 고향을 떠난 대추리 주민들이 3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의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평택미군기지 이전확장사업으로 고향을 떠난 대추리 주민들이 3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의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3일 오전 11시, 햇볕이 쨍하다가 소나기가 쏟아지는 변덕스런 날씨. 청와대 분수대 앞에 ‘대추리 사람들’이 등에 적힌 노란 조끼를 입은 20여 명의 노인들이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눈물을 훔쳐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평택 미군기지확장계획(2004년 발표)에 따라 이주하기를 거부하고 고향을 지키기 위해 4년 동안 싸우다가 2007년 4월 고향을 떠나 임시 주거지에서 2년을 보내고 보상금으로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노와리로 이주한 대추리 주민들이다.

주민들은 당시 정부가 했던 약속 중 지키지 않은 두 가지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첫 번째 정부의 약속은 지금 주민들이 정착한 노와리에 “대추리”라는 행정명칭을 부여하겠다고 한 것이다.

신종원씨는 "노무현 정권의 비서실장이던 그분(문재인 대통령)이 이 뒤(청와대)의 주인으로 계신다. 이 사회가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가 되고 있는 것 같다"며  "나는 문재인 정권에서 대추리 주민들과의 모든 약속들이 성실히 이행되고, 대추리를 방문해서 주민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이 정권이 해야 할 첫 단추가 아닐까라는 바램을 했지만 착각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어떤 사람 하나 책임지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평택미군기지 이전확장사업으로 고향을 떠난 대추리 주민들은 현재 살고 있는 노와이주단지의 행정명을 '대추리'로 쓸 수 있게 한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평택미군기지 이전확장사업으로 고향을 떠난 대추리 주민들은 현재 살고 있는 노와이주단지의 행정명을 '대추리'로 쓸 수 있게 한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과거 150여 세대였던 ‘대추리’는 미군기지 확장예정지로 발표된 후 토지수용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이사한 주민들을 뺀 최종 44가구가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노와리로 집단이주해 현재 이 단지는 ‘대추리 평화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다. 

2007년 2월 13일 정부대표(국무조정실 주한미군대책기획단, 국방부, 평택시)와 주민대표(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의 합의서에는 마지막 남은 44세대 주민들의 공동체가 유지되어야 하며 집단이주단지의 지명을 대추리로 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평택시는 미군기지 확장지가 된 곳의 ‘대추리’ 행정명을 없애는 조례 개정은 했지만, 노와이주단지의 행정명을 ‘대추리’로 하는 조례 개정은 하지 않았다.

대추리 주민들은 이주민들의 생계대책도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부는 2004년 평택특별법을 제정해 이주자의 이주대책 및 생활대책으로 택지 공급, 상업용지 또는 근린생활시설의 설치를 위한 용지의 공급, 임대주택의 공급을 수립, 시행할 수 있게 했다. 2007년 2월 13일 정부-주민간 합의서 2항에는 생계유지대책 관련 사항으로 “7) 평택지원특별법상 상업용지는 8평을 공급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평생 농사를 지어왔던 대추리 주민들은 이주 후 농사 수입이 없어졌고 고덕국제화지구의 상업용지공급을 공동의 경제활동 방안으로 생각하고 10년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LH는 상업용지가 아닌 다른 부지를 교묘하게 섞어 공급하려 했고, 이주민들이 이에 항의하자 국방부와 한국토지공사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해결은커녕 이주민들 사이에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주민들은 정권과 담당자가 바뀌었다고 국책사업의 피해자인 주민과의 약속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누가 국가를 믿겠느냐며 대추리 행정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줄 것과 생계대책 제공을 성실하게 이행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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