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미래발전위원회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이 공개됐다. 이 위원회는 “방송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방송이 본연의 사회적 기능과 민주적 여론형성 기능을 수행하도록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난해 10월에 구성한 기구다. 공개된 내용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것은 “정당별 정치적 후견주의 행사를 통제하기 위해 가칭 ‘중립지대’ 이사로 이사 총 정원의 1/3 이상을 임명한다”는 것이다. ‘중립지대 이사’의 의미에 대해 방송미래발전위는 “정당별 추천이 아닌 정당 간 합의적 추천 또는 임명의 원칙에 따라,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전문적 식견을 갖춘 인사로 구성된 일단의 이사진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방송미래발전위는 공영방송 이사의 추천권을 방통위가 가질지, 국회가 가질지에 대해서는 단일안을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중립지대 이사’의 구성도 이사 추천권이 방통위와 국회 중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방식이 다르긴 하다. 방통위에 최종 추천 또는 임명권이 있을 때는 국회가 학술·직능·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로부터 정원 이상의 후보를 추천받은 뒤 합의해서 중립지대 이사진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회에 최종 추천권이 있을 때는 반대로 방통위가 협의체로부터 후보를 추천받는다. 추가적으로 국회 또는 방통위는 추천된 중립지대 이사에 대해 제한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도 뒀다.

▲ 지난해 10월19일 방송미래발전위원회 첫 회의가 과천정부청사에서 열렸다. 사진=방통위 제공.
▲ 지난해 10월19일 방송미래발전위원회 첫 회의가 과천정부청사에서 열렸다. 사진=방통위 제공.
방송미래발전위의 구상은 그럴듯하나 실제 내용은 그 구상을 실현시키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 일단 ‘중립지대 이사 1/3 이상’으로 ‘정당별 정치적 후견주의 행사’가 통제될 수 있을지는 미심쩍다. 무엇보다 국회가 최종 추천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배제하지 않았고, 방통위가 최종추천권을 행사할 때 ‘중립지대 이사’를 ‘정당 간 합의’로 선정하도록 한 것도 정치적 후견주의 통제로 보기는 힘들다. 다만 정치권이 공영방송을 권력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이들의 영향을 일정 정도 배제하고자 하는 취지 자체는 충분히 존중할 만하다.

방송미래발전위의 ‘허무한 정책제안’

그런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방송미래발전위의 정책제안이 총 18인의 각계 전문가들이 고민을 모아 숙의한 결과임에도 내용과 관계없이 별다른 기대를 하기 힘든 ‘허무한 정책제안’이라는 생각 또한 떨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방송미래발전위원회의 정책제안을 토대로 ‘방송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허무하다. 지금의 국회가 과연 방통위의 제안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방통위가 2000년 방개위 수준의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해도 20대 국회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심쩍다. 하물며 이번 방송미래발전위원회는 방통위의 일방적인 계획에 따라 구성됐고, 사회적 합의는커녕 논의 수준도 밀실에 머물렀다.

수년간 국회 특히 방송 관련 상임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결과 중요한 사안일수록 국회에 맡겨서는 죽도 밥도 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적어도 방송법에 관한 한 지금의 국회는 아무런 해결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남은 기간 동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침 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방송법 처리를 요구하며 ‘국회 보이콧’에 나섰다. 방송법을 둘러싼 국회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숱하게 봐온 풍경이다. 다만 여야가 바뀌었을 뿐이다.

