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KA’는 지난해 신입직원 공채만 6번 이상 열었다. 두 달에 한 번 꼴이다. 매 채용인원은 ‘00명’이었다. 가상으로 30명을 잡아도 총 180명이다. 전체 직원 수 800여 명(2017년 기준)에 비춰 20%에 달하는 이례적인 수다.

잦은 채용은 그 전 해에도 반복됐다. KA는 2016년엔 1·3·4·7·9·12월에 ‘00명’ 규모로 직원을 뽑았다. 내부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보통 30~50명을 채용하지만 총 인원은 거의 늘지 않았다. 12번에 걸쳐 뽑힌 수백 명의 직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 전직 직원 Z씨는 이에 대해 “이 곳은 한 달도 안돼 신입직원 3분의 2가 그만두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사람을 탈진시킬 정도로 과한” 노동강도였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한 Z씨는 일하는 동안 부정출혈(하혈), 수면장애, 피부병을 얻었다. 의사는 Z씨에게 “너무 무리하면 호르몬 변화가 온다”며 휴식을 권했다. Z씨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Z씨는 하루 17시간 근무하기 일쑤였고 두세 시간만 자고 새벽 출근을 한 적도 잦았다. 하루 종일 걸어다니고 비행기 이·착륙에 신경이 곤두서있어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식사도 거를 만큼 근무 중 쉬지 못했다.

▲ 2014년 6월25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여행객이 아시아나항공 창구를 방문해 항공권을 구입하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연합뉴스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여행객이 아시아나항공 창구를 방문해 항공권을 구입하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Z씨 직업은 ‘항공사 지상직’이었다. 지상직은 항공사의 공항 여객서비스 및 수속업무를 담당한다. 항공사 카운터에서 티켓발권을 하는 직원, 게이트에서 탑승을 돕는 직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들은 승무원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지만 승무원은 아니다. 승무원은 항공사 소속이고 지상직은 대부분 자회사·계열사에 소속된 ‘하청노동자’다. Z씨는 아시아나항공의 일을 했다. KA는 아시아나항공 및 아시아나항공과 계약한 외국항공사들의 지상서비스를 전담하는 업체다.

“그제 14시간, 어제 18시간, 오늘 17시간 노동이 가능한 곳”

가장 힘들었던 문제는 노동시간이다.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지상직은 3일 일하고 하루 쉬는 주기를 반복한다. Z씨는 이 3일 동안 총 50시간 일하고 5시간 잠을 잔 적이 있다. 회사가 비행기 편수나 이·착륙 시간이 변동될 때, 새벽이나 오전조의 퇴근을 한없이 늦출 수 있기에 가능하다.

가령 “1일 14시간 일하고 2시간 취침, 2일 18시간 일하고 3시간 취침, 3일 17시간 일하고 귀가”한 경우다. Z씨는 1일 오전 9시에 출근했다. 일정표에 담당 비행기가 계속 추가됐고 Z씨는 예정 퇴근시간을 넘긴 밤 11시에야 퇴근했다. 2일 새벽출근 일정이 변하지 않아, Z씨는 회사 숙소에서 2시간 가량 잠을 잔 뒤 새벽 3시30분 경 숙소를 나섰다. 2일은 새벽 4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일했다. 퇴근 전 비행기 착륙이 오래 지연돼 대기지시가 내려왔고 이후에도 회사가 추가 업무를 시켰기 때문이다. 3일도 유사한 패턴으로 새벽 4시 경 출근해 밤 9시까지 일했다.

▲ Z씨 업무노트 기록에 따라 계산한 실제 노동시간. 하루 평균 12시간40분을 일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Z씨 업무노트 기록에 따라 계산한 실제 노동시간. 하루 평균 12시간40분을 일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하루 17~18시간 일하는 ‘올데이근무’는 한 달에 3~5번씩 꾸준히 있다. Z씨의 지난해 ○월 업무노트를 보면 그는 5일에 17시간10분, 13일엔 17시간, 24일엔 16시간20분 동안 일했다. 보통 기록된 출근시간보다 30분 일찍 가고 퇴근시간보다 30분 늦게 나가므로, 1시간씩 더해야 실제 노동시간이 나온다.

연장근로가 없었던 날은 전체 20일 중 5일 밖에 없다. Z씨는 ○월 총 234시간을 일했다. 이중 야간근로시간은 21시간, 연장근로시간은 54시간이다. 하루 평균 11시간40분 동안 일했다. 실제 출·퇴근 시간을 반영하면 12시간40분이다.

수면시간이 3시간 이하였던 날은 8일이다. 22일엔 새벽 1시30분에 잠들어 1시간만 자고 출근했고 16일엔 1시간30분을 잤다. 대부분 새벽 1~2시에 잠들어 2~4시 경에 출근하는 식이다. Z씨는 “이런 날이 누적되니 출근이 너무 힘겹고 근무 중에도 피곤기가 몰려온다”고 말했다.

▲ Z씨의 2017년 ○월 취침시간표. 취침시간이 4시간 미만이었던 날이 8일이나 된다.
▲ Z씨의 2017년 ○월 취침시간표. 취침시간이 4시간 미만이었던 날이 8일이나 된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보이지 않는 노동’ 많아… 생리불순도 자주 겪어

지상직들은 ‘짭’이란 용어를 쓴다. 입국한 항공기는 보통 기름·기내식 등을 즉시 채운 뒤 다시 출국한다. 짭은 이 착륙과 이륙 사이를 말하는 은어다. 지상직이 한 짭을 끝내는 데엔 2~3시간이 걸린다. 이들은 그 동안 앉을 새 없이 일한다.

