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간부가 제3자 명의를 동원해 민원을 넣는 방식으로 ‘청부심의’를 한 사실이 적발돼 해임된 가운데 이를 지시한 인사가 권혁부 전 심의위 부위원장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미디어오늘은 청부심의로 해임된 김아무개 전 팀장과 권혁부 전 부위원장 간 통화 녹취가 포함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감사자료’를 입수했다. 지난달 이뤄진 통화 내용을 담은 해당 녹취에는 김 전 팀장이 권혁부 부위원장에게 과거 청부심의를 지시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여러차례 했고 권혁부 전 부위원장이 이를 긍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동안 권혁부 전 부위원장은 청부심의 의혹을 일절 부인해왔다.

앞서 지난달 1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처는 업무감사 결과 김아무개 전 팀장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정부 비판 보도를 포함한 46건의 방송 관련 민원을 제3자 명의를 통해 대리 작성했다고 발표했다.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청부민원’이 주민등록법 위반, 업무방해, 문서위조 등의 소지가 있다며 청부민원을 담당한 김 전 팀장을 해임하고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당시 청부민원을 지시한 인사로 권혁부 전 부위원장이 거론됐으나 그는 언론을 통해 부인해왔다. 그러나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감사 과정에서 권혁부 전 부위원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이 나왔고, 근거로 녹취파일이 제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녹취는 김 전 팀장이 대기발령 상태에서 감사가 진행 중이었던 지난달 중순께 이뤄졌다. 녹취록에는 김 전 팀장이 과거 권혁부 전 부위원장이 자신에게 청부심의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되묻고 권혁부 전 부위원장이 긍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전 팀장이 청부심의에 대해 재차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이 19일 방송회관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이 19일 방송회관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김 전 팀장이 “부위원장님께서 저한테 지시를 하셔서 민원을 제가 넣고 심의를 했다”고 하자 권혁부 전 부위원장은 “아이! 견제를 했지”라고 답했다. 또한 김 전 팀장이 “문제 있는 방송 있으면 옛날처럼 저한테 언제든지 전화하시든가 뭐 문자보내시든가하면”이라고 하자 권혁부 전 위원장은 “응”이라고 답했다.

또한 김 전 팀장이 “예전에는 부위원장님께서 저한테 얘기하셔가지고 유성기업이나 송두율이나 다이빙벨이나 CBS 김미화 이런 거 제가 민원을 넣고”라고 말하자 권 전 부위원장은 “어어”라며 긍정했다.

이어 김 전 팀장이 “부위원장님께서 저한테 지시하셔서 제가 몰래 민원 넣고 그랬는데”, “예전처럼 저한테 몇월 며칠자 무슨 프로그램 이거 문제 심각하니까 민원 넣어서 심의 한번 해봐라 라고 말씀하시면 제가 하면 되니깐요”, “제가 친인척 이름으로 민원 넣어가지고”라고 말하는 동안 권혁부 전 부위원장은 관련 발언을 부정하지 않았다. 

권혁부 전 부위원장은 “내가 뭐 직접 서류를 만들어서 홈페이지에 넣을 수도 있는 거니까”라고 말하는가 하면 “(문제가 있는) 그런 프로가 있으면 나한테 귀띔만 해줘”라고 말했다. 김 전 팀장이 “(민원을) 부위원장님 성함으로 넣으면 조금 그렇죠”라고 지적하자 “아니 내 이름으로 넣겠어?”, “또 시키지 누구 응!”이라고 말했다. 과거 청부민원을 지시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민원을 제기하겠다는 맥락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통화 녹취에는 방통심의위의 감사 결과 발표에는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청부 민원 사례도 언급됐다. 2011년 방통심의위는 유성기업 파업 사태를 다루면서 노조의 입장을 반영한 KBS·MBC 라디오 프로그램을 심의해 제재했고, 2012년 CBS ‘김미화의 여러분’의 경우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여러차례 제재했다. 2014년 JTBC ‘뉴스9’의 다이빙벨 보도 역시 제재를 받았다.

이는 당시 정부여당으로부터 추천받아 임명된 권혁부 전 부위원장이 ‘정부여당’ 입맛에 맡게 정부비판적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를 강행했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와 관련 JTBC의 다이빙벨 보도 당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수석비서관 회의록에는 “다이빙벨 좌파책동 대응”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기도 했다. 

▲ JTBC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 JTBC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권혁부 전 부위원장은 직접 모니터 시민단체를 만드는 방식의 대응방안도 언급했다. 그는 “나한테 한번 주면 내가 모니터 방송감시 뭐 시민운동본부니 뭐 이런 걸 하나 만들어서 내가 나설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이처럼 권혁부 전 부위원장이 ‘청부심의’를 실토하는 내용은 지난해 JTBC가 입수해 보도한 ‘청와대 문건’과도 일치한다.

청와대 문건은 청와대가 방통심의위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간부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국정원에서 제보가 왔는데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편법으로 게시판에 사람을 동원해 글을 쓰도록 하기도 한다”, “이런 역할을 내가 한다”고 밝힌 고위 간부가 등장한다. 미디어오늘이 문건을 확인한 결과 이 발언을 한 간부 역시 권혁부 전 부위원장으로 기록돼 있다.

녹취에는 상식을 벗어난 극단적인 발언도 있다. 권혁부 전 부위원장은 최근 방송에 나온 내용을 언급하면서 “정해구 국민 저 헌법자문위원회 그 새끼들 빨갱이들이 모여서 하는 거 아니냐. 지금 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혁부 전 부위원장은 박정희 정부 당시 여당인 민주공화당 사무처 직원 출신으로 KBS에 특채된 인사로, 이명박 정부 때 KBS 이사로 재직하고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에 올랐다. 복수의 방통심의위 관계자에 따르면 퇴임 이후에도 방통심의위에 연락을 해 심의와 관련한 문제제기를 하거나 지시했다.

녹취 내용과 관련해 권혁부 전 부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그런 지시를 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녹취 내용을 설명하자 그는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고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과거 청와대 문건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는 지적에 권 전 부위원장은 “청와대 문건이 뭔지 모르고 심의를 부당하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위원장에게 ‘빨갱이’라고 말한 데 대해서는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전 팀장은 미디어오늘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