여야가 공수를 교대해가며 공방을 거듭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권한이 정치권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권한은 ‘여당’에 쏠려 있지만, 권한을 나누자는 야당도 내놓지 않으려는 여당도 모두 공영방송을 정치권의 전유물로 취급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국회에 방통위가 방송미래발전위원회의 방안을 아무리 정성껏 다듬어 제안한다 해도 그 즉시 ‘정쟁거리’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99%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적 근거도 없는 ‘오래된 관행’

아예 국회를 논의에서조차 배제시키고도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봤다. 현행 방송법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즉 KBS 이사 선임 방식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부분은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방송법 제46조 제3항)는 단 한 줄 뿐이다.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보자. 먼저 이사 임기가 종료될 무렵 방통위는 차기 이사 공모 절차에 돌입한다. 동시에 여야는 각각 7명과 4명의 KBS 이사 후보를 선발해 방통위에 명단을 넘긴다. 방통위는 그 후보들에게 법적인 결격사유가 있는지만 살펴보고 전체회의에 올린다. 상임위원들은 비공식 티타임을 통해 그 명단을 공유한다. 그리고 전체회의에서 명단의 당사자에게 투표하는 방식으로 11명의 이사 후보자를 정하면, 최종 절차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방통위가 11명을 정해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 외에는 모두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지는 ‘오래된 관행’이다. 관행에 따라 방통위는 법에서 보장한 이사 추천권한을 아무 근거 없이 여야 정당에 이양했다. 일부 정당이 일부 권한을 KBS 내부 구성원을 포함한 시민사회와 공유하고 있지만 이 역시 법적인 근거는 전혀 없고 3년마다 방식이 달라진다.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방송법시행규칙’으로 정해야

그래서 방통위에게 ‘방송법 개정을 통한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은 그냥 국회에 맡기고, 방통위는 자신들의 권한 내에서 근거를 만드는 작업에 나서길 권해본다. 방송법에서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라고 한 부분의 근거를 ‘방송법 시행을 위한 방송통신위원회 규칙’(이하 ‘방송법시행규칙’)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다. 보통 ‘방송법시행규칙’은 방송법과 방송법 시행령에서 위임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상위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시행을 위해 규칙으로 만든 경우가 있다. 가령 방송법 제45조 제2항에서 ‘KBS가 정관을 변경할 때는 방통위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만 정할 뿐 아무런 하위법 위임규정이 없음에도 ‘방송법시행규칙’ 제12조에서 정관변경을 의결한 KBS이사회 회의록을 첨부할 것 등의 구체적인 절차를 정한 것이라든지, 방송법 제65조에서 KBS 수신료에 대해 “이사회가 심의·의결한 후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얻어 확정”한다고만 되어 있는 것을 ‘방송법시행규칙’ 제13조에서 KBS가 방통위에 제출할 서류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방통위가 60일 이내에 국회에 의견을 내도록 정하고 있다. 이처럼 방송법 자체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거나 하위법에 위임하지 않았더라도 KBS 이사 추천 과정에서 ‘각 분야의 대표성을 어떻게 고려할지’에 대해 규칙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사실 방송법에서 KBS 이사 추천에 대해 규정한 부분은 입법 미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각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에 대해서조차도 “각계의 시청자를 대표할 수 있는 자 중에서 방송통신위원회규칙이 정하는 단체의 추천을 받아 시청자위원회의 위원을 위촉한다”고 해두었다. 방송평가위원회, 시청자권익보호위원회, 미디어다양성위원회 등 다양한 법정위원회의 구체적인 구성,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도 규칙으로 정하게 했다. 유독 공영방송 이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누락해 여야 7:4 또는 6:3 나눠 먹기 식의 ‘오래된 관행’을 방치했다.

현재 상황에서 국회가 방송법을 제대로 개정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는 8월이면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가 이뤄진다. 이번에도 ‘오래된 관행’에 따라 구성할 것인가. 방송미래발전위원회가 기왕에 ‘정당별 정치적 후견주의 행사를 통제’하기로 방향을 정한 만큼 여야의 개입을 배제하고 ‘각 분야의 대표성을 어떻게 고려할지’에 대해 ‘방송법시행규칙’으로 안을 만들어보자. 이를 위해 방송미래발전위원회의 논의를 개방하고, 수시로 공청회, 간담회, 토론회 장을 마련하는 등 다방면으로 의견수렴에 나서길 바래본다. 멈춰선 국회에 기대 방송미래발전위로 알리바이를 만들려들지 말고, 방통위가 스스로 길을 개척하라.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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