“승객들은 게이트 앞에 서 있는 지상직만 보지만 보이는게 다가 아니예요.” 승객이 다 내리면 비행기 청소·급유 등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하고 분실수하물을 확인한다. 계류장(비행기가 정차되는 영역)에 가 감독관에게 서류를 받고, 기타 서류도 작성해 관련 부서에 제출한다. 틈틈이 승무원들의 지시가 내려온다. 최소한 출발시간 1시간 전까진 게이트에서 대기해야 하므로 이들은 항상 걸음을 서두른다. 승객들의 티켓을 확인해 태우고 비행기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면 한 짭이 끝난다. 바로 다음 짭을 뛰러 간다. 보통 4~7개 짭을 연속으로 한다.

이 때문에 걸어가면서 혹은 카운터 뒤에 쭈그려 앉아 밥을 먹을 때도 많다. Z씨는 공항 내 ㅂ떡집의 떡이나 ㅍ빵집의 빵을 애용했다. 간혹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때울 때도 있었다. 식사를 못하는 처지를 이해하는 지상직들은 서로를 숨겨주기도 한다. 게이트 카운터 뒤에 쭈그리고 앉아서 먹으면 승객과 관리자의 눈을 피할 수 있다.

Z씨는 “무릎 관절이 안좋은 사람, 다리가 자주 저린 사람이나 생리불순을 겪는 동료를 종종 본다”고 말했다.

2시간 밖에 못 자도 화장·올림머리·다림질은 필수

하체 관절에 무리가 가도 이들은 운동화를 신지 못한다. 복장 규정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이다. 화장·구두 착용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이들은 커피색 스타킹을 1년 내내 신어야 한다. 손톱이 조금 길면 매니큐어를 발라야 하고 채도가 아주 엷은 색깔로 제한된다. 여성 지상직은 바지 유니폼이 없어 치마를 입을 수밖에 없다.

▲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 내 '공항 서비스직' 유니폼 사진. 하청업체 직원들도 동일한 유니폼을 입는다.
▲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 내 '공항 서비스직' 유니폼 사진. 하청업체 직원들도 동일한 유니폼을 입는다.

엄격한 규정은 이들의 휴식시간을 잡아먹는 요소다. 출근 시 화장과 외모 관리에 시간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승무원 머리’도 의무 규정이다. 머리카락을 이마 뒤로 모두 넘기고 ‘머리망’으로 뒷 머리카락을 감싸는 머리모양이다. 신입직원일 땐 스프레이도 뿌린다. 스카프도 구김이 없게 자주 다려야 할 물건이다.

Z씨는 “겉으로 보면 화려해 보이는 직업이지만 월급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 지상직은 최초 근무 6달 동안 ‘인턴급여’를 받는다. Z씨는 인턴사원이었던 지난해 △월 기본급 102만원, 상여금 10여만원, 직무수당 33만원, 교통비 20만원, 시간외수당 59만원을 받았다. 각종 세금을 제하면 200~210만원이 매달 통장에 찍힌다. 정규직이 되면 조정수당 등이 추가돼 20~30만 원 정도가 인상된다.

전국 지상직만 수천 명, 급사·실신 사고 잦아… “사람 좀 더 뽑아라”

Z씨는 유사한 상황에 놓인 동료들만 400여 명이 더 있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 계열인 에어부산·에어서울의 업무를 보는 지상직도 300여 명이 더 있다. 지상직은 아시아나항공에만 있는게 아니다. 대한항공 계열, 이스타항공 등 각종 외항사, 제주·청주 등 각 지역 공항 등에서 일하는 지상직을 헤아리면 그 수는 수천 명 단위로 늘어난다.

다른 업무를 보는 지상직도 KA엔 400여 명(관리직 포함)이 더 있다. △라운지 여객서비스(First·Business 등 라운지 관리) △한사랑서비스(휠체어 탑승객 지원) △아시아나클럽 안내 서비스(회원 관리) △대형수하물 지원 업무 등이다. 한사랑서비스팀에서 일했던 전직 직원 B씨는 “400명 가까이 들어가는 가장 큰 비행기에 휠체어 등을 타는 고객이 80명일 때도 있다”면서 “하루 18시간 일할 때가 한 달에 2~4번씩 나온다. 일이 고되 걷는 거리를 재봤더니 22.5km가 나온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 공항 자료 사진. ⓒpixabay
▲ 공항 자료 사진. ⓒpixabay

항공·공항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건은 최근 연속해서 언론에 실렸다. 금호아시아나 계열 에어부산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 간 여성 승무원 4명이 잇달아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부 직원들 중심으로 과로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항공 하청업체인 한국공항에서도 지난해 12월 17년차 지상조업 노동자가 출근후 돌연사해 과로사 논란이 일었다.

공항노동자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인력충원이다. Z씨 또한 “일단 17~18시간은 말도 못하게 긴 노동시간”이라며 “일하면서 쓰러지고 병이 나는 건 일을 너무 많이 해서다. 사람을 더 뽑아서 9시간만 일하게 해야 한다. 충원만 해도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KA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당사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다. KA 매출의 99%(2015년 기준)가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에어포트, 에어부산 등 특수관계 회사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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