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70년을 앞두고 4·3에 대한 최초 기록인 ‘순이삼촌’을 쓴 작가 현기영씨가 성폭력 의혹을 받고 있는 시인 고은씨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씨는 지난 2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무슨 성폭행을 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라며 “술 마시면 나오는 고약한 습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데 그렇게 매도하고 늘그막에 완전히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현씨를 만나 ‘순이삼촌’ 저자로서 4·3을 기록한 군부독재 시절 당시 분위기, 제주 4·3의 의미 등에 대해 들었다. 현씨는 1978년 ‘창작과비평’에 중편소설 ‘순이삼촌’을 발표해 4·3을 세상에 처음 알린 ‘4·3 작가’로 통한다. 그는 ‘순이삼촌’ 소설집이 나온 1979년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한 달 간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1980년 종로경찰서에 끌려가 일주일 간 취조 받기도 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해당 책을 금서로 지정했고, 10년간 판매금지 됐다.

▲ 현기영 '순이삼촌' 영문판
▲ 현기영 '순이삼촌' 영문판

이 신문은 “인터뷰 말미, ‘미투 운동’의 여파로 전국을 강타한 고은 시인의 성추문에 대해 원로작가의 입장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며 현씨의 발언을 옮겼다.

경향신문은 “고은 시인의 술자리 기행을 목격하신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에 현씨는 “그분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서 여럿이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한 적은 있어도 취하도록 같이 마셔본 적은 없었어요. 그분의 술자리 행동에 대해 좀 듣기는 했는데 좀 별종이다, 기행이다, 이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최영미 시인이 이야기하는 그런 정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어요.”라고 답했다.

고씨에 대한 구체적인 성추행 증언이 나온 바 있고, 고씨의 업적을 재조명할 목적으로 세워진 고은 재단은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고, 각종 지자체는 고은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고씨 작품이 중·고교 교과서에서 빼겠다는 출판사도 나왔다.

이에 현씨는 “너무 가혹한 것 같아요.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라며 “무슨 성폭행을 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이어 그의 문학성과 ‘술자리 기행’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씨는 “이 양반은 (문학적으로) 천재성을 갖고 있다고 봐요. 모든 시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언어로 우리의 감수성과 감정생활을 풍부하게 해주는 게 있어요. 그분의 기행은 비난받아야 하지만 문학인으로서 범상치 않은 좋은 시들까지, 민주화운동의 업적까지 파내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현씨의 발언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는 성폭력 가해사실을 축소한 것이다. 현씨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성추행에 대해 “술자리 행동이 좀 별종이다, 기행이다”, “술 마시면 나오는 고약한 습관이라고 볼 수 있다” 등으로 표현했다. 이어 “성폭행을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2차 가해 성격이 있는 발언을 했다. 성추행은 ‘형법’이나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죄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 범죄로 ‘기행’이나 ‘술버릇’과는 다르다.

▲ 순이삼촌 작가 현기영씨의 경향신문 인터뷰에 대한 트위터 반응
▲ 순이삼촌 작가 현기영씨의 경향신문 인터뷰에 대한 트위터 반응

또한 현씨는 고씨의 문학성을 높이 평가하며 현재 분위기가 “가혹하다”고 비판했다. 가해·범죄 사실 등을 논의하는 공간에서 가해자의 긍정적인 업적을 언급하는 것은 가해자를 옹호하는 전형적인 논리다. 한 누리꾼은 트위터에 “경향신문 인터뷰 앞부분에 이 작가가 겪었을 고통과 4·3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며 되게 마음이 아팠는데 이런 구절을 보면 피가 식는다”고 썼다. 해당 누리꾼이 지적한 구절은 현씨가 “무슨 성폭행을 한 것은 아니지 않아요? 이 양반(고은)은 (문학적으로) 천재성을 갖고 있다고 봐요”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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