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가 조선일보고 ○ 사장이 방상훈 사장이라고 처음 공개적으로 거론한 사람은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 KBS가 2009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탤런트 장자연씨가 남긴 편지를 확보하고 언론계 유력 인사와 기획사 대표, 드라마 PD 등 10여명의 접대 대상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장씨 유족들이 신문사 유력 인사 등을 성매매 특별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뒤에도 대부분의 언론이 감히 그 신문사의 이름을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이종걸 의원의 국회 발언은 면책 특권으로 보호받는다. 다만 이 의원의 발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경우 이를 보도한 언론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이 조선일보라는 실명을 쓸 수 있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일보가 이 의원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스스로 밝힌 다음부터였다. 의혹의 존재를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의혹을 거론하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조선일보의 힘은 막강했다.

실제로 조선일보는 이종걸 의원과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각각 10억 원씩을 비롯해 KBS와 MBC, 미디어오늘 등에 모두 68억 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미국 뉴욕대 언론학과 교수 클레이 셔키의 정보의 폭포 이론에 따르면 장자연 사건은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에서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를 지나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언론만 침묵하는 상황이었다.

▲ 고(故) 장자연씨 영정이 그의 발인인 지난 2009년 3월9일 오전 성남시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고(故) 장자연씨 영정이 그의 발인인 지난 2009년 3월9일 오전 성남시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년 뒤인 2011년 3월 SBS는 장자연씨의 편지로 추정되는 문건 40여 건을 분석한 결과, 장씨가 회사 3층 접견실을 시작으로 호텔 룸 살롱, 접대용 아파트, 삼성동과 청담동 등 호텔 룸에서 술 접대 또는 성접대를 했다고 보도했다. 일간지 대표 2명과 기획사 대표 6명, 대기업 대표 등 간부 4명, 금융업계 간부 2명, 드라마 외주제작사 PD 7명, 영화 등 감독 8명 등이 장자연 리스트에 올라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은 SBS 등 언론에 보도된 장씨의 편지에 대해 “망상장애 등 정신질환 의심이 있는 전아무개씨가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보고 고인의 필체를 흉내내 작성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재수사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냈다. SBS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를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서 오보의 책임을 물어 보도국장과 사회부장을 해임하고 사과 방송까지 내보냈다.

경찰은 허위로 판명된 편지와 무관하게 장자연씨가 직접 쓰고 지장까지 찍은 진짜 편지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2009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장씨가 조선일보 사주 일가 ㅂ씨를 만났다는 참고인 진술을 확보했으면서도 ㅂ씨를 소환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검찰은 소속사 대표를 폭행과 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했을 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을 비롯해 드라마 PD 등은 모두 내사 중지 또는 내사 종결했다.

조선일보와 검찰이 입을 맞춘 정황도 있다. 조선일보는 2011년 3월, “장자연씨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가 평소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부른 게 오해를 불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스포츠조선 사장 A씨는 미디어오늘 등과 인터뷰에서 “문제의 식사 자리는 방상훈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 주재한 자리”였다면서 “37년 조선일보에 충성한 대가가 치명적인 인격 살인이었다”고 반발했다.

방상훈이든 방용훈이든 자신들의 혐의를 불식시키기 위해 엉뚱한 계열사 사장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관측이 나돌았지만 검찰은 “김종승은 피의자(방상훈)과 모르는 사이고 조선일보 사장은 스포츠조선 전 사장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정작 스포츠조선 전 사장 A씨는 아예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이 A씨가 문제의 조선일보 사장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거나 아예 수사할 의지가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당시 조선일보 내부에서 “상층에서 기사 제목이 내려왔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조선일보에서 퇴사한 전직 기자 B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내부에서도 방상훈 사장은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된 것이)아니라는 공감대가 있지만 방용훈 사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방상훈 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다가 최근 조용해 진 것도 방용훈 사장과 무관하다 보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조선일보가 국회의원과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소송은 대부분 패소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제기한 소송에 증인 출석 요구를 계속 묵살하다가 2013년 2월에서야 “허위 사실로 인해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은 이상, 진실 규명이라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됐다고 판단한다”면서 남은 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진실이 드러나는 걸 누가 왜 두려워했는지는 정황상 명확하다.

9년이 다 되도록 미궁에 빠져 있는 장자연 사건은 아직 한국 사회가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처벌 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가 꺼졌고 목숨을 내던지며 폭로했던 추악한 연예계 스캔들은 여전히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동종 업계의 범죄를 감싸고 권력 앞에 침묵한다면 언론 역시 장자연 사건의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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