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유력 대권주자도 서울시장 후보도 한순간에 ‘훅’ 갔다. 한 사람은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다른 한 사람은 사법처리를 눈앞에 두고있어 정치판에 남아도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다.

어렵게 사면 복권된 정봉주 전 의원은 성추행 의혹에 대한 ‘거짓 해명’을 시인하고 서울시장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구속은 면했지만 성폭행 의혹으로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한때 ‘3선 도지사 불출마’를 호기롭게 선언하며 ‘큰 그림’을 그린다며 지지자들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큰 꿈은 안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대 변화를 가볍게 생각했거나 공직자의 사회적 가치기준, 윤리의식의 변화를 부정하다 역풍을 맞았다. 그동안 억눌리고 참아왔던 성차별과 성적 모욕이 ‘미투운동’으로 나타나며 상대가 누구든, 어떤 지위에 있든 사회적·법적·정치적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사장 자질 시비에서부터 성희롱 트윗 내용과 불륜 의혹으로 YTN 파업 사태의 핵심인물인 최남수 사장에게 던지는 이들의 교훈이 무겁게 다가온다. 최 사장이 계속 버티기를 시도하든, 이들처럼 사건이 극대화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게될지는 여전히 본인이 선택할 문제다.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 되느냐는 바로 안희정·정봉주가 답을 하고 있다.

▲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3월9일 오후 5시경 서울 서부지검에 출두했다. 사진=김현정 PD
▲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3월9일 오후 5시경 서울 서부지검에 출두했다. 사진=김현정 PD
먼저 성희롱·성추행·성폭행 등 여성에 대해 차별적 성의식을 갖고 이를 표현하거나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공직자나 사회적 지도자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 변화는 비뚤어진 성의식에 대해 정색을 하며 문제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인이든 고위공직자든 ‘허리 아래는 문제삼지 않는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언론계에 있었다.

그러나 현직검사가 방송에 나와 자신의 법익을 지킬 수 없음을 하소연하고 도지사 비서가 생방송에 나와 성폭행 사실을 고백하는 현실은 더 이상 성폭력자를 용납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최 사장은 이미 문제화된 ‘간호사, 여성앵커 등에 대한 성희롱’ 발언에 대해 당사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는 항의를 받고 있고, 심지어 그런 성의식으로 사내 유사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불륜’ 논란도 신뢰를 중시하는 방송사 사장의 자격에 치명적 결함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변명과 합리화는 더 큰 화를 부른다는 교훈도 남겼다.

안희정은 잘못했다고 사과하면서도 ‘위계에 의한 성폭행’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사자는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데 정작 당사자에게는 사과하지않고 대중을 향해 ‘용서해달라’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정봉주도 논란이 커졌을 때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보다 ‘정치적 음해’로 규정하고 부인으로 일관하며 서울시장 후보 출마까지 선언했다. 한 치앞을 보지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화를 키웠다.

최 사장에 대한 자질시비와 구성원들의 거부 이유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구치소에 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찬양이나 노조와 합의한 내용에 대한 일방적 파기 논란 등은 이미 스스로 리더십을 훼손했고 이는 되돌리기 힘든 상황이 됐다.

최 사장의 입장에서는 YTN 이사회를 통해 정식으로 사장에 임명됐고 법적 절차나 문제가 없는데 ‘물러나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자격시비에 대해서도 나름 해명했기 때문에 물러날 이유가 없다고 부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장으로 더 버틸 수는 있지만 구성원들의 배척을 받고,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는 YTN 만 더 멍들어 갈 뿐이다. 민영 방송사라면 훨씬 전에 어떻게든 해결됐을 것이다. 주인이 없는 공영적 방송사이기 때문에 무책임한 이사들이 무책임한 인사를 임명해놓은 결과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뒤늦게 ‘중재하겠다’고 나섰는데, 요령부득이다.

▲ ‘최남수 사장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선 YTN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월8일 최남수 YTN 사장과 대치하고 있다. YTN 노조는 이후 파업에 돌입했고 파업은 55일째 계속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최남수 사장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선 YTN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월8일 최남수 YTN 사장과 대치하고 있다. YTN 노조는 이후 파업에 돌입했고 파업은 55일째 계속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공영적 방송의 장기간 파업사태에 대해 원인을 파악하고 그 핵심인물이나 조직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방통위는 존재해도 존재감이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스스로 위상을 정립하지못하는 조직에게는 권한을 줘도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식이다.

YTN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시청자들이다. 24시간 뉴스전문채널이면서 국가의 주파수를 허가받은 방송사가 9년여간 파업 등으로 낙제점이하의 방송을 해도 허가가 반복되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조직에게 계속 방송을 맡기는 방통위의 직무유기와 무책임한 대응은 추후에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사장 선임권은 YTN 이사회에 있지만 그 임명된 사장으로 인한 방송파행과 부실하거나 불공정한 방송서비스에 대한 감독과 규제권한, 방송허가, 재허가 취소 등 전권한은 방통위에 있다. 무책임한 이사회의 무책임한 사장 선임, 무심한 방통위의 ‘무능 삼박자’가 합쳐져야 이렇게 장기간 소모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방통위의 행정조치와는 별개로 최 사장은 시대의 변화와 안, 정 두 선배의 값비싼 교훈을 무겁게 받아들여 물러나기를 권고한다. 그것이 신뢰를 잃어버린 YTN과 그 구성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답하는 길이며 시청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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